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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Jan 09. 2020

안녕 서른

나이의 무게에 대하여

서른이 되었다.

지난 한 해를 돌이키자면 커리어의 혼란스러움과 새로운 사랑 그리고 반복된 이별의 연속이었다. 그 어떤 것도 안정되지 못했던 한 해 속에서 나는 ‘아홉수라 그런 거다’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불만족스러운 회사생활 때문이었을까, 일상에서라도 행복을 찾아야겠다며 섣부르게 시작한 나의 연애사도 죽을 계속 쑤다 보니, 이쯤 되면 이번 현생은 망했다며 모든 걸 놓고 놀기 시작했다.

목표도 욕심도 많았던 나에겐 이례적인 한 해였다.


2019년에서 2020년이 넘어가는 그 마지막까지 신나게 놀고 나니 신년 우울증이 찾아왔다.

서른이란 단어가 주는 성숙의 시선에 비해 여전히 덜 자란 나의 마음가짐은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짐짓 머뭇거리게 한다.

어리 다기엔 많고 많다기엔 어린 나이 서른 살. 사회가 주는 시선과 압박 속에서 나는 과연 올 한 해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연말이라고 신나게 나를 찾던 친구들이 월이 바뀌었을 뿐인데 잠잠하다, 행사 치르듯 보낸 12월이 외로울 틈 없이 지나가고 나니 다들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 저마다의 남편, 남자 친구, 혹은 직장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그에 비에 나는 너무 조용하다. 외로움인지 소외감인지 모를 감정이 울컥 드는 요즘이다.


오늘 점심을 먹고 친한 과장님과 커피 타임을 가지는데 ‘이제 재원 대리도 회사생활보다는 좋은 남자 만나는데 집중해서 연애하고, 서른두 살 즈음 결혼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심장 한편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성숙해지는 데에만 집중했지 사회의 틀에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젠 나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인가. 불과 한 달 전에 ‘이제 너도 곧 서른인데, 너를 안정적이게 해 줄 남자를 만나길 바라.’라는 말을 남기고 통보당한 근래의 이별 멘트가 생각났다. 진부하고 고루하다며, 그냥 내가 갑자기 싫어진 나쁜 놈 아니냐며 연거푸 와인을 마셔대며 남자 보는 눈 없는 나를 한탄했는데, 모두가 서른의 나를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사회가 정해준 루트를 따라가는 것이 곧 ‘안정적인’ 삶임을 강요받는 나이.

특출 나게 좋은 직장에 다니지도, 모아놓은 돈이 많지도,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아 아슬아슬하게 ‘평범’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는 나 자신이 그 루트를 아등바등 좇아갈 수 있는 걸까.


아직까지는 내 처지가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올 해의 나는 숫자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나이로 클린 슬레이트를 친 기분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다.

작년까지 고약하게 힘들었던 나의 20대를 화려하게 마무리 짓고 새 출발 하는 느낌으로 평온하게 살아보자는 것이 올해 마지못해서 세운 계획 중 하나였는데, 벌써부터 그 다짐만 생각하고 지켜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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