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들어오지 않아 맨바닥을 긁고 있던 시간들
"10년 동안 경력 단절되었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이 잠재력을 어떻게 숨기고 계셨던 거예요?"
존경하는 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를 잠깐 멈칫하게 했다. 너무 감동적인 멘트이기도 했고, 그 시간들이 어떠했는지 잠깐 떠올려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학원비를 절약하고자, 영어 유치원을 보낼 만큼의 여력이 되지 않는 형편이어서, 그렇게 시작된 엄마표 영어와 책육아였다. 이 영역에서 성공했느냐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힘들다.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이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성공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 시간의 터널이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아이들이 있다.
엄마표 영어와 책육아에 매달렸고, 몰입했고, 집착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최대 능력을 끌어올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이면 아이가 울면서 깨우는 것이 두려워 밤에 잠드는 것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구나, 내일은 또 무슨 힘으로 버티나 싶었다. 아이는 많이 울고, 많이 예민했다. 무엇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고 엄마를 참 힘들게 하는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어둡고 외로운 시간들에서 내가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은 아이와 함께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몸이 힘들 때면 같이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읽을 수도 있고, 아이가 이 시간만큼은 칭얼거리지 않고 함께 잘 버텨주었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희망적인 시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가 책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영어 책을 읽고,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페파피그를 따라 하고, 읽은 책의 음원을 들으면서 또 따라 하고, 영어 동요를 듣던 시간들이 결코 아이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이 이제 와서야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나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받고자,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나의 존재가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을 먼지 한 톨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남편에게라도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집안일의 능력치는 디폴트값이 이미 높으니, 못하면 그 당연한 것도 못하는 무능력한 주부. 누구도 나에게 그런 기준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였다. 나에 대해 끊임없이 인정할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십 년을 보냈다. 아이만 바라보면서, 아이의 공부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 결과로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엄마가 이만큼 너를 키운 거다. 엄마 덕분에 네가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거다. 참 이기적이었네.
나와 아이가 해왔던 집영어 공부의 치명적인 단점은 학습적 요소가 없어서, 아이가 아직 스펠링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파닉스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에, 아직도 처음 보는 단어의 발음을 유추해서 읽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학원을 1년밖에 안 다녀서 정독하는 습관도 약하고 단어도 잘 모른다. SR 테스트를 지금 한다면, 또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테지. 하지만, 그래도 학원 다닌 아이들보다 조금 더 나은 부분이 있다면, 영어 정서가 좋다는 것이다. 아이는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 말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고, 본인이 하고 있는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말하면서 본인의 오류를 스스로 다시 짚어서 말하기도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소통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물론, 중학교에 들어가고 수능을 위한 영어를 하려면 학습이 필요하다. 좋은 정서로 영어를 좋아한다고 해서 영어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오늘 신랑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이만큼 아이를 잘 끌고 왔다는 말을 하니 참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서 정말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학원을 알아보고 다니다 옮기고 SR 점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관은 대중적인 그것과 꽤나 달라서, 자칫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냥 조용히 내 갈 길을 걸어오는 것에는 참 외로움과 고독함, 막막함과 답답함이 늘 따라왔다. 그래서 학원을 보내도 봤지만,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아이의 교육비를 결제하는 매 순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터널을 걷고 있었다. 물론 엄마표 영어를 열심히 하고 나면 나도 반쯤은 전문가 정도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많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막연한 꿈같았다. 모든 게 애매했기 때문이다. 엄마표 영어의 적극성, 영어 활용도, 독후활동, 아이의 아웃풋, 나의 일관된 노력,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과정을 기록하는 것 가 모든 것들이 다 애매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 모두가 다 애매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긴 십 년의 세월을 흐르고 나니, 나도 어느새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돕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나의 십 년의 경험과 시행착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매일이 도전이고 낙담하고 실망하는 삶이지만, 예전보다 희망이 눈앞에 있고, 의지가 더 확고해졌으며, 실행력이 생겼다.
시간의 터널이 필요한 이유다. 꾸준함은 시간이 필요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5년 정도의 엄마표 영어를 꾸준히 해왔고 책육아의 힘을 믿었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느라 하루하루가 녹록지 않고, 운신의 폭도 좁고, 일희일비하면서 늘어진 티셔츠를 하루 종일 입고 지내는 엄마의 고단함에 지치는 마음이
든다면. 그 안에서 꾸준히 하고 있는 작고 작지 않은 일들에게 시간을 조금 더 들이라 말하고 싶다. 소소한 것 같아도 자신이 가치를 가지고 하는 꾸준한 것에는 반드시 애매함이 그 선을 넘어서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그 삶 역시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더 반짝일 날을 위해 자신을 다듬고 깎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힘든 시간도 곧 나아질 거라고. 조금만 버티라고. 즐겨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