- 친부살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생각하다가 -
육아를 끝내고, 다시 사회로 나가려니 참 난감했다. 경력단절에다가 마흔을 넘긴 나이 많은 아줌마가 있었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자격증을 따면서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도 써먹지 않는 영어가, 까먹어 버린 영어능력이 허무할 때가 있지만, 그때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공부였다.
영어 유치원을 하고 싶었다. 아동학과에 편입을 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계획도 세웠다. 너무나 많은 자금이 들어갈 거란 걸 알면서도 모른 체 한 건지, 아무튼 자금이 턱없니 부족했다. 그래서 교육사업을 프랜차이즈로 시작했다. 일주일에 3번 오전에 출근을 했다.
지금 이야기를 하려는 주인공을 만난 건 그 오전 출근시간 잠깐씩 만났던 선배 교사(?) 혹은 먼저 시작한 사업가(?)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겠다.
그녀가 아침부터 " 내가 말이야..."를 시작하면서 필리핀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의 주제는 외국생활이구나' 길어진 이야기가 시끄러워서 '그만하세요'를 곁들인
"저도 살았어요"
(영어공부를 하려고 아들과 함께 필리핀 일로일로에 살았었다)
아들을 데리고 갔었다고 하니 '야야'인지 '자자'인지를 고용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우미를 고용하기는 했는데 아이를 케어해 주는 사람에게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살았다면서? 어찌 모르느냐...
논리는 그랬다. 절대 모를 리 없다. (중간에 많은 단어들로 나를 몰아붙이면서..)
"조금 긴 여행을 간 거겠지..."
"그렇게 표현한 거 이해한다"
몰아가며, 채근하며, 회유하며 『나는 긴 여행을 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가 되어야 했다.
14년 전 일인데도 어제처럼 선명하다. 나는 그때 사람들의 눈빛을 보았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나는 또 다른 형태의 집단지성(集團知性)을 경험했다. 섬뜩한 느낌의 '광기'마저 느꼈었던 그날 아침 '그녀의 목소리'가 무서웠다.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목덜미가 늘어진 폴로 브이넥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