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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am Nov 04. 2020

아이의 변호인이 되어주세요.

도전행동에 대한 중재 방법 하나.

H가 씩씩거리며 특수학급으로 내려왔다.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는데 별 대꾸도 없다. 잠시 그냥 두기로 했다.

찬찬히 살핀다.


검은색 교복의 오른쪽 어깨 죽지에 뭔가 잔뜩 묻었다. 가리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주먹에 까진 부분이 선명히 보인다. 어딘가에 세게 펀치를  날린 것이 분명하다. 손의 상처는 심하지 않아 보이니 한숨 돌리고, 혹시 학교 기물 파손으로 징계라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스친다. 하지만 원적학급에서 별다른 연락도 없었으니 크게 비상상황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며 차분히 다시 말을 걸어본다.


옷에 뭐가 많이 묻었네...

마음을 직접적으로 읽어주는 것이 통하지 않을 때는 이런 식으로 에둘러 말을 거는 것이 꽤 효과가 있다. 대화의 주제가 내가 아닐 때 부담은 꽤 줄어드는 법이니까.

 

H는 교실에서 반장과 다른 한 무리의 아이들 간에 말싸움이 있었다고 했다. 반장의 편이 되어 말리려고 했는데 통하지 않아 화가 난 나머지 참지 못하고 칠판 옆 게시판을 주먹으로 쳤다고 했다.


어떤 포인트에서 마음이 힘들었는지 재차 물었다.

1. 반장에게 뭐라 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빠서

2. 싸움을 말리는 내 말을 듣지 않아 무시당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3. 말싸움을 하는 갈등 상황 자체가 싫어서

혹시 이 셋 중에 H의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H는 3번을 골랐다. 예전에도 교실에서 갈등이 있었을 때 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집에 가서 어머니께서 걱정하실 것이라며 어머니의 마음을 오히려 걱정했다.


H의 하교 후, H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히 말씀드렸다. 얘기가 다 끝나갈 때 즈음 어머님이 요즘 내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며 미안해하셨다. 


아마 통화가 아니라 면담이었다면 나는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혼내지 마시라고 재차 말씀드렸다. 이미 H는 엄마가 혼내는 마음이 본인을 걱정하는 마음임을 잘 알고 있음을. 그러기에 본인을 소중히 여기도록 이야기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친구들의 관계, 전체적인 분위기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만드는 것(흔히들 남의 일에 별 관심 없다고 알고 있는 자폐 아이들 가운데서 의외로 이렇게 분위기에 예민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있다.)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너 자신의 몸도 중요하다고. 너 스스로 소중한 너의 손에 상처를 내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고 말해주었으니 같은 방식으로 말해주시면 좋겠다는 조언을 드렸다.




힘주어 조언을 드린 것은, H의 어머니 모습에서 나 자신을 얼핏 발견했게 때문이다.

내 아이가 무엇인가 잘못을 했을 때, 내 아이의 마음보다 먼저 주변 상황, 내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실수를 나 역시 자주 한다.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게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법이나 규정들이 모두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부모의 그러한 행동은 옳고 그름의 판단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어쩌면 주변을 더 많이 의식하여 눈치를 살피는 부모의 평소 태도에 의한, 그로 인해 자신의 민망함, 미안함을 덮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잘못이 내 탓 같아서. 내가 아이를 잘 가르치지 못해서인 양.. 내가 잘 가르쳐보겠다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행동 말이다.

어른으로서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상대 입장에서는 안심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그렇게 하는 동안 당사자인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는 아이의 변호사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천인공노할 범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변호사를 붙일진대 고작 아이가 한 잘못에 대해 아무도 변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냉정하다 못해 잔인한 일이다.


잘못은 잘못이다. 잘못을 부정하고 핑계 대고 합리화하며 아이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부모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되, 다만 부모는 내 아이가 왜 그렇게 했는지,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제대로 알고 아이가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가 잘못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아이의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


교사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딱 이 경우에 적용되는 말이다.

잘못은 있는 그대로 알려주되,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면 아이는 좀 더 성장하고 변화할 것이다.


너는
참 소중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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