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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Dec 24. 2020

포기가 안 되는 마음

<보면뭐하니> 2화 - 오미경PD 인터뷰

Q,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는 일반적인 미니시리즈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로 제작됐죠. 제작비가 조금 부족한 정도면 여기저기서 조금씩 아껴쓰면 되는데, 이정도까지 극한으로 부족하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뭘 선택하고 뭘 버렸는지 궁금해요. 뭘 포기하고, 뭘 포기하지 않았나요? 부족한 제작비 속에서 끝까지 놓지 않은 게 뭐였나요?

“대본 작업에 드는 비용은 줄이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자신있게 대답한 오미경PD는 다음 말을 머뭇거렸다.

“그러고 나서 포기한 부분...? 포기.... 포기... 포기...를 못 해서 힘들었죠.”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이 우문현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베스트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일단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하루에 열 명, 스무 명씩, 엄청 봤어요. 유명하지 않아도 잠재력 있고, 연기력이 있는 분이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회사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건 돈이 안 드니까, MBC에서 찍을 수 있는 건 다 MBC에서 찍어서 로케이션 비용을 아꼈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유명한 테크 회사들, 넷플릭스 같은 곳, 혹은 국내 기업 중에도 제작비와 홍보비 빵빵하게 쓴다고 소문이 자자한 돈 많은 회사들, 아니면 리더가 그렇게 합리적이고 멋지다는 잘나가는 스타트업들, 그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넉넉한 지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부럽다.) 밖에서 보기엔 MBC도 여유 있어 보일까? (응 아니야.)

이 세상 모든 창작자가, 이런저런 한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베스트를 찾으’며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짐작해 본다. 김은숙 작가님이나 김원석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도, 그 누구라도 자원이 무한한 것은 아니니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버릴지 고민하는 순간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무엇도 포기하지 못해 괴로웠다는 말을 곱씹으며,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는 평범한 대답이 진실로 품고 있는 의미가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가 안 되는 마음. 내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도무지 포기가 안 되어, 최대한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내야만 하겠는 마음. 답답함. 초조함. 자괴감. 그 괴로움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 아닐까.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는 꽤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이다. 제작비는 부족하고 채널은 약하고 홍보도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 그 무엇도 포기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기어이 이렇게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아마도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기 때문이었겠지. 그러니 재능이란 무엇이겠는가. 하고 싶은 마음, 포기가 안 될 만큼 하고 싶어 애닳는 마음, 그 자체가 재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T.S.엘리엇은 “구상과 창조 사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림자를 걷어내라.” 했습니다.

구상은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하고 나온 거지요.

그런데 그걸 막상 완성해내려면, 하다 보면 생각이 막히기도 하고 처음 생각대로 안 되기도 해요.

우리 같은 경우 아이디어 실행을 하려면 예산이 부족하기도 하고, 시간이 없기도 하고, 위에서 다른 주장도 하고,

이런 많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거지요.

그래서 훌륭한 창작자는 구상한 것을 창조할 때까지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어야 된다는 문맥으로 저에게는 읽히고요.

제가 ‘돈키호테력’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데, 돈키호테 같은 무모함이 필요한 거예요.

창의력은 곧 발상이라기보다는, 발상은 일부일 뿐이고

어쩌면 업무를 대하는 태도, 내가 이걸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이기도 하죠.
- <일하는 사람의 생각> 중 박웅현의 말.


팟캐스트 <보면뭐하니>

2화 : [만드는 사람들] 예능드라마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오미경PD (진행 : 항피디, 장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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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mini 어플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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