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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열병 @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 씨

by 민윤정

'스페이스 씨'는 화장품 회사인 코리아나가 가지고 있는 미술관의 이름이다. 화장품 회사가 가지고 있는 미술관인데 내가 방문해 본 미술관은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밖에 없었던 차에 이번에 전시 연계 강연회가 있어서 몇 차례 방문을 하게 되었다. <합성 열병>이라는 전시인데 AI를 활용한 작품들 위주로 구성된 것이다보니 대중적으로 아주 친숙한 작품들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AI가 미술 창작의 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는 바다. 게다가 작가들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소개되지 않은 아시아계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아 시야를 넓히는 계기도 마련해주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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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은 처음이었던 코리아나 미술관의 외관이다. 근처를 지나면서 보긴 했지만 이번에 처음 깨달은 건데 좌 금수복국 우 삼원가든에 위치하고 있다. 맛집에서 식사 후에 전시를 보시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


개인적으로는 컴맹이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NFT가 등장하던 즈음부터 미술에서도 활발히 도입되는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범한 나도 이런데 감수성 뛰어난 예술가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요즘 들어 부쩍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진 예술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급진적 예술에 주목하는 터너 프라이즈도 최근 수상자들의 이력이 공학도인 경우가 늘어났다. 코리아나 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합성열병

Synthetic Fever

코리아나 미술관 스페이스 씨

2025.3.19~6.28



전시장에 붙어 있는 전시에 대한 설명문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바야흐로 AI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AI는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의성'에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예술의 분야에서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기에 이르렀기에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합성 열병'이라는 전시명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저서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와 '합성 미디어 (Synthetic Media)'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합성 미디어 (Synthetic Media)'

먼저 '합성 미디어'는 인공지능(AI)이나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된 이미지, 음성, 텍스트, 비디오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의미한다. 자연적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합성'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 같다. 'Deep learning-based content' 혹은 'Generative AI'라는 용어처럼 직접적으로 입력치대로 생성해낼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학습을 통해 스스로가 생성해내는 컨텐츠도 포함한다. 요즘들어 SNS에서 자주 접하는 딥페이크(Deepfake) 영상, AI로 생성된 가상 인플루언서, ChatGPT가 쓴 기사나 소설, AI 보이스 클론(음성 합성), GAN을 이용한 이미지 생성 등이 이 영역에 포함된다. 'AI가 만들어낸 미디어 (AI-generated media)'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처음엔 그냥 흥미 위주로 만들어보던 차원이었는데, 요즘들어서는 디지털 저널리즘, 예술, 마케팅, 미디어 윤리 분야 등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듯하다. 사용 맥락에 따라 긍정적인 혁신 기술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오용될 수 있는 위험 요소도 갖고 있다.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전시의 제목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이라는 책은 읽어보지 않아서 어떠한 내용인지 모르겠어서 조금 찾아봤다.


자크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 은 1994년 런던의 프로이트 박물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강연을 바탕으로 한 철학 에세이로, 1995년에 출간된 저서다. 이 책에서 데리다는 '아카이브'라는 개념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연계하여 탐구하며, 기억, 권력, 기술, 종교, 죽음 충동 등 다양한 주제를 교차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서 데리다는 ‘기억’과 ‘기록’을 향한 집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였다. 난해하기로 악명높은 그의 책이라 내가 직접 읽어도 내용을 이만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서평이나 요약문을 통해서 이해해보자면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데리다는 『아카이브 열병』에서 아카이브가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권력과 해석의 장소이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을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공간이라고 본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죽음 충동 개념을 바탕으로, 과거를 보존하려는 욕망이 오히려 기억의 왜곡과 삭제를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이메일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아카이브 개념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다룬다. 결국 아카이브는 과거의 보관이자 미래를 형성하는 중요한 행위로, 기억의 정치학과 연결된다.


요약한 내용 자체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보인다. 역사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듯이, 어떤 것이든 기록하여 보관하는 과정에서 보존과 폐기라는 선택을 거치기 마련이다. 이 전시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합성 미디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모든 이미지와 내용들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왜곡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참여 작가: 김현석, 방소윤, 양아치, 장진승, 정영호, 프리야기타 디아, 로렌스 렉, 요나스 룬드, 호 루이 안

이번 전시에는 모두 9명의 작가가 참가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모두 생소한 작가들이었다. 한국 작가들 뿐 아니라 우리가 자주 접하지 못하는 다국적 작가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유럽이나 미국 쪽이 아닌 아시아계라서 더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전시는 다루는 주제 이외에도 새로 접하는 작가들 덕분에도 무척 새롭고 신선했다.


