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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조세핀 황후

서양미술사/ 세계사

by 민윤정


요즘 계속해서 로코코의 사치스러운 풍조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들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이어서 그러한 풍조의 정반대편에 위치한 신고전주의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자크-루이 다비드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오늘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신고전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지배층의 '사치'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금 삐딱한 관점의 역사보기라고 할까?


먼저, 신고전주의의 대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Louvre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족들이 차례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난지 불과 10여년 후,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혁명의 지지자였던 자크-루이 다비드였지만, 시류에 재빨리 적응, 성심성의껏 이 작품을 완성했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oil on canvas ; 6.21 m × 9.79 m, Louvre, Paris, France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월계관을 쓰고 있는 나폴레옹이 조세핀 황후에게 씌워줄 화려한 왕관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나폴레옹 황제 앞에서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는 조세핀 황후. 그녀가 이미 치장하고 있는 드레스와 반짝이는 티아라가 세심하게 잘 그려져 있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조세핀 황후 부분 확대

나폴레옹은 그들의 육군 원수들에게 이 대관식에 참여할 때 부인들에게 멋있는 장신구들을 사주라고 돈을 지불했다고 한다. 대관식에 참여한 여성들의 옷차림은 아닌게 아니라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이 왕족들의 사치스러움에 분노하고, 그들의 착취에 굶주리는 백성들이 이제는 못참겠다고 일으켰던 혁명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처형이 된지 불과 십여년 지나고 나서 프랑스는 나폴레옹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황제와 황후는 역사를 통털어서 보석과 장신구를 가장 사랑한 인물들로 기록되고 있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나폴레옹의 여자형제들의 모습. 당시 유행하던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에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하고 있다. 대관식때 나폴레옹의 형제들은 그 전의 다툼으로 인해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이 작품엔 참석한 것처럼 그려졌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부분 확대



5-5_o0817102414729579953.jpg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1805-07) 조세핀 황후 부분 확대


Empress Josephine in Coronation Robes (1807-8)

대관식 때의 차림을 한 황후 조세핀의 초상화. 마리 앙트와네트의 화려함이 무색할 정도로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조세핀. 그녀의 사치스러움은 황후가 되고 나서 극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Baron François Gérard (1770-1837), Empress Josephine in Coronation Robes (1807-8), oil on canvas ; 214.0 x 160.5 cm, Musée national du Château de Fontainebleau


'나폴레옹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는 명칭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 현재는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에서 소장중이다.

나폴레옹과 조세핀 황후 덕분에 가문이 벌떡 일어선 보석 디자이너 니토 (Marie-Étienne Nitot)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진주와 다이아몬드 귀걸이. 조세핀이 대관식 때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토는 이 혁명 황제 부부 덕에 가게를 열었고, 그 가게는 유서 깊은 고급 보석샵 '쇼메 (Chaumet)'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루브르 소장



마리-에티엔 니토가 디자인한 나폴레옹의 대관식용 대검. 새로 권력을 쥔 나폴레옹은 새로운 왕권에 위대함과 장대함을 부여하고 싶어했다. 이전 베르사이유 궁의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석을 담당하던 마리-에티엔 니토 (Marie-Étienne Nitot)는 잽싸게 새로운 황제가 바라는 장신구를 디자인했고, 140.5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검이 탄생했다.


황후로 즉위한 조세핀의 사치는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한다. 그녀가 일년에 주문한 드레스가 900여벌, 장갑이 1000켤레, 구두는 500켤레가 넘었다고 한다. (지네도 아니였을텐데...어마어마한 양이다). 그 비용을 충당하려고 조세핀은 나폴레옹에게는 비밀로 자식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세핀의 이러한 사치 덕에 파리의 의상실과 보석상은 떼돈을 벌었으며, 프랑스의 웅장하고 화려한 궁정은 타국보다 활기를 띠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사치를 좋아하는 경박한 여자라는 악평을 듣게 되었지만 본인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손이 없었기에 나폴레옹은 주변의 여론에 밀려 조세핀과 이혼하게 된다. 이후 마리 루이즈, 혹은 파르마 공작부인과 재혼했는데, 그녀는 바로, 무려 마리 앙트와네트의 조카였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석들 편에서 살펴보았지만, 마리 앙트와네트의 보석을 일부 물려받기도 했던 바로 그 파르마 공작부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보석이나 치장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 이전까지 큰 돈을 벌었던 왕실 의상 담당자와 보석상들이 나폴레옹과 재혼한 파르마 공작 부인을 극혐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한번 역사의 아이러니~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귀금속 사랑과 사치스러움은 익히 살펴보았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왕족의 사치와 낭비가 주된 이유로 일어난 혁명 후에 정권을 잡은 이들인데, 이들의 사치스러움도 딱히 덜한 것 같지도 않다. 단지, 이들이 신경 쓴 점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착용하는 귀금속의 모습이 이전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시대의 디자인과는 철저하게 다르게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미술은 신고전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고전주의의 미학이 부활하여 신-고전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반-로코코 풍의 미학을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당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물이 대거 발굴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귀금속 디자인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이 쓰고 있는 월계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아래의 밀집단을 모은 듯한 디자인의 왕관도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그 밖에도 카메오를 이용한 보석 등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귀금속 디자인을 모방한 것이다. 일견 소박해 보이지만, 엄청 고가의 귀금속인 것은 분명하다.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의 보석 사랑을 저세상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가 봤다면 '왜 나만 가지고 그랬어?'라고 억울해할 것도 같다. 그리고, 개인적 소견이지만,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취미가 훨씬 더 품격이 있어보인다.


밀집단의 모양을 한 티아라, 왕실 전속 보석담당 니토가 마리 루이즈 황후를 위해 무려 150개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디자인한 것 (ca. 1811). 금, 은, 다이아몬드. Chaumet Paris Collection.


조세핀의 장신구들


조세핀 황후의 카메오 왕관. 금과 카메오, 자개, 진주 등의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Photo via jewellermagazine.


조세핀의 손녀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세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왕비. Axel Nordgren작 초상화. 그녀가 조세핀 황후의 보석을 많이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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