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 둘이라 더 아름다운 날.
제주에 살면 점심 한 끼도 소중한 일상이 된다.
오늘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사계리에 있는 장어집, ‘사계의 시간’ 때문이다. 이곳은 하루 50인분만 파는 장어덮밥으로 유명하다.
정해진 만큼만 정성껏 만드는 사장님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 살면서 이런 식당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건 작지만 확실한 제주의 기쁨이다. 주말이면 가끔 고민이다. 카페 브런치를 즐길까, 아니면 이곳 장어집에 갈까. 오늘은 주저 없이 장어를 택했다.
식당 뒤 주차 공간은 단 세 대. 우린 사계항 근처에 차를 두고 천천히 걷는다. 바람 따라 걷는 이 길도 사계의 일부다. 오늘은 줄이 좀 길다.
하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나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길 건너편에서 식당을 바라본다. 차도 옆에 조심스레 서서, 스케치를 시작한다. 슥슥— 오래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건물의 외관. 그 꾸밈없는 모습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대개 그렇게 겉보다 속이 단단한 곳들이다. 조금은 낡았고, 불편하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이 신뢰를 준다.
드디어 우리 차례. 스케치를 접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음악이 반긴다. 김광석의 노래다.
언제 와도, 늘 그가 이 공간을 채운다. 사장님이 김광석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몇 년간 이곳을 다니며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나는 그동안 사장님과 많은 말을 나누지 못했다.
늘 묵묵히, 단답형으로만 응대하시던 분.
예전에는 혼자 운영하셔서 반찬도 손님이 직접 가져다 먹었는데 오늘은 따뜻한 분위기의 여성분이 함께 계신다. “이제 좀 여유 있으시겠어요?” 조심스레 묻자, “작년에 결혼했어요. 이 사람이랑.”
사장님이 살짝 웃으며 답하신다.
몇 년 동안 다닌 단골이지만, 오늘 처음으로 두 문장 이상을 나눈 날이다. 무뚝뚝한 듯 다정한, 그 미소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혼자보다 둘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오늘 이곳에서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도 조용히 웃으면서 말한다 ‘여보 lovely'.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영국인 남편은 나를 가끔 귀엽게 '여보'라 부른다.
마침 흘러나오는 다음 곡은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두 바퀴— 둘이라는 의미가 마음속에 스민다. 그 곡을 배경으로 두 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서로의 삶을 천천히, 함께 굴러가는 그 두 바퀴처럼.
장어덮밥을 받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재료 소진’이라는 안내문이 붙는다. 이 집은 하루 50인분만 만든다. 그것이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게 사장님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하게 욕심내지 않고, 하루를 담백하게 살아내는 삶. 누군가는 더 많이 벌기 위해 바쁘게 달리고, 또 누군가는 덜 벌더라도 여유롭게 살아간다.
그 모두가 제주의 시간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중 어디에 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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