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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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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Sep 07. 2021

그게 다 부모 욕심이야

[425일] 나는 네가 이번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게 뭐야 이 여름에 방안에만 쳐 박혀 있어♬"


오래된 노래 가사처럼 한 계절 내내 집콕을 했다.

장기수처럼 하루에 30분 남짓 공원을 돌고 오는 일 외엔 독방에 갇혀 아이와 씨름하며 이 여름을 보냈다.

육아와 코로나의 결합은 나를 자꾸만 파고들며 좀먹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심해지고 현실을 원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육아 우울증이 내게도 찾아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여름휴가 제1원칙. 사람이 없는 기간일 것

여름휴가 제2원칙. 사람이 없는 장소일 것

여름휴가 제3원칙. 사람이 없는 평일일 것


거기에 의도치 않았지만 가을장마까지 겹치면서 운 좋게도 여행 내내 사람 구경 못하고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였냐면 맛집으로 유명한 곳에서도 단 한 번 줄을 서지 않았고, 우리 테이블만 덩그러니 있기도 했다.

아이가 때 맞춰 잘 자준 덕분에 우리 부부는 카페에서 잠깐의 평화를 즐기기도 했다.

여윽씨 육아는 타이밍


너무 큰 행운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숙소를 예약할 당시 수영장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이가 13개월이 되도록 헤엄칠 기회가 거의 없어 아쉬워하던 차였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엔 안타깝게도 수영장은 없고 작은 물놀이 파크만 있었고 그마저도 유료였다. 고민 끝에 별도 비용을 내고 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여행의 유일한 실수였다.


아이는 물에 닿기만 해도 오열했다.

1시간을 내리 울고, 1시간을 내리 자고, 잠에서 깨자 다시 울었다.

아이를 데리고 시설 곳곳을 돌며 달래는 동안 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안에서 화가 독처럼 번졌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준비해 간 튜브는 애꿎게 바람만 넣었다 빼곤 물에 한번 닿지도 못했고, 아내는 헤엄 한번 제대로 치지 못하고 후퇴했다.

일어나. 일어나야지.

 

숙소로 돌아와 정신없이 아이를 씻기고 저녁거리를 사 온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식당까지 운전하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혼자 씩씩거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나는 왜 이토록 화가 나 있을까?


돈이 아까워서?
수영을 못하고 와서?
남들이 불쌍하게 보던 눈길이 싫어서?
다른 애들은 잘만 노는데 내 애만 울어서?
단순히 계획했던 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아서?


정답은 모두 맞는 것 같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나는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반면 아이는 그제야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집안 곳곳을 뛰어다녔다. 기가 막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번 여행이 참 이기적이었구나 싶었다.

여행을 원하고 계획한 건 전부 부모였고, 아이는 그저 따를 뿐이었다. 여행 내내 아이 뒷바라지하고 시중드느라 고생했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 반대였을 수 있다. 

혹시 아이가 원했던 건 여행이나 수영이 아니라 집에서 엄마 아빠와 늘 하던 대로 노는 게 다가 아니었을까?


내 이야기를 듣고 아이 둘 가진 친형이 말했다.

"그게 다 부모 욕심이야."


내 아이도 나처럼 물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겨주기를 바라는 욕심.

내 욕심을 아이에게 멋대로 투영하고선 욕심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낸 꼴이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화를 낼 대상이 마땅히 없으니 화가 화를 불렀던 것 같고.


부모가 되고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결혼 전에는 내 감정 그 자체가 중요했다면, 결혼 후에는 상대방인 아내의 감정이 중요했고, 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 감정을 챙기려다 내 감정의 근원까지 건드리게 된다.

이래서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된다고들 하는가 보다.

이렇게 또 한 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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