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기
나이 50이 넘어서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삶의 용기와 활기를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젊은 날의 객기로 나만의 것을 주장하던 습관을 버리고,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통해 성숙해지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차가운 시선이 무엇인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땅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에 관심을 갖거나 인지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사는 환경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니 점점 타인이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각, 그들의 몸짓, 말로 표현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전달되었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서투른 행동과 작은 몸집 하나하나가 그들의 따가운 시선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홀로 있어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마음이 작아지고 쪼그라들고,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픈 충동이 일어났다. 와우... 이게 뭘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동네를 돌고, 마트를 가고, 식당을 가고, 도서관을 가고... 서투른 말씨, 서투른 몸짓이라도 나를 쪼그라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순간 무엇인지 모르는 시선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시선이 아니고 행위에서도 다름을 느껴졌다. 종업원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사람들의 외면, 웃음 없는 차가운 표정과 태도, 편한 자리가 있음에도 불편하거나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는 경우, 불편하면 나가라는 식의 답변 등 직접적 용어를 쓰지 않으나 행동으로 우리를 외면했다. 혹은 레스토랑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식사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미소 없이 쳐다보는 경우, 당황해서 나가야 하나? 순간 고민에 빠지게 했다.
그들은 왜 차가운 시선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그들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었다. 타인에 대한 적대적 행동은 과도한 자기 방어이고, 그렇게 매일을 산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왜소한 몸짓, 서투른 말과 행동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회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견디어야 할까?
첫째, 나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니, 아픈 사람을 향해 작으나마 미소를 보내주기로 했다.
둘째, 내 마음속에 작은 소리를 만들었다.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오늘 100달러를 잃을 것이어요.”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신은 오늘 100달러를 얻을 것이어요.” 하하하하하... 별것 아닌 방법이지만 효과가 있다.
먼저, 내가 나를 위로했고, 그리고 타인을 위로했다. 그리고 점차 타지의 삶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삶의 활기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