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해요

사람 없이 못 지내던 내가, 혼자서도 잘 지내는 방법과 그로 인한 변화들

by sunnynjoy

학생 때 반마다 있던 장난기 많고, 시끄럽고, 모두랑 잘 지내는 사람. 좋게 말하면 분위기 메이커, 나쁘게 말하면 나대는 애. 그게 나였던 것 같다. 조용히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하던 나이였는데, 틈만 나면 장난치고 여기 말 걸고 저기 말 걸고. 아주 난리였다.


말만 거는 게 아니다. 모든 걸 같이 하려 했다. 사춘기 때 으레 그렇기는 하지만서도, 밥 먹으러 갈 때나 도서관 갈 때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머리를 자르러 가거나 화장실을 갈 때 까지도. '나랑 같이 갈 사람?'을 외치곤 했다. 몇 시간씩 머리하는 걸 기다려준 친구에게는 밥도 사줘가며, 함께하는 시간들로 하루를 꽉꽉 채웠다. 대학교에 가서도, 나와 에너지가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들과 시간표도 맞추고, 알바 장소에도 서로 놀러 가며 파워 E의 생활을 하곤 했다.


진짜 사람을 좋아해서 이기도 하지만, 혼자 있기 싫은 마음도 컸다. 혼자 있으면 친구가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 내가 친구를 찾는 게 마냥 긍정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는 걸 자각했던 건 바로 교환학생 때. 내가 혼자 있는 상황이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을 때다.


난생처음 혼자 간 외국에는, 시간표를 맞춰 짤 친구나 주말에 놀러 갈 친구가 없었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다녔지만, OTT도, 유튜브도 지금처럼 발달돼 있지 않았던 그때. 또 데이터 무제한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때이기에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민망하고 심심했는지.


처음에는 친구를 사귀려고 여러 노력을 했다. 학교 동아리에도 참여해보고, 교회도 나가고,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친구 소개팅 같은 자리도 만들고. 나름대로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긴 했지만, 함께 나누는 경험 없이, '친구가 되기 위해' 만난 인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시간을 낭비하며 혼자 괴로워하며 가기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고, 시간이 아까웠다. 어떤 방법으로든 혼자 있는 것이 편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온갖 시도를 해봤고, 몇 가지 잘 맞는 '혼자만의 시간 보내기' 방법을 찾았다.




1. 배우고 싶었던 것 시도해보기

가지고 싶은 스킬이기는 한데, 뭔가 시간을 내기는 애매했던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요리가 그랬다. 요리를 잘하고 싶기는 한데, 지금까지 엄마가 해준 밥 먹으며 배 따뜻하게 살았으니 요리를 할 수 있을 리가. 혼자 있는 김에 요리를 처음 시도해봤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대로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간을 맞추고, 양 조절도 해보며, 예쁜 그릇에 옮겨보기도 했다. 이제는 엄청 잘하지는 않더라도, 혼자 먹고 싶은 걸 만들어보고 실패도 하고, 잘 되면 가족에게 해주기도 하는 소중한 취미가 됐다.

요즘은 혼자 있을 때 일본어 강의를 하나씩 듣고, 일본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 중이다. '진짜 이렇게까지 내가 언어에 재능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더디게 늘지만, 한 단어씩 알아듣는 게 참 즐겁다. 혼자 있는 시간이 내가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시간이 됐다.


2. 가보고 싶었던 곳 가기

혼자 있을 때는 화장을 하거나 돈 드는 곳에 가는 게 뭔가 아까웠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 계기로 주말에 책을 들고, 강이 보이는 멋진 카페에 혼자 가게 됐다. 집에 너무 오래 혼자 있으니까 기분이 다운됐었나. 어쨌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멋진 뷰를 보면서 커피 한 잔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본 그 주말이 내 한 주의 활력소가 됐다. 지금 생각해도 혼자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내 시간을 즐긴 그 시간이 참 귀하다.

혼자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면, 내 페이스에 맞춰서 놀다 올 수 있다. 돈도 훨씬 덜 든다. 예쁜 옷 입고 나가서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그것 자체가, 사람이 없는데 나 혼자 그렇게 좋은 경험을 하고 오는 그 시간이 머릿속에 기분 좋은 사진처럼 남는다.


3. 일기 쓰기 (회고)

나는 큰 일이나 감정적인 요동이 있는 날은 구글 닥에 일기를 의식의 흐름으로 쓰고, 한 주의 마무리에는 그림일기를 쓰고, 한 달의 마무리에는 그 달의 씀씀이를 정리하는 경제 일기와 한 달 감성 리캡을 쓴다. 하나하나 쓰니까 많아 보이는데, 매주 하는 건 삼십 분 정도면 충분하고, 매달 하는 경제 정리까지 하면 한 시간 정도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서, 내가 고새 잊고 있던 고마운 일들, 귀한 시간들도 돌아보고, 내가 부족했던 거나 감정적인 요동이 있던 부분들도 왜 그런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기록은 혼자 있을 때 잘 된다. 브런치처럼 남들에게 보이는 글도 혼자 있을 때 잘 써지는데, 혼자만의 감정을 돌아보고 오롯이 나의 이야기를 사적으로 쓰는 일기야 오죽하랴. 혼자 있을 때 일기를 쓰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


4. 적극적으로 시간 낭비하기 (TV쇼 몰아보기, 소설 읽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70% 정도의 시간은 효율적으로 쓰고, 30%의 시간은 진짜 그냥 대박 낭비하며 시간을 쓰려했다. 원래는 100%를 다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러려고 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너무 스트레스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시간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효율적인 일 자체를 시작을 안 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날, 인강을 좀 듣고 나머지 시간에 계속 드라마를 보면 되는데, 하루 종일 인강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예 인강 자체를 시작을 안 해버리는 ㅋㅋㅋ내 모습에.

그냥 내가 충전하는 시간 (=낭비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뇌를 비우는 시간)을 충분히 인정하기로 했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내가 마음먹은 일들을 시작할 힘이 새로 생기더라. 혼자 있는 시간에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잔뜩 보고, 늦잠도 잔다. 혼자 맥주 한 잔 하고 영화 보다가 졸고 일어나는 그 일상이 너무 편한 충전 시간이다.




이렇게 혼자 시간 보내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예전만큼 만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인 에너지를 훨씬 많이 써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없이는 충전이 되질 않는다. 주말의 하루는 꼭 내 시간으로 빼놓으려 한다. 충전도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효율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보람도 있고.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
혼자 있는 시간이 좋고, 나를 위해서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게 당연하고,
내가 뭘 원하는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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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의존도도 낮아지고, 나를 더 잘 챙기게 되니 자연스럽게 내게 더 많은 기회도 생긴다. 해외에 나가서 일을 해보는 것이나, 나에게 더 잘 맞는 프로젝트들을 시도해보는 것.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 등.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을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오히려 즐겁게 할 수 있다니. 혼자서도 잘하는 게 좋다는 옛 동요가 이렇게 맞는 말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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