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을유문화사 신간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
몇 주전에 을유문화사에서 주최하는 서평단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었다.
책과 함께 배달된 지침서에 블로그에 서평단 선정 사실을 알려야한다고 해서 올린 것이었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기일은 1월 13일이지만 다 읽는대로 기다리지 않고 서평을 올려버려야지 했는데, 책의 두께도 두꺼울 뿐 아니라, 책의 내용도 생각할거리가 많아 마감일에 맞춰서 서평을 올리게 되었다.
책에 대한 기본 정보는 아래와 같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
저자: 디트마어 엘거 Dietmar Elger
출판: 을유문화사
2024년 12월15일 출간
ISBN: 978-89-324-3157-4
http://www.eulyoo.co.kr/books/book_view.php?idx=2579&cat=
이번에 책 읽느라 책을 들고 다니다보니 지인들에게 게르하르트 리히터에 대해서 아는지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국내에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전시가 열린 적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게르하르트 리히터라는 작가에 대해서 국내 미술관객들이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것이다.
https://www.gerhard-richter.com/en/art/paintings/abstracts/colour-charts-12
게르하르트 리히터 (Gerhard Richter: b. 1932)는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로 데이비드 호크니나 제프 쿤스와 함께 언급되는 작가다. 70여년 간의 작품 활동을 이어오면서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본문만 무려 650페이지인 이 책에는 그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개인사는 물론이고 그의 대표작들, 이제까지 미공개였던 작품들의 도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밖의 작품을 살펴보고 싶을 때엔 그의 웹사이트를 이용하기를 권해드리는 바다.
https://www.gerhard-richter.com/en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리히터는 '세계 100대 미술가' 에 20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존재다.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봐도 수수께끼는 깊어만 간다. 그는 많은 유명 작가들과는 달리 이른바 그의 작품임을 금방 알 수 있는 ‘시그니처 스타일’이 없다. 이 때문에 리히터의 작품은 종종 "작가 없는 작품"으로 불릴 만큼 해석이 난해하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불확실성"이다.
여러모로 수수께끼 같은 현대 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불확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 줄 책이 바로 이 저서,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이다. 디트마어 엘거가 저술한 이 책은 리히터의 친구이자 비서, 아카이브 책임자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활용하여 이 현대 미술의 거장의 사생활 뿐 아니라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평전이다.
책의 구성은 한편으로는 1932년생인 작가의 인생의 궤적을 따라 구성되어 있으면서 또 다른 편으로는 해당 기간에 중요한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리히터의 작품 세계뿐 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삶과 경험도 풍부하게 다루고 있어, 예술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리히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출생과 유년시절의 경험과 동독에서의 탈출 경험이 그의 예술과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세계
그의 작품은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채색과 단색을 넘나든다. 특히 사진과 회화를 융합한 독특한 양식은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끝없는 불확실성"이라는 그의 철학을 구현한다.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맥락이 담긴 작품들
나치 독일에서의 어린 시절, 동독 탈출과 서독 정착은 그의 작품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 평전에서는 그러한 측면을 다양한 작품들의 예시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리히터가 자신의 유년 시절 스냅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마리안느 이모>나 <루디 삼촌> 같은 작품들이었다. 리히터는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작품의 해석을 관람자에게 맡기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개인적 배경과 시대적 맥락을 바탕으로, 그 불확실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 작품들이 단순한 가족의 초상이 아니라, 리히터의 개인사와 독일 현대사의 상흔이 녹아든 깊은 서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리안느 이모>는 나치 독일의 정책에 희생된 이모가 소녀일 때 아직 어린 리히터와 찍은 사진을, <루디 삼촌>은 나치로 활동하다가 전사한 삼촌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회화다. 이 두 작품은 내막을 모르고 보면 그냥 초점을 흐린 사진 회화이지만 그 속에 역사적·개인적 복합성을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미술사적 통찰과 현대 미술의 질문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고만 생각했지만 리히터의 예술은 전통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대 미술의 경계를 확장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그의 풍경화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현대적 시각을 부여했던 것이다. 동독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배운 그는 이를 자본주의적 맥락과 결합해 독창적인 "캐피탈리스트 리얼리즘"을 만들어냈다. 후기 추상 작품에서는 미니멀리즘을 수용하면서도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가미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사진과 회화의 융합:
리히터의 대표적 기법인 '사진회화'는 사진의 객관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해,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사진회화는 사진의 객관성과 회화의 주관성을 결합하며,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대표적인 '블러' 기법은 현실과 환영을 동시에 드러내는 혁신적 접근이다. 이 평전을 통해서 그가 왜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의 작품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이해를 돕는다.
결론: 기억과 불확실성 속에서 탄생한 독창성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통을 재해석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예술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그의 작품 세계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현대미술의 지속적 대화와 확장을 보여준다. 리히터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관람자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예술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리히터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영원한 불확실성』은 단순한 평전을 넘어, 현대미술의 복잡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깊은 통찰과 영감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다시한번 찬찬히 읽어보려한다. 이렇게 복잡하면서 흥미로운 작품 세계를 접한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웹사이트
https://www.gerhard-richter.c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