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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니타 Jun 20. 2018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기는 너무 힘들다.#2

오늘도 회사고민에 잠 못드는 20대의 밤을 위해.

 모두들 잘 지내셨나요. 이전에 업로드한 글에 많은 공감과 걱정어린, 혹은 응원의 댓글을 받았어요. 왠지 모르게 일년 남짓하게 지난 지금의 근황을 두서 없게나마 써봐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어플을 켰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28살의 지금, 저는 27살의 작년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어요. 불안은 떨쳐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20대의 직장인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모두가 좋아하는 건, 해피앤딩이잖아요?



시작해볼게요. 저의 지난 일년을.



일년의 시간을 반추해보면, 참 많은 방황과 실수를 거듭했다. 점점 바닥나는 통장 잔고가 두려워 섣부르게 재취업을 결정했고, 결국 들어간 회사에서는 매일 밤 불행을 못이기며 눈물을 흘렸다. 부정적인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내 마음이 옹졸해지는 기분이었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함을 바짝 곤두세웠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지 않은 매일이었다. 공과 사의 구분이 필요하다지만, 20대의 우리에겐 열심히 일하고, 내 자신을 개발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회사에서의 삶이 내 전체를 지배하곤 한다.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 뒤로 이른 출근과 야근에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력서를 매일밤 고쳐쓰고, 주말에는 토익학원에 나갔다. 약 8년만에 다시 잡은 영어라 쉽지 않았지만 스펙 한 줄이라도 더 적고 싶었다. 과음을 한 다음날에도 멍한 정신을 추스려서 학원에 앉아 있었다. 틈틈히 지원한 회사들에서 면접 제의가 오면 갖은 거짓말을 보태어 반차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갔다. 너무 절박했던 탓이었을까, 1차 면접도 통과를 못할 때도 있었고, 본의 아니게 면접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있어 포기해야할 때도 있었다. 친구들은 이쯤되면 적당히 하고 좀 스스로를 편하게 놓아주라고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미래에 대한 갈망으로 6개월을 꿋꿋이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날, 예전부터 정말 입사하고 싶었던 한 회사에서 구인 공고를 올린 것을 보고 무심결에 이력서를 넣었다. 당시의 나는 매우 지친 상태였다. 같은 회사에 2번이나 지원한 경험이 있었고, 서류 조차도 통과가 못 되었던 터라 큰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회사에 입사한지 4개월째가 되었다.


수 없는 낙방으로 자신감이 많이 결여 되어있던 나는 임원면접에서 상무님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얼마나 지금 맡은 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최종 면접에서 마주한 회사의 대표님의 비전을 보고는 어서 이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던 것 같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내 생각을 똑부러지게 전할 수 있었고, 이에 귀기울여 주시는 분들이었다. ‘네가 뭘 알아.’ 라는 표정보다는 궁금함이 가득 서려있던 그 눈빛에 신이 나서 떠들다 풀린 다리로 휘청휘청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최종 면접에 합격한 뒤로는 래퍼런스 콜부터 인성검사, 그리고 연봉협상까지 정신 없이 입사를 위한 절차가 밟아졌고, 나는 후련하게 다니던 회사를 등진 채, 퇴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단연코 쉬웠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다소 촉박하게 잡힌 입사 일정에 근무하던 직장에는 거짓말을 해야했고, 욕이란 욕은 바가지로 먹었다. 못배워먹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퇴사 직전까지 멸시를 당했던 것 같다. 절벽 끝에 내몰린 상태로 퇴사 준비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더 좋아지려고 내린 결정인데,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고통받는 구나.’ 일종의 현자타임이 오는 것이다. 다시 스멀스멀 부정적인 생각이 뱃골 아래에서부터 간질이고, 온갖 불안증세가 도져서 새로운 회사의 입사가 취소되는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정신병이 올 때 즈음, 지금의 팀장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일은 잘 마무리하고 있어요? 연락을 미리 했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음주 월요일에 봅시다~’


유쾌하면서도 나긋나긋한 팀장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어서 또 눈물이 났다. ‘네. 지금 마무리 하고 퇴근 중입니다. 전화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그 날은 내 생애 가장 가벼운 발걸음의 퇴근길이 아니었나 싶다.




