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값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클래시스 브라질 유통사 메드시스템즈 인수

by Jason Han

브라질에서 한국 기업이 조용히 일을 벌였다.

클래시스가 브라질 최대 미용 의료기기 유통사 메드시스템즈의 모회사 JL헬스 지분 77.5%를 인수를 완료했다. 인수 금액은 183억 원. 처음엔 그냥 평범한 해외 M&A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딜의 구조를 뜯어보면, 꽤 영리한 거래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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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시스라는 회사>
클래시스를 모른다면 먼저 숫자부터 보자.

2025년 연매출 3,370억 원. 전년 대비 38.6% 성장. 영업이익률 50.7%, EBITDA 마진율 55%. 2025년 4분기엔 분기 첫 매출 900억 돌파, 분기 최초 영업이익 500억대를 달성했다.

영업이익률 50%를 넘기는 제조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극히 드물다. 그 비결은 제품에 있다. 클래시스의 주력은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 장비 울트라포머, 국내에선 '슈링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 기기다. 여기에 고주파(RF) 장비 볼뉴머까지, 클래시스는 메디컬 에스테틱 시장의 핵심 장비를 쥐고 있다.

해외 매출이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이 회사에게, 브라질은 한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전체 매출의 21%, 해외 시장 중 압도적 1위. 그 시장의 유통사를 직접 인수했다는 건 단순한 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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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판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나>
지금까지 클래시스의 브라질 사업은 이런 구조였다.

클래시스가 메드시스템즈에 장비를 납품하면, 그 시점에 매출이 끝난다. 메드시스템즈는 마진을 얹어 브라질 전역의 병원과 에스테틱 스파에 판매했다. 유통 마진은 고스란히 유통사 몫이었다.

이제 메드시스템즈는 클래시스의 연결 자회사가 됐다. 두 회사 간 거래는 내부거래로 제거되고, 최종 고객에게 판매한 금액 전체가 클래시스 매출로 인식된다. 유통 단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변화는 마진 개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메드시스템즈는 브라질 내 1만 5천 개 이상의 병원과 에스테틱 스파를 고객으로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네트워크는 유통사에 귀속된 자산이었다. 이제 클래시스가 그 고객들과 직접 마주한다. 구매 패턴, 소모품 사용 주기, 재구매 데이터가 본사로 흘러 들어온다.

신제품 출시 속도도 달라진다. 유통사를 거치면 교육, 재고, 마케팅 협의까지 단계마다 시간이 걸린다. 직영 체제에서는 본사 결정이 현장에 바로 떨어진다. 마이크로니들 RF 신제품 쿼드세이와 레이저 리팟의 브라질 출시, 이제 속도가 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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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억으로 1,000억 기업을 인수한 방법>
이 딜의 진짜 구조는 숫자를 직접 보면 이해된다.

JL헬스의 기업가치는 약 1,000억 원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이 중 순차입금이 약 767억 원이다. 지분가치는 약 233억 원 수준으로 내려온다. 여기서 클래시스는 기보유하던 메드시스템즈 앞 매출채권 약 250억 원을 인수 대금과 상계처리했다.

구조를 단순하게 풀면 이렇다.

메드시스템즈가 클래시스 장비를 사고 갚지 못한 외상값 약 250억 원. 그 외상을 지분으로 전환하고, 현금 183억 원을 추가로 납입해 회사를 가져왔다. 못 받을 것 같았던 외상이 브라질 최대 유통사의 경영권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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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전략이다>
2023년, 메드시스템즈의 기업가치는 약 2,50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2년 만에 공격적인 사업 확장 과정에서 재무 상황이 흔들렸고, 클래시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잔여 지분 22.5%에 대한 콜옵션도 확보해, 향후 완전 자회사화의 길도 열어뒀다.

2030년 매출 10억 달러를 목표로 선언한 클래시스. 그 목표의 핵심 시장인 브라질을, 이런 방식으로 내재화했다. 협상력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 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