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날들 — The Living Years

by Yameh

3주 연속으로 부고를 받았다. 환절기 탓인지, 모친상, 부친상, 부친상. 지인들의 문자가 연달아 왔다.

상가집에서 상을 당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고.

그 말들이 며칠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신다. 그래서 그 친구들의 심정을 상상은 해도 느끼지는 못한다.

다만 그런 날이 오면, 분명히 후회가 밀려올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며칠 후, 집에서 일을 하다가 Mike + The Mechanics의 The Living Years가 흘러나왔다.

수십 번은 들었을 노래인데, 오늘은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Every generation blames the one before. I just wish I could have told him in the living years.
You say you just don't see it. He says it's perfect sense. We all talk a different language, talking in defense.
Say it loud, say it clear. You can listen as well as you hear. It's too late when we die to admit we don't see eye to eye.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단절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 같은 순간들.

그런데 오늘은 그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와 세대 사이의 간극은, 어쩌면 인류가 오래전부터 공통으로 안고 살아온 감정인지도 모른다.


노래 한 곡이 탄생하기까지

The Living Years는 창작이 아니라고 말한다.

Mike Rutherford — Genesis의 기타리스트이자 Mike + The Mechanics의 창립자 — 는 아버지와 불화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좁혀지지 않는 거리, 끝내 하지 못한 화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그 해에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

그는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에서 아버지를 보며 이 곡을 썼다.

I just wish I could have told him in the living years.

살아있는 날들.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유튜브 댓글창에 남겨진 고백들

유튜브에서 이 곡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댓글창에는 노래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가 쌓여 있었다.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015년, 운구 차량 안에서 이 노래가 반복 재생됐다고.

운전기사가 틀어놓은 곡이 교회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그는 댓글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their seats are empty at the table, you will regret what special moments you never had with them when they were still alive."

또 다른 사람은 날짜를 적었다.

1989년 3월 12일, 일요일. 탄광 갱도 안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관제실 동료가 그를 불러 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25년간 축구장에서 자신을 응원해준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작별 인사 한마디를 끝내 전하지 못했다고.

날짜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그 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이다.


때가 있다

The Living Years가 이미 떠난 아버지를 향한 노래라면, Harry Chapin의 Cat's in the Cradle(1974)은 아직 늦지 않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경고다.

이 곡의 아버지는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과의 시간을 번번이 미룬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닮아 자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간을 청하자, 이번엔 아들이 바쁘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화를 끊으며 생각한다. 그 아이가 나를 꼭 닮았구나. 후회는 그렇게, 한 세대를 건너 되돌아온다.


상가집 친구들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살아계실 때 충분히 이야기를 못 했다고.

그 말이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는 건, 아마도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전화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그 날이다.

운구 차량 안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후회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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