집에서 10분여를 걸으면 도착하는 지금의 회사에서는 좋은 조건의 연봉과 복지 수준을 갖추고 있고, 나는 진급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바로 ‘사람들’과 ‘업무’ 이다.

나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주는 팀장님의 사려깊음과 유쾌함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팀원들과도 더할나위 없이 사이가 좋다. 드디어 내 가치를 알아주는 집단에 소속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치보며 지내던 지난 회사들과는 다르게 지금은 큰소리로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며 농담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책임감은 커졌지만 그 무게는 결코 기분 나쁘지 않다. 매일밤 시달리던 출근병을 가뿐히 이겨내고 나는 자발적으로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며 컴퓨터를 켠다. 이 곳에선 사회생활의 가면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온전히 나를 받아들여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짊어질 수 있는 큰 부담 하나가 덜어지는 셈이다.



20대 평생을 살면서 나는 ‘행복하다’ ‘만족한다’ 라는 말을 한 적이 크게 없다. 내 삶은 언제나 결핍의 연속이었고, 늘 궁핍했으며 결여되어 있었다.

얼마전,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과 간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던 중에 지인이 이직한 회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응, 만족해. 안정적이고, 사람들도 좋고. 너무 좋아. 행복해.’

네가 이렇게 긍정적인 단어들을 한 문장 안에 많이 쓰는 건 처음봤다면서, 정말 잘 지내고 있는가 보다고 다행이라고 했다. 내가 그랬던가? 머쓱하면서도 스스로가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내가 이렇게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이 살면서 몇이나 되었던가.



불행하기에만 숨가빴던 나의 20대는 곧 완연한 후반에 이르게 될 예정이다. 이제 와서야 나는 숨고르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수없이 마음에 생겨난 생채기들에 조금씩 연고를 발라가며 새살이 돋아나길 기다리고 있다. 어제보다 내일의 내가 마음이 좀 더 넓어지길 바랄 수 있게 되었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비단 나 혼자만의 힘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삶에 당도했다고 말할 순 없다.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던 몇 안남은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항상 넌 나의 자랑이었어. 라고 이야기 해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주변을 사랑하고, 하루에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불안의 틀에서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나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참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힘듦은 있겠으나, ‘아이 괜찮아, 이쯤은 그냥 하다보면 되겠지 뭐.’ 라고 말 할 수 있는 자기확신과 믿음을 키우고 싶다.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10대 때부터 꿈에 그리던 런던에 혼자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쿨하게, 안전하게만 잘 다녀오라며, 여행 계획은 단 한 개도 세우지 않은 나를 끌고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로 데려간 팀장님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했다.


누릴 것과 즐길 것은 참 많다. 하지만 많은 20대들은 아직도 많이 아파하고 있다. 우리는 병들어있고 곪아있다. 사회나 나라의 탓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노력하다보면 잘 될거에요! 라고 성급한 일반화의 논리를 내세우고 싶지도 않다.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하자는 ‘소확행’의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지금 내린 선택이 조금 잘못 되었더라도, 많이 마음이 다친 상태이더라도, 울기에만 바쁜 하루라고 할지라도, 당신이 잘못한 것은 한개도 없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취업이 안되는가? 니트족으로 살아보아도 괜찮다. 돈벌이가 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현재의 직장이 만족스럽지 못한가? 모두 괜찮다. 결국 사람들은 다 비슷한 삶의 모습으로 귀결 되는 것 같다. 인생은 나를 그렇게 지나치게 불행하거나 과도하게 행복한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죽을 것처럼 불행하고 괴로울 때,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며 일단 하루을 보내보자. 다만, 나를 포기하진 말자는 이 한마디만 하고 싶다.


건사한 건 내 몸뚱이 뿐인 이 삭막한 세상에서 나를 마냥 놓아주기에 나는 너무 가치있다. 회사가 전부는 아니지만 모두 좋은 집단에 소속되어 그 기능을 다하고 싶은 욕구는 내 또래의 20대라면 모두 느낄 것이다. 나의 자리에는 어딘가에 꼭 마련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수없이 조급하고, 깜깜하고, 의심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믿어야 한다. ‘모두가 다 그럴 것이다’ 라는 심심한 위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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