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해서 말했다고 진심이 아닌 게 아닌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헤어진 애인이 보고 싶다는 얘기들을 종종 듣곤 한다. 맨정신에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되뇌며 애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을 혼자 고민하다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할 때 즈음, 술이 들어가면 결국 주정으로 털어놓게 된다.
"걔한테 다시 연락하면 이상할까?"
그리고 잇달아 여러 의견들이 분분해진다.
"술 마실 때마다 그 소리 할 거면 지금 해."
"아니야. 술 깨고 해. 취해서 하면 진정성 없어 보여."
"여태 그렇게 욕하다가? 너 취해서 그런 거야. 내일 되면 후회할걸?"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고 가지만 한순간에 결정을 내리긴 어렵다. 다시 연락하고 싶다는 말 자체는 취해서 꺼냈지만,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취하지 않았을 때에도 머릿속을 오래 떠다니고 있었을 테니까.
당장 술자리에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이성 속에 숨겨뒀던 감정들을 푸념하고 위안 받는다. 정신은 취했지만 판단은 또렷하게 이어질 준비를 시작한다.
정말 꺼내고 싶은 말들은 술병이 늘어남과 동시에 나온다. 맨정신에 전 애인 얘기를 한다면 취했을 때와 다르게 미련 없는 척하거나 단순히 욕만 할 수도 있다. 다시 연락하고 싶다는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맨정신보다 술자리에서 더 진심으로 보이곤 한다.
이를 보며 누군가는 술주정이라며 습관적으로 다그치곤 한다. 왜 취해서 평소에 않던 말과 행동을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다그치기보다는 더 귀 기울일 법도 한데도 말이다.
주정 같아 보여도 어쩌면 당사자에겐 속으로만 참던 진지한 고민일 수 있다. 취한 상대의 말을 가볍고 한심하게 본다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올 때, 맨정신에만 진심을 가둬둘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모두 진심이 아니라 그저 맘에도 없는 술주정이라고 각자의 머릿속에 굳혀져 갈 테니까.
주변의 다그침 때문에 취해서 그런 거라며 자신의 생각을 버릴 필요도 없다. 그 대화를 이해하고 함께 술잔을 나눌 사람들은 언제든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면 된다.
나 또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꽤나 괜찮은 술주정을 주고받으면서 취했을 때의 나를 인정하며 살고 있다. 취했건 취하지 않았건 모든 행동과 생각들이 나에게로부터 나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진심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나는 그렇게 술로 주정을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