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분 주차, 40분 종이 티켓 발권 및 입장 대기, 40분 관람
40분 주차, 40분 종이 티켓 발권 및 입장 대기, 40분 총 관람 시간.
이것이 이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반 고흐전의 경험 요약이다.
미리 밝혀두지만 미술사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일을 해온 나로서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가 무척 반갑다. 지난 수년간 한국에서 좋은 전시들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매 전시마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매 전시마다 장점이 있고 배울 점이 많았다. 예전에 비해서 이런 수준의 전시가 많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라고 생각하는바다. 그리고 이러한 전시에 많은 관람객이 모이는 것도 무척 바람직하다. 관람객이 모여야 그 자본으로 그 다음의 또 다른 좋은 전시를 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서 전시자체의 퀄리티보다는 작가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무분별한 티켓 발매와 굿즈 판매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반고흐 전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라는 건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전시는 알찬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는 Kröller-Müller Museum에서 반 고흐 작품을 가져온다고 알려져서 연일 SNS에 사람이 많다는 소식과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이 미술관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과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 중 하나이니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했다. 심지어 얼리버드 티켓 기한이 2024년 12월 31일에서 1월 26일까지 연기될 때 알아봤어야했다.
� 주차부터 난관
평일 오후 방문했는데도 주차장이 만차!
음악당 쪽까지 가도 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나는 지난 몇 달간 감기로 컨디션이 나빠 전시보러 다니질 못한 상태에서 얼리버드 티켓 기한이 다 되어서야 전시장을 찾았다. 평일 오후 2시반 정도에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긴 했는데 주차부터 난황이었다.오전에 일정이 있어서 차를 가져갈 수 밖에 없어서 차를 가지고 간 것이 실수였다. 미술관 근처 주차장은 만차라 결국 음악당 쪽에 차를 대려고 갔는데 거기도 차 댈 데가 없어서 한참을 헤맸다. 주차할 곳을 찾는데만도 3~40분이 걸렸다. 미술관 안에 들어가니 인산인해.
� 입장까지 3단계 대기
1️⃣ 예매자도 현장 발권 필수
2️⃣ 태블릿으로 번호 입력 후 호출 대기
3️⃣ 호출 후 다시 입장 줄 서기
이 모든 과정에 40분 이상 소요…��
어떻게 된 것이 이미 예매를 한 사람이나 현장 티켓 구매하는 사람이나 같은 줄을 서서 종이로 된 티켓을 발급받아야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예매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이미 붐빈 상황에서 현장 티켓 판매를 계속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긴 행렬을 줄을 서서 티켓을 발급받고 났더니, 이번에는 태블릿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란다. 나중에 폰으로 호출이 오면 드디어 입장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 호출을 받으면 입장하는 줄을 설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다. 태블릿에 내 번호를 입력하니 부여받은 번호가 80. 내 앞에 79명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들으니 그 날 나는 양호했던것. 어떤 분은 350이라는 숫자가 찍히더란다. 애초에 이중으로 티켓을 발급하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미어터지는데 계속 현장에서 티켓을 판매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티켓을 판매할 때 시간대별로 끊어서 입장을 허가하든지 해서 인파를 통제했어야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를 작작 팔았어야한다.
그래도 입장하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몰리니까, 게다가 사진 촬영까지 막는 전시니 얼마나 내용이 대단한 전시일까 일말의 기대가 있어서 그래도 견딜만했다. 어쨌든 티켓 발급에 대기까지 또 다시 40분은 소요하고 입장했는데 안에도 인산인해였다. 크기가 작은 작품들을 걸어둔 높이도 어중간해서 앞에 사람 하나만 서 있어도 작품이 전혀 보이지 않은 상태라 정상적 관람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쯤 되니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 것이 이러한 아수라장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 전시장 내부는? 결정적인 문제는 작품의 숫자와 퀄리티였다.
