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준호 Jul 08. 2018

13화. See it now!

(쉬어가는 이야기) 아나운서와 앵커 중에 누가 더 높아요?

“우리는 불쾌한 정보를 외면하려 하고, 매체는 그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텔레비전이 주로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우리를 속이는 데 이용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텔레비전과 광고주, 시청자, 방송 제작자들은 자기기만(自己欺瞞)을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2005년 개봉했던 'Good night and good luck'은 1958년 미국 CBS 뉴스 다큐 프로그램인 'See it Now'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의 연설로 시작된다. 영화 제목인 'Good night and good luck'은 진행자 머로가 방송 말미에 시. 청취자들에게 전하는 인사말로, 1950년대 매카시즘(McCarthyism, 1950년 ~ 1954년 미 전역을 휩쓴 일종의 반공산주의로 공화당 상원의원 JR 매카시가 1950년 2월 국무성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연설에서 발단) 광풍에 맞섰던 저널리스트의 실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앵커인 머로와 제작진의 고뇌 속에 언론인이라면 어떠한 자세로 보도에 임해야 하는지, 방송저널리즘의 지향점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까지 언론인들에게 존재하기도 하다. 사실 저널리즘이나 그 안에서 보도는 어때야 한다는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고 꺼낸 사례는 아니다. 이렇게 저널리스트의 한 측면에는 보도의 선상에서 뉴스라는 것을 전하는 앵커의 영역을 잠시 짚어보며, 아나운서로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인 '아나운서와 앵커는 무슨 차이인지'와 한국에서의 '앵커'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아나운서와 앵커는 어떻게 다른가요?라는 질문의 답은 무척 간단하다. 우리의 방송 시스템에서 설명하면, 아나운서는 직종이고 앵커는 직책(일종의 역할)이다. 나는 아나운서 직종으로 입사해 토요일 정오뉴스 앵커와 쇼바이벌 MC를 맡았었다. 또한 앵커 선발은  보도에 관여하는 사람들이면 뉴스 특성에 맞게 오디션이나 자체 선발을 통해 그 역할 맡게 된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의문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MBC에 재직 중 가장 많이 받던 또 하나의 질문인 앵커멘트는 직접 쓰냐는 질문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그 질문 속에는 아나운서가 앵커를 맡게 되면 앵무새처럼 기자들이 써 준 멘트를 그대로 읽어야 하고, 기자들이 앵커를 맡는 경우는 스스로 멘트를 작성해 방송을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7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아나운서는 직종이고, 앵커는 역할/직책이다.

앵커는 아나운서도 기자도 될 수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앵커 시스템


손석희 선배께서 JTBC의 보도부문 사장을 맡으셨을 때 내심 한국에 우리만의 앵커 시스템을 도입해 직접 진행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후 내부 의견을 거쳐 앵커석에 다시 앉았을 때 업계의 후배로서 두 가지 측면에서 무척 기뻤다. 첫 번째는 남자 아나운서들이 메인 뉴스 앵커석에 앉지 못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현실에서 아나운서 출신 선배의 메인 뉴스 앵커 데뷔는 무척 상징적인 의미였다. 두 번째는 국내 메인 뉴스를 비롯한 뉴스들이 단신과 리포트로 엮여 심층보도가 없고, 형식이 비슷한 점에서 보도 통제권, 편집권을 가진 리더(Leader) 형 뉴스 앵커 시스템의 도입은 CNN 등 해외 뉴스를 접하며 갖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조금 뒤로 미뤄놓고 개인적으로 세계의 3대 뉴스 시스템으로 미국식과 영국식, 일본식으로 나누어 앵커 시스템을 설명해 보면, 첫 번째는 편집권을 가지고 뉴스의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리더(Leader) 형 시스템으로 '내 뉴스는 내가 책임진다'는 미국식 앵커가 있다. 두 번째는 BBC와 같이 정확한 발음과 단어를 구사하며 '영어 발음으로 전달하는 뉴스는 바로 이런 거야'를 보여주는 발음만 비슷한 리더(Reader) 형 앵커 시스템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식 뉴스시스템을 소개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앵커와 뉴스 캐스터의 차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소개하진 않겠지만 뉴스캐스터가 좀 더 넓은 의미의 뉴스 전달자라 할 수 있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앵커 시스템을 Leader 형 미국식 앵커 시스템, Reader 형 영국식 앵커 시스템, 뉴스 버라이어티 진행자형 일본식 앵커 시스템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메 히로시의 등장


