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피해왔던 비를 맞아본 소중한 경험
친구들과 스케줄이 맞아 주말에 제주도를 갈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금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성산 근처에서 하룻밤을 자고, 토요일 아침 우도행 배에 올라탔다. 출렁거리는 배를 타고 항구에 도착하니 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각종 바이크 렌탈샵에 사람이 몰려들었다. 여러 명이 타기 좋은 개량형 스쿠터, 전기 자전거 등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가격이 싼 하루 단돈 만원에 빌릴 수 있는 자전거를 빌렸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배회하며 꽤나 체력이 좋다고 자부하던 우리들이기에 선택한 가장 아날로그(?)인 탈 것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들려 짐을 놓고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좋은 해변이 보이면 바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재빠르게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수영복과 래시가드를 입으니 무턱대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과자, 햄버거, 아이스크림을 흘리면서 먹었고 모래사장이 있으면 뒹굴뒹굴 굴렀다. 땀을 미친 듯이 흘려도 근처 해변으로 풍덩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발가벗었는데 전혀 부끄럽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 몸에 흐르고 던져지는 것들을 모두 그대로 놔두었다. 오르막길에 오르면 힘이 들었고 오르막 끝을 지나 과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되면 우리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티벳 여우 표정같이 무표정으로 스쿠터를 타는 사람과, 풍경을 스마트폰으로만 바라보면 셀카족과의 다름에 뭔가 자랑스러웠다. 길의 험난함에 따라 호흡과 감정의 리듬이 그루브를 타며, 아담한 우도를 한 바퀴 돌았다.
그 날만큼은 우도의 날씨가 흐렸다. 우리 쪽은 꽤나 맑았지만 바다 멀리 서는 먹구름이 다가왔다. 역시나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천막에 몸을 숨겼고 서로 물어뜯고 놀던 개들마저 비를 피하려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리 셋은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았고 몇 초 뒤 툭 하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비 그칠 때까지 기다릴까?
그럴 거면 그냥 숙소로 돌아가고 말지
그런가 그럼 비 조금 맞으면서 돌아갈까?
그냥 계속 자전거 타면 안 돼?
야 비 오잖아
우리가 지금 비가 문제임?
비 맞아도 되지 않나
수영복 입었는데 비 맞으면 어때
오 굳 ㄲ
순식간의 대화를 마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전거를 계속 탔다. 갈수록 비는 더 세게 내렸지만 우린 상관하지 않았다. 비가 정수리를 많이 때릴수록 더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는 차의 와이퍼는 샤웟물 속에 눈을 비비듯이 물을 빠르게 닦았고 안의 사람들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놀지 걱정하는 표정들이었다. 우리는 비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수영복을 입었고, 자전거는 내 것도 아니고, 전자기기는 방수팩에 들어 있었다. 갈수록 비는 더 쏟아졌고, 우리도 더 이상 앞으로 보고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어릴 적 목욕탕 냉탕에서 온 몸을 물에 담그고 쑥 하고 단번에 나올 때처럼 머리는 초가집처럼 눌러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재미있듯이,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이렇게 일부러 맞는 건 거의 어렸을 때 말고 없어서인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 맞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고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비를 30분 동안 스트레이트로 맞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왔다. 그때 게스트하우스 홀에는 세 집단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우리를 힐끔힐끔 보며 어이없어하는 것 같았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보고서는 허~ 웃음을 터뜨리고는 수건을 갖다 주셨다.
도시 속 생활 속에서 비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피해야만 했다. 비는 우리 생활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내 옷을 젖게 하고, 머리를 벗겨지게 할지도 모르고, 감기를 걸리게 하는 존재였다.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분주하던 발걸음이 살짝 끊기고 각양각색의 우산이 펴졌다. 비는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담지는 않았다. 비를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잘못 뒤 이별 통보 후 간절한 재만남의 상징이었고, 처절한 실패, 슬픔의 배경 장치였다. 이렇게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비는 무조건 피해야만 했고, 굳이 맞는다면 뭔가 맞고 싶은 깊은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우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비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를 넘어 나를 기쁘게 하는 축포였다. 자전거가 내 것이 아니고 수영복을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우리 삶에서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피하려는 것들이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배경 때문에, 사람들이 피하라고 해서 피하는 것일까? 우리 삶에 수영복 같은 존재가 있다면 우린 피하지 않아도 될까? 우리 삶에 수영복과 빌린 자전거는 무엇일까? 피하지 않는 행복한 삶이 되려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수영복과 빌린 자전거가 필요할까? 아니면, 우리는 이미 수영복과 빌린 자전거가 있는데도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를 신나게 비 맞아봤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생각해본다. 우린 옷이, 스마트폰이, 세팅한 머리가 젖어서 나중에 뭔가 행동을 하지 못할까 봐, 일이 틀어질까 봐, 틀어지는 게 짜증 나서 비를 피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앞에 일어날 여러 불확실한 일들이 두려워 위험을 피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서 그 결과를 해결하는 과정이 피곤하거나,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온다면 무조건 그걸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빌린 자전거와 수영복같이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결과를 막아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우린 당당히 맞서고, 어떤 사람들은 신나게 돌파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걱정 없이, 걱정이 있을 것이라는 인식도 안 하고 지나갈 수도 있다. 빌린 자전거와 수영복을 우리 주위에 만들어보자, 미리 준비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인생의 먹구름과 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맞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