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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배려

- 기 드 모파상의 <비곗덩어리> -

by 장하영


따르릉, 전화가 왔다. 피로와 감기로 쉬어버린 내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은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에너지는 한정적이며, 나이가 들수록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몸을 아껴야 한다며, 자잘한 일은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나에게 많은 일을 맡기던 사람이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필요할 때는 불러내고, 인제 와서는 쉬라고 한다. 나는 순간 모파상의 <비곗덩어리>가 떠올랐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배려라는 이름 아래 가해지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뚱뚱해서 ‘비곗덩어리’라는 별명이 붙은 창녀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과 직업이 귀족이나 부유층의 기준에서 볼 때 하찮다는 이유로 항상 무시당한다. 그런 그녀가 전쟁 중 같은 마차에 탄 귀족과 부유층 인사들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적군의 장교가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를 위하는 척하며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차 안의 사람들은 점점 그녀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모두를 위해 희생했고, 그 덕분에 마차에 탄 사람들은 무사히 길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희생 이후의 상황은 참담했다. 그녀가 희생하기 전까지 그녀에게 다정한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차갑게 돌아섰다. 그녀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지 않는 듯했고,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모든 사람은 그녀를 비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그녀를 멸시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희생을 애써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던 그들이, 이제는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불쾌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녀와 말도 섞지 않았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이용했을 뿐이다. 겉으로는 그녀를 걱정하는 듯 행동했지만, 결국 그녀가 필요할 때만 배려하는 척했다. 그리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자 그녀를 철저히 외면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세기 말,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이다. 보불전쟁(1870-1871)은 프랑스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패배 이후 프랑스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계급 갈등과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었다. <비곗덩어리>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작품 속 마차에 탄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프랑스 사회의 위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평소에는 애국심과 도덕을 강조하지만, 막상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에 부닥치면 그 가치관을 손쉽게 뒤집어버리는 모습이야말로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 장면이 떠오르는 이유는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변인을 위하는 척하지만, 그것이 정말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리는 종종 “너무 힘들어 보이니 좀 쉬어야 해”라는 말을 듣는다. 쉬어야 한다는 조언은 듣기에는 따뜻하지만, 정작 쉴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말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네가 아니면 안 돼”라며 다시 불러낸다. 결국 ‘배려’라는 말은 한순간 상대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된 배려 속에서 사람들은 지쳐간다. 한순간에는 쉬어야 할 사람으로 배제되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필요한 존재로 호출된다. 마치 비곗덩어리가 마차 안에서 철저히 배려받다가 결국 가장 먼저 희생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고 희생 후에는 외면당했던 것처럼. 보불전쟁 이후 프랑스가 자국민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전쟁이 끝난 후에는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나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쓰지는 않았는가? 정말 상대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었지만, 결국 그 사람이 필요할 때만 따뜻한 얼굴을 보인 것은 아닐까? 혹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무관심으로 남겨 두어야 할 부분까지 건드려, 들추고 파헤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정말 순수한 의미의 배려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에 따라 변하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지지자들에게 달콤한 말로 선동하고, 그들에게만 특별한 배려를 베푸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그 배려는 진정한 관심과 존중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뿐일까? 선거가 끝나고, 목적이 달성된 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태도를 유지할까? 결국, 정치권에서의 배려도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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