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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주 Jul 29. 2023

무거운 걱정보다 가벼운 믿음

그리고 약간의 플라시보 효과

 요즘은 숙취가 거의 없고 단련된 편이지만, 숙취를 자주 겪었을 시절에는 술약속이 잡히면 숙취 예방에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이거 때문에 토할 것 같애.”

 “살고 싶으면 마셔.”


 요즘처럼 맛있는 숙취해소음료가 없고 죄다 한약 비슷한 맛만 나는 제품만 팔 때였다. 그래서인지 입에 맞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마시자마자 토를 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애초에 어른 입맛이기도 하고, 숙취에서 구원해 줄 거라는 기대 덕에 곧 잘 마셨었다. 그렇게 한 입에 털어 넣고 술자리에 임했다.

 숙취해소음료를 부지런히 마셔도 숙취는 항상 있다 없다를 반복했다. 두 병을 마셔도 심한 날이 있고, 아예 안 마셨는데 괜찮은 날도 있었다.

 그쯤 되니 숙취해소음료를 마셔서 숙취가 없는 건지 원래 없는 날인 건지 의심을 품게 됐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숙취해소에 큰 기대는 하지 않게 됐고, 그저 ‘안 마시는 것보단 낫겠지.’라는 가벼운 믿음으로 마셨다.


 최근에도 술자리가 있으면 숙취해소제를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다. 서로 나눠 먹으며 술자리를 시작하는 모습은 훈훈한 그림이다.

 효과가 좋다며 새로운 제품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나 완벽하게 깔끔한 아침을 맞이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다. 아마 그런 약이 있다면 개발자는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숙취해소제를 먹어서 이 정도구나라는 마음가짐으로 아침을 시작할 뿐이다. 만약 정말 숙취가 없다면 먹길 잘했다는 뜻밖의 뿌듯함만 덤으로 따라온다.



 숙취해소제의 효과가 없을 때에는 해장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는 축 늘어져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정말 심한 분들은 포도당을 맞으러 병원으로 향하기도 한다.

 나는 대부분 뭔가를 먹으면 해결이 될 정도여서 식당 오픈 시간이 되면 서둘러 해장을 하러 떠난다.


 콩나물이나 북엇국이 해장에 좋은 성분들이 있다곤 하지만 꼭 챙겨 먹진 않는다. 라면이나 짬뽕 같은 얼큰한 국물을 먹기도 하고, 공식처럼 순대국이나 뼈해장국집을 찾기도 한다. 꼭 국물이 아니더라도 기름진 피자나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따져보면 숙취에 좋지 않은 음식들인 걸 알면서도 그날의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는다. 잘 넘어가지도 않는 걸 애매하게 먹느니 좋아하는 걸로 누르는 게 속 편하기 때문이다. 정말 속이 풀리는 게 아니라 기분만 풀리는 걸 수도 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친구 집에서 자기로 작정한 날이나 여행을 떠날 때, 해장 맛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기준은 해장에 좋은 성분이 있는지가 아니라 해장에 어울리지만 맛이 있느냐가 된다. 아마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해장은 꿀물을 타먹거나 생수를 들이키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분들이 소개하는 해장에 좋은 음식들을 본 적이 있다. 유용한 내용이었고, 그걸 꾸준히 챙기는 사람들을 말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더 피곤한 일이었다.

 술 마시기 전 맛집을 앞에 두고 우유나 달걀을 챙겨 먹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매번 꿀물을 타 먹고 토마토를 갈아 마시지 않는다.

 정말 빠른 신체적인 변화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극적인 해장을 경험한 적도 없다. 술자리에 앞서 너무 배가 고파 삶은 달걀 하나쯤 먹을 수 있고, 시원한 국물보다 토마토주스가 끌린다면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맛있는 안주를 위해 배고픔을 참고, 토마토주스보다 시원한 국물이 끌리는 게 나의 진심이다.


 이쯤 되다 보니 숙취나 해장에 대해 예전처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쾌환 먹었으니까 괜찮겠지. 일단 마시자.’

 ‘오늘은 시원한 물냉면이 땡기는데.’


 숙취와 해장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며 걱정과 근심에 빠져있기보다 가벼운 믿음과 마음을 가지며 산다. 

 숙취해소제에 의존하기보다 플라시보 정도만 기대하는 게 속 편하다. 나에게는 말을 많이 하면 알콜이 빠진다는 말이 더 와닿았다. 그래서 맘껏 떠들며 마시는 걸 최고의 숙취 예방법으로 여긴다.

 술자리를 후회하며 어제의 나를 원망하기 보다 해장을 핑계로 간만에 곰탕 맛집으로 향한다. 진한 국물 한 그릇에 ‘술 좀 더 마실 걸 그랬나.’라며 해장의 기분을 느낀다.


 기왕 즐길 거라면 제대로 즐길 생각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좋은 술자리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말 진지한 고민이었다면 애초에 술자리를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렇듯 모두가 술을 쉽게 끊진 않을 테니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즐기다 보면 주량도 늘고 지금의 나와 주변 친구들처럼 숙취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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