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가득하고, 조금은 성급한. 들떠있으면서도 잔뜩 긴장한 그때의 내게
벌써 4번째 이직이다. 경험의 폭을 넓히겠다며 이직을 하다 보니, 매번 상황이 상이한 곳으로 옮겨 다니곤 했다. 산업, 위치, 역할이 달라지며 자연스레 리셋되는 것 같은 과거의 경험과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많은 상황에서 절로 오는 겸손함과 위축. 그러면서도 과거의 내 경험을 어떻게든 살리며 빠르게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까지.
매번 적응하는 첫 몇 개월이 가장 힘들고, 일 년 정도는 지나야 비로소 내가 회사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작은 성취들이 쌓이며 얻어지는 신뢰와 높아지는 자존감, 그 과정에서 조급한 마음에 여러 번 실수도 하고, 날 선 고슴도치처럼 남들에게 찔리기도, 찌르며 다니기도 했다.
조금 안정성을 얻은 지금에서야 돌아보는 이직 과정.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점과 다음을 위해서 나아져야 할 점들.
잘한 점 1. 첫 30일은 프로덕트/산업 공부를 열심히 했다.
여러 도움말이나 외부에 공유되는 문서도 중요하지만,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건 직접 해보는 거였다. 직접 프로덕트를 사용해보면 사용자 경험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는데, 특히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기에는 진짜 사용자의 입장에서 여러 의문들이 생긴다. 그 의문들을 해결해가면서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도 높이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기회가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해보게 됐다.
기존에 있던 스타트업은 사용자들끼리 연결해주는 소셜 플랫폼이었는데, 처음 팀에 와서는 일단 이 프로덕트를 엄청 많이 써봤다. 사용해보며 UI와 서비스와 핵심 기능을 파악하고, 내부 지표를 통해서 실제로 기능별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매칭 시켰다. 사용자 흐름상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사용자가 많이 모이는 게 핵심이라는 걸 느끼고, 사용자를 모으는 방법 (마케팅 비용)과 사용자에게 결제를 유도하는 방법 (수익 구조)를 파악했다. 각 단계를 퍼널로 쪼개서 보고, 지표를 확인한 후에 스프린트 과정을 돌아보니 훨씬 더 이해를 하기가 쉬웠다.
이와 다르게 이번에 옮긴 회사는 B2B 수익화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인데, 단순히 많은 사용자를 모으는 게 중요한 프로덕트가 아니었다. 각각의 파트너사가 어떤 식으로 솔루션을 활용하는지를 이해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주요 파트너사의 계정을 하나하나 파보면서, 어떤 식으로 우리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고, 어떤 부분이 효율이 좋고 안 좋은지를 파악했다. 여러 파트너사의 계정을 열어보니, 수익의 계절별 추이나 변동성, 퍼포먼스 비교가 가능했다.
어떤 프로덕트인지에 따라서 공부하는 방식은 상이하지만, 어느 회사에서든 사용자(고객)의 입장에서 프로덕트를 써보고, 사용 흐름을 파악하고, 수익과 비용 구조를 기반으로 KPI를 달성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고민한 덕분에 내부 논의도 비교적 빠르게 파악하고, 파트너사와의 관계도 잘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내 가치는, 프로덕트를 기반으로 나오게 되어있으니까. 처음에 아무런 프로덕트 지식이나 공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팀 사람들 또는 외부 파트너사와 친목부터 쌓으려고 하면, 내가 아는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서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잘한 점 2. 내 역할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했다.
job description도 열심히 읽어보고, 면접 과정에도 여러 질문을 통해서 확인하려 했지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결국 해보기 전 까지는 알 수 없다. 면접 과정에서 회사 내부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 밖에 없고, 면접 후에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각자 가지고 있는 이해가 다를 수도 있고. 수도 없이 많은 이유로, 내가 기대한 내 역할과, 내 매니저가 기대하고 있는 내 역할과, 실제로 해야 하는 역할은 다를 것이다.
똑같은 partner manager더라도, 가장 중요도가 높은 파트너만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담당자도 있고, 최대한 확장 가능한 솔루션을 만들어 놓고 그걸 뿌리는 담당자도 있고. 모두의 노하우가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담당하는 산업군이나 파트너사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타임라인과 누구와의 협업으로 그런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하는지를, 어느 정도 프로덕트와 회사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는 동시에 조율해 나가야지만 헛우물을 켜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 같다.
잘한 점 3. 매니저와 정기적으로 원온원을 했다.
