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온길 공간 스토리 ⑤ 자온양조장
지난 번 이안당 이야기를 해 드렸는데요. 이안당을 잘 살펴 보면 얼마나 멋을 부리고 집을 지었는지 몰라요. 그것만 보아도 당시 그 댁의 위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안당 바로 곁에 '자온양조장'이 있습니다. 이안당은 이 양조장의 주인 어르신이 살던 주택이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기를, 자온양조장에는 인부뿐 아니라 술을 배달하는 사람만도 여럿이었다고 해요. 아마 전성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겠죠. 그리고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쌓였을 거예요.
자온양조장의 공간은 아직 구상 중입니다.
자온양조장은 자온과실주와 자온약주가 유명했대요. 양조장에는 술을 빚을 때 사용하던 우물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양조장의 공간에는 원료실, 제성실, 배합실 등 아직 옛 간판이 남아 있기도 해요. 저는 술을 만들던 공간이었던 성격을 살려 이 곳을 크래프트 비어 브루어리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앞의 창고는 펍이 되면 멋질 것 같아요.
크래프트 비어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펍이 부여에는 마땅히 없거든요. 지역민에게도, 여행객에게도 즐거운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아주 예전에 흥겨웠던 양조장의 풍경을 다시 살려내고 싶어요. 자온양조장이 품고 있는 그 스토리 그대로, 지역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여행객들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어요.
양조장에는 기물들을 보관하던 창고가 두 개 딸려 있어요. 하나는 규모가 꽤 크고 하나는 약간 작아요. 싱크대 공장이 이 공간에 잠시 머물다 야반도주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공장의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쓰레기가 쌓여 있다 보니 동네의 각종 폐기물들이 더해져 양조장 마당이 하나 가득 쓰레기였죠. 그 쓰레기를 치우는 데에만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이 들었어요.
저는 이 창고 두 곳을 갤러리로 변신시키고 싶어요. 한 곳은 공예 전문 갤러리, 한 곳은 경계 없이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는 순수 미술 갤러리. 지역에 갤러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삭막한 일인가요.
저는 고향이 천안이었어요. 작은 소도시였지만, 아라리오 갤러리라는 아주 훌륭한 갤러리가 있었죠. 그 당시 한양백화점(지금은 신세계백화점) 꼭대기에 현재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신 격이었던 작은 갤러리가 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시내로 학교를 다니게 된 저는 방과 후에 갤러리에 가서 노는 게 큰 즐거움이었어요. 전시가 자주 바뀌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그 작은 소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걸 지금도 행운으로 여겨요. 아직도 그 때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떨림들이 기억이 나요.
어쩌면 지금 이런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게 된 데에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영향이 매우 컸을 거예요. 지역의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갤러리에 와서 자주 놀았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럽게 예술이 주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그것이 두고두고 그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살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기를, 작가가 만든 예쁜 그릇과 멋진 가구를 쓰는 즐거움을 아는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의 목적은 사람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비단 아이들만을 위해서는 아니에요.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지역에 주기적으로 좋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 갤러리에서 작품을 보면서 쉴 수 있다면 어른들의 삶에도 큰 위로가 되겠지요. 이런 문화시설이 지역에 있어야 젊은 인구가 유입되고 자연스럽게 지역이 살아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