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많이 몰린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오던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에 올 때마다 주변 경관과 건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주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데, 늘 그렇듯 이번에도 전시 관람 예약일에 맞춰 부랴부랴 달려오게 되었다. 국립과 시립 박물관, 미술관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인데도 이렇게 가끔씩만 찾게 되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내세우고 있는 전시인데 이 두 작가 이외에 1900년대 비엔나에서 활약했던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더 풍성했던 전시. 에곤 실레의 드로잉 실력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
Vienna 1900. The Dreaming Artists
From Gustav Klimt to Egon Schiele
The Leopold Museum Collection
국립중앙박물관
2024.11.30~2025.3.3
이번 전시는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2024년 11월 30일부터 2025년 3월 3일까지 진행된다. 아직 표를 구매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관람을 계획해보시길 추천한다. 참고로 예매를 했더라도 매표소에서 종이 입장권을 받아야 하며, 예약한 시간대에 맞춰 입장해야 한다.
전시에 대한 개요는 아래와 같다.
프롤로그 -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
I.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
II.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
III. 일상을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탄생
IV.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
V.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
에필로그 - 예술에는 자유를
전시는 크게 프롤로그, 비엔나 분리파, 새로운 시각, 일상을 예술로, 강렬한 감정, 선의 파격, 에필로그로 나뉘어 있다. 19세기 말 비엔나 분리파가 형성된 시기에 활약했던 6명의 예술가에 대한 이 전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설명문을 제외하면 크게 5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있다. 소제목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라는 유명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긴 했는데, 전시 전반적으로 봤을 때 클림트의 작품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에곤 실레의 작품은 수가 많기도 했고 유명 작품들도 와 있어서 에곤 실레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진 디자인 분야에서의 대가들인 콜로만 모저나 요제프 호프만의 작품세계와 그의 대표작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을 위시한 북유럽 쪽에서 강세를 이루는 표현주의의 대표작가 중 하나인 오스카 코코슈카와 나도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된 리하르트 게르스틀이라는 작가의 작품들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롤로그 - 비엔나에 분 자유의 바람
전시 초입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에 대한 안내가 나온다. 비엔나 분리파 빌딩에 있는 프리즈니까 이 작품이 직접 온 것은 아니고 디지털 이미지로 그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사실 클림트 작품은 이 곳과 나중에 실레와의 누드 드로잉 몇 점과 포스터 몇 점 이외에 큰 작품들은 없었다. 그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혁신의 상징 베토벤을 위한 전시회. 영상으로만 봐도 웅장하고 멋있었다. 베토벤 프리즈는 직접 오스트리아에 가서 보는걸로.
I. 비엔나 분리파, 변화의 시작
비엔나 분리파 (Vienna Secession), 비엔나 세체시온은 구태의연한 관습에 얽매인 관학파로부터 '분리'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네이밍이다. 클림트를 필두로 뜻을 같이한 작가들이 모여 '총체 예술'을 지향하며 함께 잡지를 출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가게 된다.
전시 초입에서는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에 대한 디지털 이미지가 소개되었다. 비엔나 분리파 빌딩에 있는 실제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비엔나 분리파가 지향했던 '총체 예술'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클림트를 필두로 뜻을 같이한 작가들이 모여 잡지를 출판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비엔나 분리파가 만든 잡지 "베르 사크룸"의 표지 디자인들도 눈길을 끌었다. '성스러운 봄'이라는 뜻의 이 잡지는 아르누보, 혹은 유겐스틸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데, 참여 작가들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를 통해 '순수 예술'뿐만 아니라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일상 용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의 '총체예술'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알프레드 롤러의 제16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회 포스터였다. 그가 제작한 포스터의 폰트가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되어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는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의 혁신적인 디자인 감각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카를 몰의 목판화 연작 "베토벤의 집이 있는 거리"도 인상적이었다. 필력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이 작품들은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다.
II. 새로운 시각, 달라진 오스트리아의 풍경
이 섹션에서는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아시아 지역까지 여행하며 새로운 예술을 접하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던 면을 살펴보고 있다.