싱가포르 국적의 프리야기타 디아 작가는 <열대 터빈 (Turbine Tropics)>라는 영상 작품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설명문과 큐레이터 토크에서 이 나선형의 모양이 고무나무에 생채기를 내서 고무액을 추출하는 이미지에서 도출된 것이라는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식민지와 노동착취 등의 다양한 담론이 포함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외부적으로 많은 설명이 많이 들어가야 작품의 의미가 파악되는 작품들은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호 루이 안 (Ho Rui An)의 《Figures of History and the Grounds of Intelligence》였다. 대략 《역사의 형상과 지능의 토대》 또는 《역사 이미지와 인공지능의 기반》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러닝 타임이 무려 80여분에 달하는 강연 형식의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인데 그 내용이 이번 전시의 취지와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작가인 호 루이 안은 1990년생으로 이번 작품은 역사적 이미지와 인공지능의 관계를 탐구하는 실험적인 예술 프로젝트다. 첨단 기술에 대한 고찰을 AI를 활용해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젊은 작가답다고 할 수 있지만, 젊은 작가라고는 믿기 힘들만큼의 폭넓은 관심사와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력을 갖춘 작품이었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가 된다. 이 작품은 미술사, 기술사, 시각문화 이론을 교차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현대 미술과 AI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품 러닝타임이 무려 80분에 달해서 한번에 다 보기도 힘들고 내용이 복잡다단해서 한번에 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벅차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구글 컬처랄 인스티튜트 Google Cultural Institute에서 우연히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소장 초상화를 디지털화된 상태로 접한 경험에서 출발한다. (구글 아트 앤 컬쳐 프로그램 중, 자신과 닮은 초상화 찾기 게임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 중에 싱가포르 국립미술관 소장의 초상화를 발견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국가 아카이브의 이미지가 인공지능의 피드백 루프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탐구하게 된다. 냉전 시기부터 시작된 국가 계획, 글로벌 네트워크, 사이버네틱스의 교차된 역사를 되짚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오늘날 생성형 AI 모델의 기반이 된 '지능'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조명한다. 싱가포르의 역사와 컴퓨터의 복잡한 메카니즘을 설명할 때는 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이는 그만큼 그의 연구가 깊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관람하고 싶은 작품이다. 특히, AI 모델이 '기억'을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노이즈의 분포를 생성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가 챗GPT에 검색하는 내용들이 끊임없이 축적되고 재생산 될 것이라 생각하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AI가 전개되어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호 루이 안의 작품 은 두 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스크린: 역사적 아카이브, 대중문화, 인터넷에서 수집된 이미지들을 통해 작가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보완한다. 마치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연상할 수 있는 화면이다.


오른쪽 스크린: 작가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공동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의 강연 내용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생성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치 챗지피티의 Dall-e나 미드저니에서 프롬프트를 넣어 이미지를 생성한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사전 정보없이 생성된 이러한 라이브 이미지들은 AI가 '이해' 없이 '학습'한 결과물로,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시각적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구성은 AI가 생성하는 이미지가 과거의 맥락이나 의미를 상실한 채, 단순한 시각적 노이즈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래의 이미지는 'stable diffusion'이라고 지시어를 넣었을 때 AI가 생성해낸 이미지다. '안정된 확산'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stable'을 마굿간이라고 해석하면서 'diffusion'을 말들이 퍼져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렇게 입력한 값과는 전혀 다르게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hallucination'이라고 하는데 아래 화면은 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미지의 역사성과 재현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AI가 생성한 이미지들이 과거의 맥락이나 의미를 상실한 채, 단순한 시각적 노이즈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미술사에서 이미지의 진정성과 재현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동시에, AI 시대의 예술 창작과 감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만 해도 왠만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급의 길이와 내용이라 이전과는 다른 감상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두 개의 스크린으로 한 화면으로는 마치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게, 또 한 화면으로는 실시간으로 그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에 따라 AI가 생성하는 이미지들을 '감상'하게 된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다만 러닝타임의 압박과 깊이 있는 내용 때문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람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았다. 아니면 작가가 이제 우리는 전통적인 관람방식을 벗어나야한다는 것까지 일깨워주는 것일까?


양아치 작가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유머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소 괴기스럽기까지 한 작품이었는데, 양아치 작가의 《고스트 1.0.0》라는 작품이다. 작품은 크고 작은 두 개의 스크린과 앞 쪽의 설치물을 포함하는데, 뒷 쪽의 큰 스크린은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위성 이미지를 활용하여, 데이터 센터, 반도체 산업단지 등 현대 기술 인프라와 밀접한 장소들을 보여준다. 이 중 일부는 한국 내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시설들도 비추는데, 작가는 이러한 장소들을 통해 비물리적이라 여겨지는 인공지능이 실제로는 구체적인 물리적 기반 위에 구축되어 있음을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한다.


