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게 바란다
얼마 전, 다지리 히사코의 『다이다이 서점에서』를 다시 꺼내 읽었다. 일본 교토 외곽의 작은 동네 서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책과 사람, 동네가 얼마나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서점은 단순한 책 판매처가 아니라, 이야기가 흐르고 관계가 피어나는 골목의 중심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울산의 골목에도 그런 서점이 많아졌으면 했다. 독립서점이 생활 안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도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삶은 풍성하고 깊다.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아이, 버스에서 시집을 꺼내는 청년, 공원 벤치에서 역사책을 읽는 어르신. 그런 풍경이 많은 도시, 그런 장면이 익숙한 도시라면 얼마나 따뜻할까. 나는 그런 울산을 꿈꾼다.
울산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굵직한 제조업과 활기찬 항만이 도시의 기반을 다져왔고, 치열하게 일하는 시민들의 손끝이 이 도시를 움직여왔다. 그러나 그 성실한 노동만큼, 이제는 ‘생각하는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경쟁력은 기술과 자본만이 아니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읽는 힘’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낯선 이야기를 따라가며 타인을 이해하고, 나와 다른 시선에 귀 기울이며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쉽게 분노하지 않고,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다. 나의 견해를 미루고 타인의 문장을 오래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런 시민이 많은 도시일수록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위기를 이겨낸다.
울산 곳곳에는 이미 책 읽는 움직임이 있다. 구립 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독서모임, 지역 서점과 독립서점들. 그러나 조금 더 밀고 나아가야 한다. 지역 축제에서 책을 중심에 놓고, 독서 캠페인을 계절마다 펼치고, 학교 안팎의 독서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어른이 책을 읽는 모습을 아이들이 자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책을 많이 읽는 도시를 상상해 본다. 그 도시에는 골목마다 책방이 있고, 작은 도서관들이 동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 정류장 옆 벤치에는 누군가가 덮어놓은 책 한 권이 있고,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서로의 취향을 묻고 대화를 나눈다. 그런 도시에서라면 사람들은 조금 더 여유롭게 걷고, 조금 더 성찰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노력에 더해 학교, 기업, 도서관, 지역 서점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작은 마을 도서관에서 낭독 모임이 열리고, 회사 휴게실에 작은 책장이 생기고, 초등학교 교실 한편에 '오늘의 한 문장'을 적는 칠판이 마련되는 일이 많아진다면, 책은 삶의 풍경이 될 수 있다.
책을 읽는 도시에는 자연스레 사람을 잇는 대화가 생긴다. 작게는 책을 권하는 말 한마디에서, 넓게는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북페어에 이르기까지, 읽기의 문화는 공동체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울산에서도 공공도서관과 지역 서점이 손잡고 정기적인 북클럽이나 저자 강연, 독립출판 전시회를 개최하면 어떨까.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은 비슷한 가치와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일본의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찾을 수 있다.
오사카의 ‘난바 라이브러리’는 대형 서점과 도서관, 카페가 결합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주말마다 낭독회와 작가와의 만남이 열려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구 북페어’는 사찰과 독립서점이 협력해 열리는 행사로, 지역 아이들이 쓴 그림책 전시와 낭독극이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일상 속의 문화이자 놀이, 그리고 사색의 공간임을 알려준다.
울산 역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이미 여러 독립서점이 골목에 자리를 잡았고, 시민들의 책에 관한 관심도 높다. 다만, 이 흐름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지원과 연결이 필요하다. 학교와 서점, 도서관이 각자의 영역을 넘어 연대하고, 책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품격을 함께 키워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읽는 도시, 그 시작은 바로 우리 곁에서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