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관종이 산다
생후 78일, 아기는 매일 새로 태어난다
아이가 웃었다. 더 이상 초보 아빠처럼 배냇짓 한 번에 호들갑 떠는 게 아니다. 찐 웃음이다. 보통 아침에 맘마를 먹은 다음이나, 빅 똥을 싸고 난 다음 기분이 좋을 때 웃는다. 가끔은 웃는 나를 보고 따라 웃는다. 옹알이도 한층 길어졌다. 덕분인지 울음소리도 이제 짐승보다 사람에 가깝다. 높은 데시벨에 민감한 나는 한결 수월해졌다. 대신에 내 아들은 관심종자가 되었다. 엄마 품에 더 오래 붙어 있으려 하고, 자신을 놔두고 엄마 아빠가 딴 짓을 하면 섭섭한 듯 윗입술을 얇게 말면서 울기 시작한다. 이제 70일 갓 넘은 녀석이 그런 입술 모양은 어디서 배웠는지 기가 찬다. 목욕할 때도 좀처럼 울지 않는다. 얼굴에 물만 묻혀도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가 이제는 학습이 된 모양인지 욕조에 팔을 걸치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씻길 수 있어 고맙긴 하지만 욕조가 비좁게 느껴질 만큼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 모습에 아쉬움도 남는다. 조금만 천천히 커주지.
작은 욕조로도 충분했던 신생아 시절 세 번째 예방 접종을 했다. 주사 바늘이 아이의 허벅지에 들어가는 순간 돌고래 소리에 버금가는 울음소리를 내는데 내가 변태인 모양인지 이게 참 관전의 재미가 있다. 그간 아들의 괴롭힘으로 생겼던 멍울이 쓸려 내려가면서 약간의 카타르시스마저 든다. 물론 눈가에 가득 맺힌 눈물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같이 든다. 세월이 좋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방 접종도 많고, 유료긴 하지만 로타처럼 장염 예방도 할 수 있다. 늘 장트러블을 끼고 사는 아빠는 그런 아들이 자못 부럽다. 아이가 생기고 간염 예방 접종을 맞기 전에 엄마에게 물어봤었다. 혹시나 항체가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안고. 그러나 역시 엄마는 아들이 어떤 주사를 맞았는지 전혀 기억을 못 하셨고, 안 맞았을 확률이 월등히 높으니 그냥 맞으라고 하셨다.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 꼬박꼬박 아기 수첩에 도장까지 찍어주고, 의료 전산화까지 되어 있어 어떤 주사를 맞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주사 맞고 우는 아이를 부러워하는 아빠가 또 있을까?
육아의 바이블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보면
아기는 매일 새로 태어난다.
는 구절이 있다. 매일 낯선 행성에서 깨어나는 아이에게 어쩌면 부모는 토템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내가 아는 세상이 맞다는 안도감을 주는 그런 존재. 세상이 뒤집히고 전염병이 창궐해도 절대 변치 않는 존재. 그래서 아이는 더욱 관종이 되는 것일 테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으니까. 재밌는 건 언젠가부터 나도 아이를 보며 그런 위안을 얻는다. 울부짖던 아이가 한순간 웃게 된 것처럼, 이 세상도 분명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안고.
영화 '인셉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