사람에 가려 작품이 잘 안 보일 정도의 혼잡
사진 촬영 금지로 내부 모습 공유 불가
작품 수가 적고, 기대했던 대표작이 없어 아쉬움
전시보다 굿즈가 더 많은 느낌?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빈센트 반 고흐의 가족 사진이 커다랗게 붙여져 있었는데, 그 때부터 의아했다. 내가 반 고흐에 관한 수업 때마다 한번씩 보여주는 사진, 인터넷 검색하면 제일먼저 튀어나오는 가족 사진으로 전시실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어서다. 이 때 알아봤어야했다. 앞으로의 전시될 작품들 수가 얼마나 적고, 내용이 얼마나 빈약할지를.
Theodorus and Anna van Gogh's family, including Vincent, Anna, Theo, Elizabeth, Wilhelmien and Cornelius
전시의 구성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 사진 한장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1/3 이상의 인생은 커버하고 전시는 그가 작품활동을 했던 10년의 기간을 나눠서 구성했다. 누에넨과 앤트워프 (1881~85), 파리 (1886~88), 아를르 (1888-89), 생레미 (1889-1890), 오베르 쉬르 오아즈 (1890)과 같이 그가 체재했던 장소와 시기를 중심으로 구분하여 전시했다. 중간에 그의 드로잉 작품도 일부 전시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꽤나 좋은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작품 수가 일단 너무 작았다.
직접 봐서 좋았던 작품으로는 아래와 같다.
몽마르트 언덕 (1886)
물랭 드라 걀라트 (1886)
생트 마리 드라 메르의 전경 (1888)
협곡 (레 페이룰레) (1889)
착한 사마리안 (들라크로아의 작품 모사) (1890)
슬픔에 잠긴 노인, 영원의 문에서 (1890)
밀단과 떠오르는 달이 있는 풍경 (1889)
산악 풍경의 밀밭 (1889)
만약 다른 경험들이 다 쾌적했다면 이 정도 수의 작품들을 직접 봤다는 것 만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 좋은 추억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난리 북새통을 거쳐서 들어와서 사람들 머리 사이로 겨우 본 것이 그 정도다보니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이번 전시 기획과 관리와는 관련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드로잉 작품을 보고 그 퀄리티의 편차가 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작품은 탄탄한 뎃생 실력을 보인다 싶은데 어떤 작품은 새로 막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 학생같은 것도 있었다. 회화 작품으로는 마지막 2~3년의 작품이 탁월한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작품 수가 너무 작아서 전시 관람 자체는 40분에 마쳤다. 주차에 40분, 입장 대기에 40분, 전시 관람에 40분 소요된 전시 관람이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나오는 출구는 뱅크시가 이야기 했듯이 기프트 샵으로 통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이번엔 빈센트 반 고흐에 관련된 굿즈의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건 안에 전시된 작품들의 수보다 많아보였다.
대표
사진 삭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실제로 내가 처음 미술사 공부를 시작할 때와 비교해보면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의 빈도수나 수준이 놀라울만큼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술사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감격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이름을 내세워 질 떨어지는 전시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시가 발붙이지 못하게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안목이 요구되는 때인 것이다. 관람하는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한 티켓의 발매, 전시하는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안목의 부재, 그리고 굿즈 물량으로 수익만 올리려는 이러한 전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예술의 전당도 단순한 대관시설이 아닌 이상, 전시의 퀄리티 컨트롤도 강화되어야 할 것 같다.
난 이번 전시관람의 경험을 바탕으로 4월인지 5월에 한다는 샤갈 전은 관람을 안하기로 이미 맘을 먹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샤갈의 전시라고 하니 이번 반 고흐 전과 오버랩 되면서 감이 딱 왔다. 내가 개인적으로 워낙 인파가 몰리는 곳을 힘들어해서도 그렇지만 이번 반 고흐전은 해도해도 너무 했다 싶어서 주변에는 보지 않아도 될 전시라고 알리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전시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멀리 세워둔 차로 되돌아가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