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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am Nov 17. 2020

네 인생은 너의 것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렴.

W는 오늘 점심을 먹고, 12시에 직업 실습 업체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녀석은 여유가 있다며 강당에 배드민턴을 치러 간다고 했다. 시간 잘 지켜서 가라고 무심한 듯 말하고 나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지만, 밥을 먹다 말고 이내 강당으로 쫓아 올라갔다. 지금 출발해도 늦는다는 말을 전하러 갔는데, 내가 찾기 전에 이미 나를 본 W는 벌써 내 시선을 애써 피하며 배드민턴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나가야 해."

"조금만 더 치고요."


W는 이미 내 말을 들을 태도가 아니었다.

잠시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혼을 내서라도 보낼 것인가, 그저 내버려 둘 것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지금 나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늦게 될 거야.
분명히 말했다!


내가 해 줄 것은 여기까지다. 선택은 너의 몫이다.

그 책임을 이번에는 나도 같이 질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는 너 혼자 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가 아니라, 좀 더 나아간 사회에서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에 책임지는 경험을 한 번쯤 경험해 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쓰이셨던 학습지원단 선생님은 나 몰래 올라가서 부랴부랴 보내셨다. 하지만, W는 결국 늦어서 학교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나는 그것이 참 잘된 일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W에게 이것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키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결과를 몸소 체험하고 감당해야만 하는 경험,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겪어봐야 할 그 경험을 사회에 나가기 전에, 이해받고 용서받고 배움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학교에서 꼭 겪어보길 바랬다.




실습지에 가지 못한 W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 마저도 내 전화는 받지 않아, 원적학급 담임 선생님의 힘을 빌어 학교로 안 오면 무단조퇴 처리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선도위원회를 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통해서. 그런 협박성 연락이 없었어도 학교로 돌아왔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녀석에게 그전에 들은 것은 '집에 가도 돼요?'라고 전화한 것을 받아, 안된다고 학교로 돌아오라고 이야기했지만 녀석의 시원한 대답은커녕 불만이 가득한 툴툴거림을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너는 알고 있어,
자신을 속이지 마!


W와 마주 앉았다.

있었던 일을 되짚으며 왜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녀석은 역시나 핑계를 대고 남 탓을 하며 거짓을 섞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너 스스로 알고 있을 거라고. 네가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진짜 이유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아도 좋으나, 스스로를 속이며 거짓을 만들지는 말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부정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잠시 침묵 후에, W는 실습업체에서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배드민턴을 더 치고 싶었노라고 말했다. 그 마음은 나도 이해하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었느냐는 질문에  녀석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했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 말하지 못하고, 안 하는 것처럼 포장하려 하기도 하며,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 인정하지 못하고 되려 화를 내고 큰소리를 치다가 끝까지 궁지에 몰려서야 하는 수 없이 인정하는 자존감이 바닥인 녀석.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지만, 그 이유가 반항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인 안쓰러운 녀석이다.

그래서 W는 가끔 이렇게 둘이서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면 놀랄만한 속 얘기를 아주 가끔 한다.

그것이 이 녀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실습업체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업무가 아니라고, 어느 직장에서든 갖춰야 할 기본예절ㅡ사회생활의 기본인 인사, 약속시간 지키기, 시간 관리하기, 자신의 일이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등이 먼저라는 일장 연설을 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너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라고 촌철살인 같은 지적도 함께 했다.


마음은 있는데,
저한테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 그런 인정 좋아!

그렇게 솔직히 얘기를 할 때 대화가 되고 누군가 너를 도와줄 수가 있다고 말하며 나는 웃었다.


알고 있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어찌해 줄 수가 없다고. 나는 그래서 최근 너를 도와줄 수가 없었노라고.  하지만 네가 어렵다고, 도와달라고 한다면 언제든 가능한 대로 내가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W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퍼붓던 내 잔소리가 현저히 줄었음을.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녀석에 대해 내가 조금 지치고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전략 수정이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


나는 물었다.

내가 계속 W에게 조언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그저 지켜보기만을 바라는지.

그 질문을 하고선 나름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내버려 두라고 말할까 봐.


다행히도 W는 나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말했고,

나는 재차 확인을 했다.

내가 조언을 하는 말을 들을 생각은 있느냐고.

나는 무시당하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무시당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W이기에 내 말을 잘 이해한 듯했다. W는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잔소리는 그 즉시 시작되었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일을 시작하겠다고 신청한 것이 너였다고.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알겠다고 대답한 녀석은,

벌써 시작이냐는 듯이 씩 웃었다.


다시 시작이다.

잔소리 일발 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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