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섯 번째 색깔 이야기다. 빨강, 초록, 파랑, 자주색에 이어 이번에는 노란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제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색들만 골라서 써왔는데, 이번엔 노란색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뭔가 아쉬워서 다루게 되었다. 지난번 초록색에 대한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인쇄 체계의 CMYK에서 Y가 바로 노란색이고, 삼원색의 기본 중 하나도 노란색이다. 컬러 인쇄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색, 즉 사이안 (Cyan), 마젠타 (Magenta), 노랑 (Yellow), 검정 (Key 혹은 Black)이 혼합되어 빨강, 초록, 파랑 같은 2차 색을 만들어낸다.
많은 화가들이 사랑한 노란색은 미술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색이다. 노란색을 다루지 않으면 이 시리즈가 뭔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기도 하다. 오늘은 노란색을 특히나 사랑한 두 화가에 관해 잠시 알아보려 한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와 J.M.W 터너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색 사랑: '해바라기'와 '밤의 카페'
노란색을 가장 사랑한 화가로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꼽을 수 있다. 그의 해바라기 시리즈는 대놓고 노란색이 주를 이루지만, 그 외에도 그의 작품에는 노란색이 많이 사용된다. 가령, 고흐의 해바라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을 보면, 배경까지 온통 노란색으로 채워진 것을 볼 수 있다. (Sunflowers, 1889,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또 다른 작품 밤의 카페(1888, 예일대학 미술관, 뉴헤이븐)에서도 노란색의 과감한 사용이 돋보인다.
고흐의 노란색에 대한 집착과 사랑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혹자는 그가 '황시증(Xanthopsia)'이라는 안질환을 앓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노란색 필터를 낀 것처럼 사물을 노랗게 보게 만드는 질환이다. 또 다른 설로는 그가 압생트를 많이 마신 탓에 시신경에 영향을 미쳐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고도 한다. 압생트는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독성으로 인해 시각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데, 당시 고흐는 식생활은 부실한데 비해 압생트는 늘 가까이 두고 마셨다고 한다.
일부 학자는 그의 정신병과 노란색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유독 노란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임상 결과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안과와 정신과 분야는 내 전문 영역이 아니므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색 사용이 지닌 활기와 명료함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노란색의 화가: 윌리엄 터너
대중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미술사에서 노란색을 탁월하게 표현했던 화가로는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가 있다. 그는 고흐보다 80년 정도 앞선 선배 화가로, 19세기에 이미 정확한 형상 묘사보다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닷가의 분위기를 강조한 표현주의와 추상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바다의 풍경에 탁월했던 J.M.W. 터너는 해양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눈부신 노란색으로 표현된 바다 위로 비추는 태양의 빛은 강렬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터너가 애정한 노란색은 '인디언 옐로우(Indian Yellow)'로, 망고잎만 먹인 소의 오줌에서 추출한 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물 학대 논란으로 인해 이 색상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아름다운 색을 잃은 건 안타깝지만, 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터너의 작품에서 특히 빛과 대기 속에서 노란색의 표현이 돋보인다. (전투 중의 테메레르 호,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아카데미의 규율을 따르지 않은 그의 작품은 당시에는 논란거리였는데, 이러한 그의 도전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테이트모던과 사치 갤러리가 주최한 상의 이름이 터너상 (Turner Prize)*다.
나의 노란색 기억
이제껏 살펴본 색 들 중에 고르자면 노란색이 나의 최애색은 아닌데, 그런 나 역시 노란색에 깊은 감명받은 적이 한 번 있다.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과제가 밀려있어서인지 몸이 좋지 않아서인지 딱히 모르겠지만 그 날따라 기분이 어두웠던 것만 기억이 나는 어느 가을 날의 일이다.
오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 근처 공원을 지나다가 길 안쪽으로 서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노란 잎을 모두 바닥에 가득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다보니 그 노란색 잎들이 마치 반사판처럼 나무 윗쪽은 물론이고 공원 일대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닥 특별할 건 없는 그 장면을 보며 마치 태양이 나무 아랫쪽에서 빛나 오르는 것 같아보여서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이 나왔다. 덕분에 왠지 어두컴컴했던 그 날 내 기분도 덩달아 밝아졌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도 노란색을 떠올리면 그때의 그 풍경이 항상 함께 떠오른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찍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라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듣자하니,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의 가을도 그렇게 노란색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언젠가 작은 차를 몰고 그 구릉지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노란색이 존재하고 노란색을 사랑한 화가도 많았으며, 내게는 색상이라기보다 빛으로 기억되는 노란색에 대한 글이다.
*터너상(Turner Prize)은 1984년에 제정된 현대미술상으로, 현대미술의 실험성과 혁신성을 기념하며, 매년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에서 수상자를 발표한다. 초기에는 50세 이하의 영국 출신 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현재는 연령 제한과 국적 제한을 없에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 있다. 당시의 J.M.W. 터너와 마찬가지로 이 터너상 역시 현재까지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