매니저님이 어떤 스타일인지를 파악하고 서로 업무 방식을 맞춰 가는 건 장기적은 회사 생활에서도 너무나 중요하다. 매니저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45분 미팅을 정기적으로 잡아두고, 사소한 질문부터 업무 관련된 질문을 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매니저님께서 나에게 알려주는 것들도 굉장히 많았고, 절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가까워지는 것도 있었다. 원온원을 잡아두면, 강제로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을 찾게 되기도 하고. 일이 생겼을 때 갑자기 원온원을 잡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원온원을 잡고 서로 맞춰가는 건 회사에 심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잘한 점 4. 모르는 건 최대한 찾아보고 질문하고, 답변을 꼼꼼하게 기록해뒀다.
캘린더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 휴가를 내는 것 등등 뭐 하나 아는 게 없었다. 당연히 초반에는 질문을 많이 하게 되는데, 단순히 질문을 하기 전에 꼭 한 번은 찾아보고 질문을 드렸다. 한 번 찾아보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서로의 시간을 아낄 수 있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를 온보딩 시킬 때도, 검색 한 번으로 나오는 걸 반복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은 결국 그 사람의 업무 스타일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한 번 찾아보거나 고민을 하고 질문을 가지고 오면, 서로의 시간이 낭비되지 않고, 고민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생산적인 논의가 될 확률도 높고, 질문을 한 사람의 업무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는 것 같다.
반대로 아쉬운 점도 여럿 있는데, 업무보다는 내 감정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야기된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일을 이성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과 하는 일이고 나 역시도 감정이 꽤나 강한 사람이다 보니 발생한 방어기제들. 내가 이런 방어기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이런 태도가 나오면 한숨 돌리고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아쉬운 점 1. 너무 방어적으로 피드백을 받아들였다.
똑같은 피드백을 듣더라도, 내가 자신감이 없고 신뢰가 없을 때는 아주 방어적이고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예전 회사에서 '이 부분 빠진 것 같아요'라고 누군가 말해주면, '어, 그렇네요. 제가 다음 미팅까지 추가해놓을게요.'라고 간단하게 말하던 걸, 새로운 회사에서 처음 그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아주 구구절절... 왜 내가 빼먹었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도 아주 구구절절했고. 무엇보다 싫었던 내 모습은, 실수에 대해서 핑계를 찾고 누군가를 원망하려 했던 것이다. '알려줬어야지'라는 생각. 이상한 생각이다.
처음이니까 모르는 게 더 당연한 부분이고, 부끄럽지만 놓친 걸 기록해두고 앞으로 안 그러면 되고. 어떻게 하는지를 한 번 더 확인해서 이해를 맞춰보면 되는 부분인 걸. 몇 번 행동이 누적돼서 따로 시간 잡아서 받는 최악의 피드백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그냥 일이 되게 하기 위한. 업무에 대한 피드백이다. 회사에서 당연히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그런 것. 나에 대한 평가가 아님을 명심하고, 받은 피드백에 대해서 너무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도, 방어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도록 기억해둬야겠다.
아쉬운 점 2. 팀 내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 평가, 소문에 너무 가치를 뒀다.
나를 제외한 구성원들은 이미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매니저는 어떤 스타일이고, 사람들이 어떤지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들려왔었다. 선의에 해준 말이라는 생각에, 또 그 사람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는 괜한 뿌듯함에 그런 사람에 대한 조언/카더라를 열심히 들으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믿는데 괜히 시간만 더 오래 걸리고, 내 본모습을 드러내고 신뢰를 쌓는 데까지도 더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왜 그런지 한참 생각을 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모든 사람은 다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나에게 보이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 특히 이미 오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다른 팀원들에게 가지고 있는 모습은 다를 확률이 높다. 또 같은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람마다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직설적인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싸가지가 없다는 평을 받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시원시원하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듯이. 같은 형용사에 대한 이해도 사람마다 다른데, 예를 들어서 '외향적'이다는 것도 모든 사람의 정도가 다르다. '눈치가 없다'는 것도 말에 대한 눈치가 없는 건지, 인간관계에 대한 건지 등 발현되는 양상이 제각각이다. 결론적으로는 누군가가 말로 전해주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의식해서 관계를 쌓기 시작하면, 그 정보 자체도 내가 생각하는 정보와 다를 수 있고, 괜히 잘 될 수 있는 관계도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이직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지만, 결국은 또 적응해서 애착을 갖는 걸 보면 그냥 변화와 적응의 과정인 것 같다. 첫 이직 때는 그 과정이 후회로 받아들여지고, 내가 잘못 옮겼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지금은 그게 적응의 과정이라고 조금은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그 순간순간 감정의 동요는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회고를 하고, 고민을 하다 보면 다음번 이직은 조금이나마 수월하기를, 효율적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