그 앞의 작은 스크린에는 얼핏 보면 젊은 여성의 모습인데 가까이서 보면 수염도 나있고 연신 깜빡이려는 눈은 한 쪽눈만 감겨져 있다. 이 이미지는 AI가 생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작은 음성으로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만 또 이상하게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 앞쪽으로는 인형의 목부분들과 불상의 머리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늘어뜨려져 있는데, 전반적으로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시각적으로는 강렬하고 흥미롭긴 하지만, 설명문에서의 의미는 전혀 전달되지 않아서 설명이 없었다면 그런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시각적 충격만 받았을 것 같다.


양아치 (본명 조성진, b.1970) 작가는 이번에 찾아보니 2000년대 초반부터 미디어 아트에 주력해온 작가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인 듯했다. 다른 작품들은 어떤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 이 작품의 인상만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 프리야기타 디아 작가의 작품도 그렇고 양아치 작가의 작품도 그렇고 설명을 듣고 보면 날카로운 사회의 비판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표현하려는 작품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시각 예술에서 설명없이 그 의미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 예술이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번 전시를 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 AI가 예술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이런 류의 작품들이 더 늘어나게 되면 이러한 의문은 더 커지고 깊어지리라 생각한다. 관람자의 작품에 대한 감상 태도가 바뀌어야 하는 시점인걸까?



방소윤 작가의 경우, 3D로 생성된 이미지를 다시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벤데이닷 기법으로 대량 생산된 이미지를 캔버스에 손으로 그린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방소윤 작가의 경우 이 이미지는 AI와의 대화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라는 차이가 있다.


장진승 작가의 《깊은 정찰: 스펙트럼 해독자》라는 작품은 얼핏 보면 전쟁 영화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안에는 AI로 생성된 이미지와 드론으로 촬영한 이미지가 뒤섞여서 현실과 비현실이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작품은 전체적 맥락없이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고, 감상하다보면 설명문에 나오는 것처럼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왜 맥락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이해가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이는 그의 영상에서의 시각효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AI시대에는 이전 시대와는 달라질지라도 그 내용의 심오함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시각예술의 가야할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시는 지하1층과 2층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제까지는 지하 2층에서의 전시였고, 이제부터는 지하 1층에서의 전시다.


요나스 룬드 작가는 두 개의 영상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제목이 "The Future of Nothing"이고 또 하나는 "The Future of Something"이다. 뒷 제목은 직역하면, '어떤 것의 미래'이겠지만, 앞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의 미래'라는 제목과 쌍을 이루면서 '중요한 어떤 것의 미래'라고도 해석이 되었다.



미드저니나 달리로 이미지를 생성해본 사람이라면 화면에 비치는 인물들이 AI로 생성된 이미지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눈과 코가 제대로 붙어 있지 않고 움직임에 따라 그나마 불완전한 눈코입이 엉뚱한 곳에 매달려있게 되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불완전한 이미지들에 정신이 빼앗겨 있다가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그 내용은 실제 사람들간의 정상적이고도 심각한 내용의 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는 상담 내용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AI 때문에 미래에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음성을 AI 영상과 함께 보다보면 그 불안이 더 와닿기도 하고 아이러니한 현실이 더 와닿는다.


정영호 작가는 AI가 생성한 이미지를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현실과의 간극을 보여주는데, 사진의 확대한 모습을 통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는 사진이 실제로는 빨강, 파랑, 초록의 색상 조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된 작품들 중 가장 고전적이고 정통적 접근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인상주의가 점들을 찍어서 순간의 모습을 포착하려 했을 때, 그들이 당시 새롭게 발견된 광학의 영향을 받았듯이,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시각 인지와 AI가 창조해내는 이미지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아래의 작품은 같은 인물을 촬영한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변화하여 다른 인물 같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별도 달라보이기도 한다. AI가 이미지를 무한생성해낼 수 있는 이 시대에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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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작가의 작품은 오디오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고, 로렌스 렉의 작품은 웹툰의 영상화와 뮤직비디오를 결합한 듯한 작품이었다. 전체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4~5시간은 걸리는데, 마지막 작품들은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관람을 못했다.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더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9인9색의 전시라 다채롭고 AI라는 새로운 매체를 화두로 삼고 이를 이용해서 만든 작품들이라 새로웠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접할 기회가 없던 여러 지역의 작가들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앞으로 이들이 어떠한 작품들을 해나가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5월 31일까지 전시가 진행되고 연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운영되고 있으니 현대미술과 AI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한번 관람을 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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