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의 회고 - 밥약을 잡자

자연스럽게 자기의 존재감을 만드는 방법

by sunnynjoy

이번에 유럽 동료와 출장을 다녀왔다. 이 친구는 평소에도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사람이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일할 때만큼은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 친구는 본인이 한 일을 매우 크게 얘기하고, 심지어 본인이 하지 않은 일조차 마치 자신의 공로인 것처럼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그 모습이 나에게는 종종 과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친구의 그러한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모든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고,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을 어필하는 모습이 내게는 부족한 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겸손을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왔고, 그래서 그런 나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인 이 친구가 어떻게 보면 나의 미흡함을 부각시키는 것 같아 더 경계심을 느꼈다.


이번 출장에서는 그런 감정이 더욱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같은 팀에 속해 있고, 같은 리더십을 두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출장 기간 동안 리더십과 함께하는 점심과 저녁 약속을 꽉 채워서 계획해 두었다. 점심이면 점심, 저녁이면 저녁, 심지어 술자리까지 빠짐없이 리더십들과 함께했다. 반면에 나는 실무진들과의 미팅만 잡아 놓았고, 리더들과 직접 소통하는 자리는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런 자리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데, 내가 그걸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서로 웃으며 출장 일정을 소화해 나갔지만, 그 안에는 말하지 않은 경계심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웃는 표정 속에 감춰진 미묘한 긴장감이랄까? 나를 초대하지 않은 그녀나, 초대를 받지 않더라도 굳이 나서서 넣어달라고 하지 않은 나나, 그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출장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그 자리를 잡았어야 했나 하는 고민이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리더십과의 자리에서 나도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중요한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이미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갑자기 리더십과 따로 식사 자리를 잡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졌고, 그들이 이미 아시아에 다녀간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놓친 것뿐이야, 어차피 그런 자리에 참여했어도 피곤하기만 했을 거야”라고 애써 신포도를 굴리며 합리화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어왔다. 첫 직장에서 만났던 동료들 중에도 자신의 성과를 크게 내세우고, 그로 인해 주목받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방식에 의식적으로 휘둘리기도 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곤 했다.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의 초년생 시절의 나는 조금 안쓰럽다. 남의 장점을 그렇게 의식하고, 그 장점을 나와 비교하며 내 페이스를 잃을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커리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걸, 지금은 더 잘 알고 있다. 내게도 나만의 장점이 있고, 그것을 잘 활용하면 나만의 속도로 달려나가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꾸준함과 차분함, 그리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는 내게 다 돌아왔다. 이런 방식이 내게 맞다는 걸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그간 쌓아온 경험과 시간이 큰 위로가 됐다.


하지만, 또다시 배우는 기회였다. 그 친구의 방식을 보며, 나도 다음 번에는 이런 관계를 위한 식사 자리도 미리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듯이, 기억에 남는 사람에게 기회가 더 가는 법이다. 단순히 내가 잘하는 업무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기회가 생기는 걸 봤으니까.


나는 그동안 주로 1:1 미팅이나 조직 내 공식적인 발표 자리에서 내 성과를 드러내는 데 익숙했고, 그런 기회들을 통해 신뢰를 쌓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방식은 나에게 잘 맞았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친구가 하는 방식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을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단단한 자리를 만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친구의 방식이 무조건 나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을 통해 성공적으로 신뢰를 쌓아왔다. 하지만 그 친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리더십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하고, 커피를 마시며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은 때로는 나보다 더 똑똑하게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다음 출장에서는 나도 자연스럽게 식사나 커피 자리를 잡아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더 공고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한 주 동안 이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고민을 많이 했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국계 기업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개성에 맞춰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로 성공을 이끌어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 때로는 위축되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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