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Paris] Inspired By Margiela
마틴 마르지엘라라는 디자이너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벨기에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로,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디자이너의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전위적인 해체주의 패션과 파격적인 런웨이로 기존 패션의 문법을 모두 깨버리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브랜드에 영감을 주고 있지. 그러면서도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무도 그의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는 점이 마르지엘라를 더 미스터리한 인물로 만들고 있어.
2008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패션계를 떠났던 그가 파리에 있는 라파예트 재단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어. 코로나로 계획되었던 오픈날짜보다 더 늦어지긴 했지만 드디어 마레에 있는 전시장를 찾아 마르지엘라의 작품들을 감상하러 갔어.
이번 마르지엘라의 개인전은 그의 옷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마르지엘라가 작업한 조각이나 페인팅 작업들을 선보이는 전시야. 그래서 아티스트로서의 마르지엘라의 생각과 머릿속을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느낌이었지. 이번 전시를 보고 내가 느꼈던 메인 키워드는 총 3가지야.
‘은폐, 머리카락 그리고 쇼’
그 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은폐'라는 주제야. 마르지엘라의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는 데오드란트 이미지인데 인간의 야생성을 감춰주는 의미로 사용된 오브제라고 해. 앞서 말했듯 마르지엘라는 드러내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야. 사람들이 모델보다 옷에 더 집중해주기를 바라며 런웨이에서 모델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고, 옷에 드러나는 로고 라벨 또한 안으로 감춰버렸지.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잘 아는 마르지엘라의 상징과도 같은 4개의 스티치 로고가 생겨난거야. 이렇게 외부의 것을 은폐함으로서 우리는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이번 마르지엘라의 작품을 보면 온통 숨겨져있는 것 투성이야. 가죽천으로 덮어놓아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설치물이나, 그림이 걸려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걸어놓지 않고 관객이 숨겨진 작품을 상상해야하는 작업 등, 뭐 하나 친절히 설명해주는게 없고 전부 감추고 있지.
두번째 키워드는 머리카락이야.
마르지엘라의 아버지는 헤어 디자이너였고, 어렸을때부터 머리카락에 대해 극심한 호기심을 가졌다고 해. 그래서 전시장 곳곳에 가발과 머리카락에 관련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특히 머리카락으로 잡지 속 셀러브리티들의 얼굴을 전부 감춰버리는 작업들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은폐'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지.
세번째 키워드는 쇼야.
프랑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 밑에서 배우며 그의 영향을 받은 마르지엘라는, 그의 첫 런웨이를 극장에서 열며 마치 락 콘서트 같은 스타일로 선보였어. 관객들이 양 옆에 앉아 모델들의 워킹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모두가 한데 어울리는 쇼의 요소를 첨가한거지. 이 전시에도 그런 요소들이 보였어. 주말마다 작품을 잠시 가렸다가 다시 공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들이 존재하는데,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기존의 전시 동선에 쇼의 공연 시간처럼 온/오프 개념을 추가해 참신한 재미를 준거지. 작품을 공개하는 방식에 마저 이런 디테일을 주는 것을 보며 마르지엘라라는 디자이너, 아니 아티스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어.
2020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Margiela: On His Own Words를 통해 마르지엘라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그동안의 패션계에서의 여정과 자신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처음 메종 마르지엘라를 설립한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았고, OTB라는 그룹에 인수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으며 결국엔 은퇴를 선언했지만, 내가 느낀 마르지엘라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어리숙한 성격에 뼛속까지 예술가인 사람이었어.
해체주의 패션과 파격적인 콜렉션 등,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가 하고싶었던 예술 세계를 가감없이 선보이며 패션계의 한 획을 그어버렸지. 많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외압적인 부분도 많았을 테지만 어떻게 그러한 것들과 싸워가며 타협없이 자신만의 것을 쌓아갔을까 평소 궁금했었는데, 이 전시를 보며 그 궁금증이 풀리는 기분이었어.
강박에 가까운 호기심과 디테일, 그리고 자신만의 철학을 입혀 일관성 있게 자신의 아웃풋을 만들어 가는 것. 그 뿐이었지. 그 특징들을 보니, 새삼스레 봉준호 감독이 떠오르더라고. 디테일과 자신만의 철학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마틴 마르지엘라의 스토리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 외에도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감이 될거야.
너는 요즘 어떤것에 영감을 받고 있어?
2021.12.29
Paris
� 더 생생하게 파리의 영감을 얻고 싶다면?
✔ 뉴스레터로 이 글을 '1주일 더 빨리' 받아보고 싶다면? 구독하러가기 https://bit.ly/3aD9nRq
✔ 어바노이즈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kOdR3o_nIEo05nC_p4APDg
✔ 어바노이즈 인스타그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