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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니정 Apr 16. 2024

믹스커피는 문화다

[#26] 철물점TV X 공구로운생활의 월간 콘텐츠


지난주 친구놈의 유튜브 촬영을 따라나섰었다.

디자인, 브랜드를 말해주는 채널을 운영하는 친구인데 함께 서울 성수동의 ‘뉴믹스 Newmix' 카페를 찾았다. 배달의 민족 창업자가 ‘그란데클립'이라는 회사를 창업한 후, 만든 첫 브랜드가 바로 믹스커피였다. 테이블이 없는 테이크아웃 형식의 카페였기에 사람들은 믹스커피를 들고 옹기종기 바깥에 모여 앉아있었다. 맛은 오리지널(우리가 먹는 믹스커피), 볶은쌀, 녹차, 군밤이 있고 디저트는 군대에서 그렇게 먹던 건빵튀김과 오란다가 종이컵에 담겨 나왔다. ‘믹스커피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여긴 나에게 뉴믹스 커피의 맛은 다소 신선했다. 커피향과 설탕이 강렬하게 튀어 오르는 일반 믹스커피와 달리 뉴믹스커피는 커피향과 달달함이 서로 똬리를 틀며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왔다.


(믹스커피와 디저트를 뉴믹스 근처 공원에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출처: 뉴믹스 인스타그램)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뉴믹스 커피를 만들게 된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무드보드에 여러 가지 이미지(덱)을 붙이며 타겟층을 만드는데 점프슈트를 입은 작업자의 이미지가 많이 겹쳐졌다고 한다. 그리고 믹스커피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진하게 느껴지는 제품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나도 살짝 한마디 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입이 근질거렸지만) 믹스커피를 만들 때 만약 연이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의 한마디였다. 나는 3년 전쯤에 이미 믹스커피라는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나도 현장을 다니면서 꽤나 믹스커피를 얻어먹고 다녔다는 자부심이 아닌 믹스커피는 현장인, 공구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오랜 관계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믹스커피는 현장의 친구로 40년이 넘게 우리 곁을 지켜왔다.

전기조차도 들어오기 직전, 커피 원두조차도 들고 오기 힘든 깊숙한 현장에서는 스틱 모양의 믹스커피가 제격이다. 200ml 남짓의 종이컵에 믹스커피 스틱을 하나 뜯어 뜨거운 물을 넣고 휘휘 젓기만 하면 된다. 과정이 아주 단순하기에 누구든지 빠르고 신속하게 많이 만들 수 있다. 쉬었다 하면 움직이는, 장갑도 벗을 새도 없는 바쁜 현장에서는 커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50년 만에 경제성장을 이룬 빨리빨리 대한민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믹스커피는 일부러 주입시키는 강렬한 달달함이 묘미이다. 이전에 책에서 믹스커피는 HP(체력)과 MP(마력)을 동시에 채우는 포션이라고 말했었다. 믹스커피 속 구겨 넣는 당이 축 처진 어깨를 위로 당기고 적당한 카페인이 나의 정신을 일깨운다. 배고프면 현장 밖으로 굳이 나가서 부피가 큰 식사를 먹어야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기도 한다. 나도 영상 편집을 제대로 해야 할 때면 견과류와 믹스커피를 옆에 두고 점심을 건너뛰곤 하는데 배고픔도 잊고 작업에 몰입하는 효과가 있다. 믹스커피는 핫식스, 몬스터에 앞서 에너지 드링크의 원조일 것이다.


(2022년 경북 봉화군 광산에서 생존한 광부들, 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커피믹스라고 한다, 출처: KBS 뉴스)


믹스커피는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5만원 한 장이면 400명 분의 커피가 만들어진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커피를 달고 사는 한국인에게 믹스커피는 필수적인 복지 품목이다. MRO 업계에서는 납품 리스트에 믹스커피가 빠지지 않을 정도이며 MRO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믹스커피의 가격에서 가늠될 정도이다. 탕비실에서 슬쩍 타먹고, 거래처 가서 얻어먹는 등 사회생활의 관계망에 따라 믹스커피는 먹어(?)진다. 결국 믹스커피는 공짜로 먹어야 제맛이다.


하지만 물론 믹스커피가 좋은 느낌만 있는 건 아니다.

먹고 나면 혀에 남는 잔여향은 치약을 먹고 싶은 만큼 텁텁하다. 이제는 깔끔하게 넘어가는 아메리카노, 게다가 0원으로 수렴하려는 저가형 커피가 득세이다. 또, 믹스커피를 타마시면 뭔가 삶이 윤택하지 못하다는 시선은 덤이다. 드라마 <나의아저씨>에서는 여주인공 ‘이지안'이 믹스커피 3봉으로 한 끼를 때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들 보고 탄식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는 믹스커피가 싸구려라서 말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믹스커피가 보다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거나 너무나 범용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살 수 있는 서민적인 제품이기에 그렇다.


(맥심의 강력한 PPL이 돋보였던 드라마 <나의아저씨>)


‘뉴믹스’커피는 결국 뉴욕에 진출할 계획이다. 믹스커피가 K-푸드의 선두 반열로 오르는 게 최종 목표라고 한다. 이미 한국 믹스커피가 많이 진출해있으나 그들의 당찬 포부에서는 ‘우리들만의 방식으로'라는 앞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뉴믹스가 제품의 수출을 넘어 한국의 또다른 K-문화가 전파될 거라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믹스커피는 좋든 싫든 우리의 문화인 건 확실하다. 40년이 넘게 추운 현장에서, 머리가 안 돌아가는 책상에서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줬다. 남에게 타주고 남에게 얻어먹는 가벼운 정도 있다. 촬영이 끝나고 사무실에 도착하여 슬쩍 사본 뉴믹스 10포 중 1포를 휘휘 저어 마셔보니 다시 믹스커피의 매력이 떠오른다.


(다음에 또 마시러가볼 예정이다!)




이 콘텐츠는 울산대표 건축자재백화점 '연암철물'과 제휴하여 제작하는 월간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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