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알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능력의 힘으로 마지막 하루를 내가 소망하는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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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113년 8월 16일,
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오늘은
바라던 모습대로 사는 마지막 날입니다.
시 <귀천>의 마지막 연처럼, 소풍 온 듯 가볍고 즐겁게 살았고
영화 <시>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마음을 내어 타인에게 공감하며 살았고
영화 <밀양>의 마지막 장면처럼, 거울 속 나를 비로소 덤덤히 마주하며 자유롭게 살았고
학부 4학년 박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에서처럼, 우리 모두가 무엇보다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라 믿었고
내 유학 계획서 마지막 문단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발전의 혜택을 누리도록 노력하고 기여했고
책 <Being Mortal>의 마지막 챕터처럼, 사람들이 마지막 날까지 존엄한 삶을 살도록 도왔고
미국에서 재회한 최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시도했고
클하대학교 부사장님의 말씀처럼, 함께 공부하고 꾸준히 실행하며 연대했고
떳떳이 그렇게 살아왔다고 오늘 말할 수 있어서
우영우의 마지막 대사처럼, '뿌듯함'을 느낍니다.
오늘은
사랑하는 모교에 보답하는 날입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받았으면서도 마음을 내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언젠가 - 아마도 90여 년 전일 것입니다 - 해외에서 조금 기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날을 떠올려보니 후회스러운 일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어려운 상황과 불안한 속마음을 꺼내어 준 후배 A에게, 나는 고작 꼰대 같은 말을 돌려주었습니다.
젊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시도하고 실패한 후배 B에게, 실질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하기는커녕 부족했던 점을 굳이 짚어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못 지키는 높은 기준을 조언이라며 읊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부족하고 어설퍼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더라도 존중해주고 잘 받아줘서 고맙습니다.
후배들의 솔직함, 도전정신, 젊은 패기를 접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오히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과의 짧지만 강렬한 인연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재산을 모교에 기부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보냅니다.
오늘은
부모님과 다시 만나는 상상을 해보는 날입니다.
저는 하늘나라는 없다고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다시 만나면, 죄송한 마음이 앞서 눈물이 먼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에겐 좋고 유익한 글을 아침마다 보내드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좋아하시는 보아 노래를 같이 부르겠습니다.
아버지에겐 일주일에 3일 골프 접대를 해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싸장님 나이스 샷!"을 시원하게 외쳐드릴게요.
저에게 그 어떠한 장점이 있었다면 모두 당신에게 물려받은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그 반의 반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의 손녀는 98년간 건강하고 이쁘게 스스로 잘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결혼한 지 100년이 되는, 백년해로의 약속을 지킨 날입니다.
서둘러 써 내려간 편지의 마지막에 담았던,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문장을
대부분은 낯선 하객들 앞에서 읽었을 뿐이지만
오랫동안 원했고 조금은 간절했던 나의 바람이라서
마지막까지 그 마음을 존중해주고 함께 노력해줘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오늘은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이 노래했던 바로 그런 날입니다.
유난히 반짝이던 이슬에 새벽빛 와닿아 스러지는 아침과
저 멀리 구름이 노을빛에 젖어 손짓하는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105년간 살아온 라라랜드는 내가 원할 때마다 이런 아침과 저녁을 선물해주었고
마음씨 좋은 선배가 되어주었습니다.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자알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