개인적으로 일본 뉴스의 전환기를 1985년 10월 7일로 규정하곤 한다. 이 날은 TV아사히가 10 시대 메인 뉴스를 개편하면서 TBS도쿄 출신의 주로 예능프로그램에 능했던 '구메 히로시'아나운서를 영입해 친절한 뉴스, 중학생도 알만한 뉴스를 지향하며 '뉴스스테이션'을 출범시킨 날이다. 현재는 '보도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구메 히로시가 은퇴하던 2000년까지 '뉴스스테이션'은 '전달'의 방식을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바꾸고, 나무블록이나 모형 등을 전달의 소도구로 활용하며 전달력을 높이려 애썼다. 특히 보도 전문기자가 아닌 쇼 프로그램 진행자인 '구메 히로시'의 메인 앵커 영입도 놀라웠지만, 그는 짧은 머리와 콧수염으로 자주 안경을 바꾸고, 간혹 가죽점퍼나 노타이로 화면에 나타나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이 더 주목할 만하다. 그러한 노력들은 동시간대 '뉴스스테이션'을 최고의 뉴스로 만들었고, 이후 일본 뉴스는 메인 뉴스캐스터로 비전문인을 영입하며 '보도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되었다. 특히 그가 마지막 방송에서 따라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은 그가 그동안 보여준 뉴스를 대하는 철학이 엿보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뉴스 보도프로그램 MBC '뉴스데스크'

 MBC는 1970년 10월 5일 개편에 맞춰 '뉴스데스크'를 출범시키며 기존의 아나운서가 정확한 발음으로 준비된 원고를 읽던 방식을 벗어나 취재원(기자)이 취재하고 앵커가 정리해 전달하는 미국 앵커시스템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이후 뉴스데스크는 앵커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도전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엄기영, 손석희, 백지연, 김주하 등 스타앵커 배출과 시대를 비추는 앵커멘트를 생산해 왔다. 한때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찍혔던 '배현진 씨'의 최장기 뉴스데스크 앵커 등극이 화제를 모은 것도 뉴스데스크만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한, 1988년 8월 4일에는 강성구 앵커가 서울 지하철 노선 증설과 요금 인상에 대해 보도하던 중 난입한 소창영(당시 24세)이란 청년이 약 19초 동안 마이크를 빼앗으려 했던 방송사고가 아직도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등에 떠돌고 있는데,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 때문일까, 요즘 활동하는 가수 중에는 '내 귀에 도청장치'라는 그룹도 존재한다. 이렇듯 '뉴스데스크'는 JTBC의 '뉴스룸' 등장 이전까지 많은 화제를 생산하며 대한민국 뉴스를 선도해 왔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의 '뉴스룸'은 심층 보도를 통해 기존 뉴스들이 시도하지 않던 영역에 도전하며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특히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보도의 진정성과 최순실의 태블릿 PC 단독보도 등을 통해 촛불 혁명을 선도하며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대표 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점에서 누구나 지상파의 뉴스가 이대로 가는 것이 좋은지 고민을 안 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스피치는 '전달'이라고 말하는 내게 뉴스 보도도 '전달'에 초점이 맞춰진다.

일본의 시도와 같이 좀 더 낮추고 친절해질 순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그 친절함은 자세함을 포함해 여러 의미를 갖는다.


이제 회사를 나와 야인이 된 시점에서 뉴스 앵커에 대해 사견을 내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 뉴스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함께 고민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뉴스를 보도하는 집단의 눈높이와 시청하는 시청자의 눈높이가 현격히 차이가 나는 요즘 1980년대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코디미언인 제리 사인펠드(Jerry Seinfeld)가 남긴 말로 고민을 대신 전해보고 싶다.


매일 세상에서 벌어지는 뉴스가 어떻게 항상 신문에 싣기에 딱 맞는 분량이 되는지 신기하지 않나요?

~ Jerry Seinfeld

 




매거진의 이전글 12화. I feel Prett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