에른스트 슈퇴어의 "호숫가의 남녀" 작품도 흥미로웠다. 뒷모습을 그린 인물화의 경우, 독일 낭만주의 대표작가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주로 많이 그렸던 스타일이다. 이 작품에서는 북유럽 특징의 정서와 낭만주의적 분위기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및 점묘파의 영향이 보인다.이는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이 다양한 예술 사조를 수용하고 재해석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크지 않았지만 인상적이었던 작품 2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디자인으로만 알고 있어서 회화 작품이 콜로만 모저의 작품인 것이 의외였다. 설명문대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한 예술가다왔다. 특히 <마리골드>라는 작품은 색감과 구성이 뛰어나서 계속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하겐 클럽과 알빈 에거-리엔츠
하겐 클럽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 중에 소위 '순수미술'쪽에 더 집중했던 작가들의 그룹이었던 듯하다. 그 중에 알빈 에거-리엔츠의 작품은 프랑스의 바르비종 화파의 장-프랑소와 밀레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쿠르베의 작풍을 연상시킨다. 알빈 에거-리엔츠의 작품 덕분에 비엔나 분리파 작가들이 전부 아르누보 혹은 유겐스틸 스타일로만 작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III. 일상을 예술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의 탄생
콜로만 모저의 유리잔 디자인은 정말 감탄을 자아냈다. 은은하게 다른 색상들로 만들어진 색색깔의 유리잔은 나도 모르게 계속 사진을 찍게 될 만큼 아름다웠다. 이를 통해 일상 용품에서도 예술성을 추구했던 비엔나 분리파의 정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생필품도 예술가에게 주문하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요제프 호프만의 경우,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자나 테이블을 단순하고 절제된 미감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예견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창문, 문, 가구, 식기 세트들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제작하였는데 이는 영국의 예술공예운동의 움직임과도 상통하는 점이다.
IV. 강렬한 감정 표현주의의 개척자들
이 섹션에는 표현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에곤 실레를 위시해서 오스카 코코슈카, 그리고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이번 전시의 장점은 비엔나 분리파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뿐 아니라 다양한 작풍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네번째 섹션이 가장 그 특징이 잘 두드러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 짧은 인생을 살면서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동료이자 제자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신예술가그룹이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아래의 두 작품은 처음 보는 에곤 실레의 작품들이었는데, 클림트의 영향은 물론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도 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색감도 아름답고 채색법도 깔끔해서 아름다웠다.
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기도 하는 오스카 코코슈카의 개성이 잘드러나는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피에타>라는 작품은 연극 <살인자, 여성들의 희망>을 위한 포스터로 제작된 것이다. 이 포스터에는 슬퍼하는 성모와 죽은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전통적 피에타의 도상을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리하르트 게르스틀이라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접했는데 강렬한 작품들이 많아서 놀랐다. 특히 자화상의 경우, 어두운 청록색 벽을 배경으로 마치 샤워를 갓 마친 것 같이 허리 아래쪽으로 타월을 두른 남성의 초상화로 그렸는데 눈빛이 무척이나 강렬하다.
V. 선의 파격 젊은 천재 화가의 예술 세계
이 섹션은 주로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1918)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번에 소개된 작가들 대부분은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세상을 떴다. 그 중 하나도 에곤 실레인데, 갓 결혼한 신혼인 상태에서 그의 신부가 스페인 독감으로 세상을 뜬지 사흘만에 자신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였다. 만 서른살도 되기 전에 요절한 작가임에도 걸작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번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위시해서 그의 드로잉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년전 프리즈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국내에서 에곤 실레의 인기는 가히 놀라왔다. 그의 대표작인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앞에는 인파가 끊이지 않아 사진 촬영하기도 어려웠다. 직접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품의 크기가 크지는 않다는 것에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가 강렬한 것에 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에곤 실레의 작품들은 역시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앞에는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크기가 크지 않았지만, 그 이미지의 강렬함은 여전했다. 실레의 독특한 손의 제스처가 드러나는 작품들과 사진들도 인상적이었다.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실레의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나무 (겨울 나무)>였다. 일견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구부러진 나무가지의 모습이 보이는 이 작품에서 연약함과 외로움, 그리고 동시에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전시는 비엔나 분리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했다. 유명 작품들뿐만 아니라 덜 알려진 작품들을 통해 비엔나 분리파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전시이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보다 많은 이미지와 함께 리뷰를 읽어보시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eunicemin/22370391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