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네덜란드 미술로 보는 서양미술사 - 르네상스에서 현대까지』
이번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의 여름 학기 강의 주제는 『네덜란드 미술로 보는 서양미술사 - 르네상스에서 현대까지』로 잡아서 시작했다. 강의 소개문을 옮겨보면, "렘브란트의 빛, 페르메이르의 고요, 반 고흐의 열정, 몬드리안의 질서까지― 신화 대신 일상을, 왕이 아닌 시민을 그린 미술. 유럽 미술사의 또 다른 중심, 네덜란드에서 시작하는 특별한 미술 여행입니다."라고 썼다.
이렇게 주제를 정한 것은 지난 수년 미술사 강의를 해오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미술사 강의 교양 강좌 101식으로 한동안 진행했었다. (지난 수업 진행 방식에 대해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그 포스팅의 내용을 참고하시길)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그 리듬이 깨지게 되기도 하면서 다시 변화를 꾀하면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처럼 마치 큐레이터가 전시기획을 하듯이 주제를 선정해서 거기에 따라 강의를 구성해서 진행해왔다. 코로나 이후, 다시 교양강좌 구성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고 주제를 선정해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번 학기에는 '네덜란드 미술 특집'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미술 특집'이라고는 하지만 기본 구성은 미술사적 연대를 따라 진행할 것이고, 그 순서에 따라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과 미술사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다. 기존의 수업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못했던 네덜란드를 포함한 플랑드르 지역, 미술사에서 '북유럽'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미술에 대해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술사 개론 수업에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주로 이탈리아의 미술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그 이외 지역의 예술은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이번 내가 진행하는 여름학기 수업에서는 시각을 이탈리아 중심에서 탈피해서 그 이외 지역의 르네상스 미술은 어떤 아름다움과 특색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지역의 예술도 함께 비교하며 진행할 예정이다. 미술사 개론 수업은 맞지만 시각을 좀 다르게 해서 접근해보려는 노력이다. 혹시 편협한 내용이 아닐까해서 수강을 망설이는 분들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등록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아래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이다. 얀 반 에이크라는 네덜란드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인으로서 플랑드르로 건너와 최초로 성공한 상인인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다.
이 작품의 포인트를 세 가지 정도 짚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1) 초상화의 주인공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나 체나미. 아르놀피니 가문은 당시 네덜란드 궁정에 사치스러운 물건을 공급하는 상인가문.
2) 부의 상징
값비싼 모피코트, 창가에는 수입산 오렌지, 침대밑에는 아나톨리아 (현재의 터키) 산 융단.
3) 혼인서약장면
혼인서약 하기 위해 오른손을 들고 있는 신랑이 외부로 향하고 있음.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의 전통적인 역할 암시
먼저,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르놀피니 부부다. 발음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이탈리아인으로 플랑드르 지방에서 성공한 최초의 이탈리아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단순한 무역상이 아니라 무려 궁정에 사치품을 납품하는 상인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보니, 초상화에서는 그의 부를 과시하는 장치가 여러가지 들어가 있다. 조반니 아르놀피니 자신이 값비싼 모피코트를 입고 있다. 아내인 조반나 체나미의 초록색 드레스가 앞쪽으로 불룩한 것을 두고 혹자는 그녀가 임신상태가 아닌가 하기도 하지만, 그건 당시 첨단 패션으로 이 역시 그들의 부를 과시하는 장치라고 할 수있다. 옷차림 뿐 아니라 그들의 가구, 그리고 냉장시설이 변변찮던 당시 귀하기 짝이 없던 지중해쪽의 과실인 오렌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창가에 굴러다니고 있다.
부부는 손을 마주하고 있는데, 이 포즈가 결혼 서약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이 작품의 예전 제목을 '아르놀피니의 결혼'이라고 불리게 만들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러한 분석을 한 미술사학자가 무려 어빈 파노프스키라는 너무나도 고명하신 분이라, 아무도 그의 분석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도 못하고 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파노프스키는 도상학이라는 미술사의 한 분야를 확립한 학자로 유명하다.)
파노프스키의 분석에 따르면, 아르놀피니 부부가 그려진 이 작품은 결혼서약 선언문이 시각화된 작품이다.
"오늘 결혼식을 거행함에 있어, 신랑은 이 결혼이 신이 맺어준 신성한 약속임을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신부는 신랑에 대하여 아내로서 평생동안 복종과 사랑으로써 섬기며, 신랑신부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둘 사이에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10개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성하고 인내하며 살아갈 것을 증인 앞에서 엄숙히 서약합니다.”
먼저 '신성한' 약속이라는 것은 이들이 슬리퍼를 벗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데, 서양에서는 신성한 곳에 들어갈 때엔 신발을 벗기 때문이다. 서약문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하는 이유는 여성의 선조 이브의 엄청난 죄,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먹게해서 일할 필요없는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나게 만듦으로써 남편들이 힘들게 일하게 만든 죄 때문이다. 아내의 발치에 자리한 강아지는 바로 이 '복종'을 상징한다.
두 인물 뒷쪽 벽의 거울의 장식에 예수의 10가지 고난이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것에서 결혼 생활 중에 있을 고난과 시련은 예수가 겪었을 10가지의 고난을 떠올리며 인내해야 한다는 선언문의 대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리고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엔 옆에 걸린 묵주를 열심히 돌리면서 기도하며 극복해야한다.
그 밖에도 거울에 비친 화가와 조수 두명이 결혼식의 증인이라고 생각하고, 남자의 손모습, 그리고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초가 하나 켜진 것 등등을 종합해서 파노프스키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을 묘사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근거 탄탄하고 워낙 고명하신 학자가 하신 분석이라 다 믿고 따라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그러한 분석에 이의가 제기되었고, 그냥 이들 부부의 초상화일 뿐 결혼식 장면을 묘사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지배적인 상태다. 혹자는 샹델리에의 초가 남편 쪽은 켜있고 아내쪽은 꺼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내는 이미 세상을 뜬 상태에서 그녀를 기리는 의미로 그린 작품이라는 해석도 있다. 따라서, 예전 책에는 <아르놀피니의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지만, 최근 출판물에서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는 제목을 다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또 언제 다른 의견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상 너무나도 유명하고 자주 언급되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대해 알아봤다. 이 작품을 살펴보는 시간이 즐거우셨다면 제 수업도 한번 들어보시길. 익숙하게 봐왔지만 의미는 잘 몰랐던 작품들, 그리고 본 적 없었지만 막상 살펴보면 의미깊고 재미있는 작품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이 되시리라 믿는다.
*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미술사 강의 - 수업 진행 방식 안내 (feat. 강사 민윤정)
https://blog.naver.com/eunicemin/222486902303
*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2025년 여름학기 수강신청 안내
https://blog.naver.com/eunicemin/223867026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