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을 치렀다.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빌라촌 사이에 있는 작은 떡 카페에서 백일떡을 찾아왔다. 색색깔 송편에 백설기 그리고 수수떡까지 아기자기한 포장지에 담겨 나왔다. 그동안 아내는 식탁 위를 정리하고, 대여한 백일상 소품과 고향에서 '모셔' 온 샤인머스캣(한 송이당 1만 원이 넘는다는!)도 한 송이 올렸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예쁘게 꾸며졌다.
단 하나, 오늘의 주인공만 빼고.
아이는 한복을 입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품에 안아 억지로 달랜 후 점보 의자에 앉혔더니 아직 고개를 못 이겨 이리저리 꺾이고, 사진엔 공허한 그의 눈만 담겼다.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려 카메라를 들고 애니멀 사운드도 내보고 장난감도 흔들어 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와이셔츠를 입은 내 등에서 땀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10월에 에어컨을 틀었다. 백일, 돌 사진 한번 찍는데 사진작가들이 몇 십만 원이나 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한참을 울더니 이제는 또 꾸벅꾸벅 존다. 아이가 깨길 기다렸다가 겨우겨우 몇 장 더 찍었다. 그러나 결국 웃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가족사진엔 당황해서 땀이 번들번들한 이마에 볼 빨간 아빠와 육아 노동으로 피폐해진 엄마 그리고 울부짖는 아들이 찍혔다. 인생이 더 이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백일이었다.
백일 며칠 전에는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고향에 다녀왔다. 추석 때도 못 뵈어 죄송한 마음에 평일을 끼고 큰 맘먹고 장거리를 달렸다. 편도 3시간이 걸리는 나의 고향. 손주가 태어난 지 100일이 다 되도록 손 한번 못 잡아본 부모님과 할머니를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아이는 내려가는 중에 수유 한 번과 배설 한 번을 했다. 갈수록 부모로서의 경험치가 느는 것 같다. 어렵사리 집에 도착했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본가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집이 떠나갈 듯 울기 시작했다. 한 마리 승냥이처럼 울어 대는 아이를 보고 곧 칠십을 바라보는 엄마는
"왜! 어쩌라고! 야가 와 이카나!"
만 반복하셨다. 급하게 아이를 안고 이리저리 흔들어 봤지만 이미 데프콘 1에 이르고 있었다. 아이가 우는 것보다 엄마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게 더 화가 났다. 세 남매를 기른 엄마는 이미 힘들었던 기억을 잊고 순진한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상냥함과 아빠의 윽박지름에도 아이는 그칠 줄 몰랐다. 결국 히든카드를 꺼냈다. 주차장으로 뛰어가 차 안에 있던 바람 빠진 짐볼을 들고 왔다. 울부짖는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에어펌프를 들었다. 펌프질을 한 500번쯤 했을까? 짐볼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나는 사우나에서 갓 나온 것 마냥 땀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아이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도 순탄하지 않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애를 너무 막 대한다, 너무 춥게 키운다 등 훈수 공격을 쉴 틈 없이 퍼부으셨다. 왜 필수 교육 과정에는 육아가 빠져 있어 이렇게 논쟁거리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전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육아 상식이 자리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와 나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처가나 본가에서 하룻밤 잘 때면 새벽에 눈을 떴다가 주온과 피에타를 넘나드는 아내의 실루엣에 흠칫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와 사자후를 내뿜으며 다퉜다.아내는 폭포처럼 눈물을 흘렸고, 잠들 때까지도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다음 날 쇼핑몰에 갔다. 아들을 데리고 쇼핑몰에 간 건 처음이다. 아니 병원과 가정집 말고 실내를 데려가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쇼핑몰은 젊은 부모를 위한 서비스가 잘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난생처음 유모차를 빌렸다. 수없이 쇼핑몰에 가봤지만 유모차를 빌려준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아직 유모차를 사기 전이라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아들은 유모차를 꽤 좋아했다. (뭐든지 타는 걸 좋아하는 듯) 유모차를 타고 쇼핑몰 안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야외 정원도 가고, 유아 휴게실도 들렀다. 휴게실에서는 젊은 엄마가 아기 이유식을 먹이고 있었고, 우리는 집에서보다 더 편하게 아이 기저귀를 갈았다.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을 누비는데 전혀 번거롭거나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아 이래서 부모들이 쇼핑몰을 그렇게들 가는구나' 싶었다.
사실 이 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난생처음 쇼핑몰에 입장한 아들이 아니라 의외로 아내였다. 푸드코트에서 쌀국수를 한 그릇 시킨 아내는 이미 면발을 입에 넣기도 전부터 입이 귀에 걸렸다. 포장 용기에 담긴 불어 터진 면발이 아니라 이제 갓 나온 쌀국수를 만나서 행복한가 보다 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들을 놔두고 우리끼리 먹는 밥이었다면 미안함과 걱정으로 밥이 안 넘어갔을 테다. 그렇다고 아들이 옆에서 늘 그렇듯 찡찡대고 보챘다면 애 달래느라 밥은 뒷전이었을 것이고. 다행히 바로 옆 유모차에서 아들은 쇼핑몰의 백색소음에 압도되어 눈만 껌벅이고 있었고, 우리는 모처럼 평화로운 식사를 했다. 아내는 그것만으로도 감격한 듯 보였다.
밥을 다 먹고 아동복 코너에 간 아내는 마치 놀이동산 마냥 설레서 뛰어다녔다. 본인이 입을 옷도 아닌데 저렇게 좋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다. 자기밖에 모르던 여자 친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이밖에 모르는 엄마가 남았다.
우리집 안방보다 좋은 듯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 새롭다.백일도 처음이고, 장거리 일정도 처음이고, 쇼핑몰 외출도 처음이다. 아이는 백일의 기적처럼 처음으로 통잠을 잤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와 나도 비록 힘겹긴 했지만 울고 웃고 또 행복했다. 어느새 태어날 때보다 무게도 길이도 두 배는 자란 아이가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할 새로운 일들이 아직은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자뭇 안심이 된다. 육아 선배가 말하길 애를 키우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퀘스트라고 하더니, 다음 퀘스트는 또 무엇일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물론 통잠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쩌면 백일의 기적은 우리 세 가족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새로운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