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코로나 감염자였을 뉴욕 사람의 자가 격리와 깨달음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중에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 왔다.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 체온을 쟀다. 화씨 100도. 설마? 그냥 감기 몸살이 아닐까?
뉴욕이 코로나19 발병의 중심지가 된지 2주일이 넘은 때였고, 뉴스를 열심히 읽으며 대처법도 머릿속으로 익혔다고 생각했다. 일단 테스트 처방을 받기 위해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의사는 체온이 얼만지, 숨이 막히는지, 최근 감염자에게 노출된 적이 있는지, 최근 주요 발병 지역을 다녀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체온 기준은 100.4도 이상이었고 102도가 넘어가면 응급실로 보낸다 했다. 하지만 내 체온은 100도였고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의사는 경과를 더 살펴 보자고 했다. 우선 열을 내리기 위해 타이레놀을 먹으라고 조언했다. (타이레놀 500mg은 24시간 동안 6개까지만 복용할 수 있다. 그 이상을 적용할 경우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체온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너무 무거워 계속 누워서 잠을 잤다. 이런 조건으로 테스트를 받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무작정 가능한 종합병원으로 테스트를 받으러 간다해도 고열 기준 미만이면 테스트를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TV에서는 병원에 몰아치는 응급 감염자들을 비췄다. 경미한 감염 의심자가 병원을 간다한들 눈길 한번 못 받을 게 분명해 보였다.
드라이브 쓰루 테스트가 가능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도심을 벗어난 브룩클린 최남단, 브롱크스,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 등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고 무조건 전화 예약을 해야만 했다. 그나저나 집에 차가 있어 드라이브 쓰루를 고려해보기나 하지, 차가 없는 도시 거주자들은 이용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 아닌가. SNS에선 드라이브 쓰루 대기줄이 한없이 늘어서 있는 영상이 돌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엘름허스트 시립 병원 밖에는 테스트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기본 네다섯 시간을 기다린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테스트를 받는다 해도 양성인지 음성인지 결과를 알아 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체 왜 이렇게 힘든 건데?
처음엔 테스트를 받기 힘든 이 상황에 화가 났다. 뉴욕에서 10년 정도 살다보면 기본 행정 처리조차 기대 이상의 시간이 요구된다는 걸 알게 된다.(예를 들어 도로교통국(dmv)을 방문한다면 하루를 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하물며 급하게 진행된 감염 테스트같은 절차가 어떤 오류도 없이 단기간에 온전하게 기능을 하리라는 건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그러므로 절차상 지연과 구멍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되지만, 불만은 테스트 전제 조건이었다. 감염 증상이 사람마다 다른데 경미한 감염자는 테스트를 받을 수가 없는 셋팅이다. 가족, 코워커, 지역 주민들을 위해 어느 정도 조심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코로나19로 병가를 받을 수도 없다. 불안하니 증상 검색을 하다 보면 출처도 불분명한 정보들에 더 불안이 가중된다. 이봐, 나 감염되었는지 궁금하다고!!! 어쨋든 CDC와 뉴욕주의 가이드라인은 확실했다. 아픈면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을 것. 즉, 자가 격리를 할 것.
테스트 키트가 부족하고 감염이 광범위하니 가장 아픈 사람들을 우선 순위로 테스트하고 조치를 취한다는 건 현실적인 해결법이다. 테스트를 받을 수 없는 수많은 감염자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 바로, 도시 락다운(lockdown), 봉쇄다. 병원 인력과 침상 등 의료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감염을 줄이는 게 최우선 목표이므로, 뉴욕 락다운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조치다. 병원, 식당, 빨래방, 약국 등 필수 비지니스를 제외하고 모든 샵이 문닫았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매일 타이레놀을 6알씩 먹으며 침대에서 계속 땀을 쏟았다. 후각과 미각이 사라졌고 소화가 안 되고 입맛이 떨어졌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혈구를 응원하기 위해 맛도 모르는 음식을 계속 꾸역꾸역 먹는 일이었다.
뉴욕 상황이 한국 뉴스에 계속 보도되고 있는지 한국 친구들과 지인들의 문자가 이어졌다. 가족들에겐 '아무 일 없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맘 편한 친구들에겐 솔직하게 털어놨다. 격려와 응원이 매일 쏟아졌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친구는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문 앞에 먹을 것을 놔뒀다며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이 매일 쌓여갔다.
마음 편히 몸 누울 집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자며 사회적 거리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화장실이 하나뿐인 방 하나의 좁은 집에서 감염이 되지 않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무엇이든 넉넉하게 쌓아놓는 평소 습관 덕분에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화장지, 타이레놀, 쌀, 마스크가 넉넉했고 정수기 필터도 여분이 많아 물 걱정도 하지 않았다. 매일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숨이 막히는 것같으면 산소 포화도 측정기로 수치를 쟀다. 버텨내야만 하는 싸움에서 우리집은 꽤 안정적인 요새가 되었다. 반조리나 즉석 식품을 좀더 쟁여놨다면 거의 완벽했을 것이다.
열은 삼사일 후에 떨어졌지만 피곤함은 계속 되었고 늘 땀에 젖어 깼다. 그러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땀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백혈구들아 승리했니? 장하다!!!'라며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후각과 미각은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이 다 되어가면서 몸의 기능이 더디게 돌아왔고 온전해지기까지 2주일은 걸렸다. 이겼고 살아 남았다. 미각이 돌아오면 제일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이 승전을 축하 했다.
어쨋거나 양성 판정을 받지 못했으므로 음성 판정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정말 코로나를 이겨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독감 응급 환자는 열이 떨어지고 타이레놀을 먹지 않고 72시간을 버티면 병원에서 퇴원한다고 한다. 우리는 만약 우리 몸에 항체가 생겼다면 혈장을 기증하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뉴욕 병원에서 위독한 환자를 위한 혈장 기증을 받고 있고 기꺼이 돕고 싶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 증거가 없는데 항체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지 의문이긴 하다.
앓으면서 미국과 한국의 대처법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국 식으로 확진자의 동선을 탈탈 털어 모든 감염자를 찾아내서 격리하고 방역하는 방법이 미국에서 가능할까? 초기에는 확진자의 동선이 대중에게 공개가 되지 않지만 역학조사팀이 암암리에 찾아내서 조치를 취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역시나 환상이었다. 감염자가 제발로 찾아오기까지 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감염자를 찾는 작업은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미 중증인 확진자의 상태는 심각해지고 사망률도 높다. 테스트 양성 환자들이 모집단이라고 했을 때, 그 테스트를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가 격리 대전을 치르나 모집단에 포함되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테스트는 병원 입원 절차와 치료를 위한 초기 작업이지 감염 예방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뭔가 미국 정신 같은 게 어렴풋이 느껴졌다. 거친 황야에서 내 몸뚱이에 의지해 자원을 최대한 구해서 버티는 개척자들도 이런 막막한 기분이었을까. 세심한 배려를 고민하는 한국식 복지 방향과는 전혀 상반된 스피릿이랄까. 상대적으로 강한 이들은 알아서 살아남을 것. 지원에 기대지 말고 독립적으로 자신을 챙길 것. 시민을 강하게 키우는 나라로구나.
* 코로나 감염을 대비해 집에 갖춰놓아야 할 것: 정확한 체온계, 산소포화도 측정기, 타이레놀같은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제, 물 혹은 정수기, 소독용 알코홀, 집밖 일처리를 위한 마스크, 스프나 죽류의 즉석/반조리 식품, 체온계 등 의료 기구를 위한 건전지 혹은 충전지, 비누.......그리고 넷플릭스....닌텐도 스위치(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