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뭐하니> 5화 - “며느라기” 이광영PD, 수신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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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조회수 천만뷰를 훌쩍 넘긴 카카오TV의 드라마 <며느라기>를 연출하신 이광영PD님과 원작자이신 수신지 작가님을 모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광영PD님께 원작에서 가장 살리고 싶었던 부분, 꼭 지키고 싶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물었습니다.
“만화를 보면, 보통 드라마였다면 한발 더 나갔을 텐데 멈추실 때가 많더라고요.
저는 정말 그것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어요.
작가님이 우리한테 느끼게 해줬던, 딱 거기까지를 하고 싶었어요.”
원작이 멈춘 지점에서 드라마도 멈출 수 있었던 이유는 분량과 관계가 깊다고 합니다. 회당 60분이 넘는 일반 미니시리즈라면 극을 끌고가기 위해 악역도 필요하고 스토리의 굴곡도 말 그대로 ‘드라마틱’ 해야 하는데, <며느라기>는 20분 정도의 숏폼 콘텐츠였기 때문에 원작의 담백함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는 것이죠.
사실 이 ‘멈춤’은 원작자인 수신지 작가님도 중요하게 이야기하신 부분입니다.
“작가의 판단이나 감정이 많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인물들이 과도한 표정을 짓지 않게 했고, 내레이션을 최대한 안 쓰려고 했고요.
그 캐릭터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독자들이 다들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캐릭터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분들이 <며느라기>의 매력을 이것으로 꼽고 있죠. 악역이 없고 사건이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 주변에서 들음직하고 내가 겪었음직한 이야기인 것. 악역으로부터 비롯된 갈등이었다면, 예컨대 흔한 일일드라마처럼 표독스러운 시어머니었다면, “저건 드라마니까. 요즘 저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 하고 말았을 텐데, 너무나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수위의 갈등(우르르쾅쾅이 아니라 투닥투닥 수준의!)이다보니 “저건 시어머니가 잘못했네”, “시누이가 얄밉긴 하지만 안쓰럽네” 같은 감상이 가능해졌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크 레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형극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의 손목이 보이는 순간 환상은 깨져버리죠. 누군가 인형 뒤에 서서 다양한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요. 그때부터는 아마 인형이 하는 이야기보다 그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될 겁니다. 소설가 역시 마찬가지죠. 자신이 창조한 무대에 서서 인상적인 쇼를 선보일 뿐, 자신의 캐릭터들이 이끄는 이야기에 등장할 수는 없습니다. 소설가는 철저히 무대 뒤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엄청난 겸손과 희생을 요구하고, 때로는 처절한 외로움과 고독의 감정을 선물해요. 무대 장막 뒤에서 모습을 감추고 모든 걸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 JOBS NOVELIST 소설가 :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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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가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춘 것이 작가와 독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핵심이지만,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그 매력을 알아본 건 아니었습니다. 수신지 작가님이 <며느라기>를 SNS에 연재했던 이유가 어떤 플랫폼에서도 연재 기획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죠.
“좀 더 갈등이 강화되면 연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답을 들었어요.
그러나 그건, 제가 원하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회사에서 연재되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 했어요.
그런데 드라마화를 논의할 때 만났던 분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내용을 그대로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이야기도 더 만들어지고 인물도 새롭게 들어가면서, 더 강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요. 드라마는 그런 건가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원작의 톤이 잘 반영된 좋은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 때는 수신지 작가님이 지금처럼 유명하거나 수입이 안정적일 때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수정 제안을 거절하고 작가님 생각대로 해 나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빨리 만화가로 자리잡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녹음하면서 못 여쭤본 질문을 뒤늦게 카톡으로 드렸더니, 장문의 답을 보내주셨습니다.
“수정을 거절한 이유는 <며느라기>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피드백이었기 때문이예요.
고부간의 갈등이 강하게 드러나게 만들면 <며느라기>를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요.
‘내가 몇 개월간 고심하며 만든 이야기인데 한번 읽어보고 어떻게 판단을 하지? 웹툰 피디라고 다 정확히 볼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도 했어요.
그렇게 거절당하고 나서 다른 연재처를 더 알아볼까 하다가 그만 둔 이유는 여러번의 거절을 받으면서 다른 곳도 마찬가지 반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 ^^;;
그리고 이미 제 마음은 <며느라기>로 가득 차 있는데 더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어요. 빨리 연재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SNS에 올리기로 생각을 했고 민사린이 운영하는 SNS라는 설정이 머릿속에 떠오르니까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거절의 아픔은 싹 잊혀졌어요.
수입이 없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수입이 생기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거절의 아픔은 싹 잊혀졌어요’라는 문장에 덩달아 설렜습니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더 시간 끌고 싶지 않았다니요, 거절도 개의치 않게 되는 마음이라니요!
이번에는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의 말을 옮겨 봅니다.
“작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거절에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중략).. 당신 작품을 거절한 게 출판사 입장에서는 상황에 맞는 판단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틀린 게 아닙니다. 작가의 자질과도 무관하고요.”
- <JOBS NOVELIST 소설가 : 써야 하는 이야기를 쓰고 마는 사람> 3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