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올린 포스팅에서 영화계에서도 에드워드 호퍼를 어마무시하게 사랑한다는 언급을 했었는데요. 오늘은 에드워드 호퍼와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준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호퍼는 영화를 사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영화계는 호퍼를 사랑한 것이다. 한편, 호퍼는 헤밍웨이의 작품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살인자들 (The Killers)"이라는 작품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후일 그 <살인자들>이 영화화될 때에는 역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미장센으로 활용했다고. 이처럼 영화 장면의 구도에서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2013년작 <<셜리 (Shirley)>>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을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한 독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3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긴 시간을 배경으로 셜리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호퍼의 작품이 미장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서 배우의 극적인 동작보다는 정지된 듯한 장면이 많아 연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영화 <<셜리>>의 공식 트레일러 Shirley: Visions of Reality (2013)
구스타프 도이치 (Gustav Deutsch)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감독 작품인 이 작품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영화 감독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면서 더 자주 언급된다.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의 호퍼의 인기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의 감독들에게도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만 인기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호퍼의 작품이 영화 감독들에게 그토록 인기가 높은 것일까?
위에서 내려다본 밤거리에 혼자 길을 가는 남자의 모습을 판화로 제작한 작품. Edward Hopper, Night Shadows (1921) Etching: Plate: 17.4 x 20.8 cm, Sheet: 33.5 x 36.6 cm, MET
그의 스케치나 소품의 에칭 작품 (윗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 제작시의 콘티라고 부르는 '스토리보드'와 무척 유사하다. 그의 작품을 그대로 영화의 콘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호퍼의 독특한 시각은 그대로 카메라의 각도로 적용시킬 수 있고, 그의 감성이 녹아든 화면은 영화 장면으로 그대로 옮기고 싶게 만든다.
아래의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39 계단>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인데, 호퍼의 위의 에칭 작품과 구도에서 흡사하다. 알프레드 히치코크의 작품 <사이코>에서 주인공 노먼 베이츠가 사는 집은 에드워드 호퍼의 <기차길 옆 집 (House by the Railroad)> (1925)을 모델로 한 것이란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 밖에도 히치코크의 <이창 (Rear Window)>도 호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히치코크 이외에도 수많은 영화에 호퍼의 작품을 구도에 이용한 영화의 리스트는 아주 길다.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사이코>>에서 사용된 건축물은 호퍼의 왼쪽 작품을 모델로 만든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telegraphindia.com/culture/arts/house-from-hitchcock-s-psycho-now-in-london/cid/1672336
위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의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의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스토리보드와 함께 쥴리 앤드류스와 7명의 아이들이 넓은 정원을 가로누비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란 영화 제작시 일종의 가이드라인 혹은 설계도로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구획되는 세계 속에 어떤 식으로 글로 된 시나리오를 이미지화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두는 것이다. 일견 네모난 틀 안에 그려진 만화의 컷과도 같은 이러한 콘티를 통해 실제 영화 제작전에는 준비를, 실제 촬영시에는 배우의 동작과 동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위치를 지시하는 것이다.
대공황에 이어 급격히 현대화의 과정을 지나온 미국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호퍼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흑백의 대비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필름 느와르에 적합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위의 이미지는 아브라함 폴론스키의 영화 <<악의 힘 (Force of Evil)>>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도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 (Nighthawks)>의 거리 장면과 아주 유사하다. 동시대를 그린 동시대의 작품이니 풍경이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의 구도와 필름 느와르의 미장센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호퍼의 작품을 관통하는 적막감과 고독감은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이는 동시대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세기말 적이고도 묵시록적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의 분위기도 호퍼의 <<나이트호크스>>의 적막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야시장의 장면은 호퍼의 작품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97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PC 게임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은 각도까지 호퍼의 작품과 유사하다. 이 밖에도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 중에서 유독 호퍼의 <나이트호크스>의 작품은 패러디가 많기로 유명하다.
위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한 장면. 암울한 미래의 야시장의 국수집의 모습이고, 아래는 1997년 비디오 게임 Blade Runner의 한 장면으로 영화에서 데커드가 들렀던 야시장의 국수집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다시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와 구도가 유사하다. 후안 카이로스 Juan Cairos라는 작가의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패러디로 제작한 작품은 인터넷 상에서 꽤 유명하다. 호퍼의 작품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등장인물로 구성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알아봐도 더 이상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화룡점정은 카페안의 '매 한마리' 진짜 나이트 호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