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간 비즈니스 모델의 수정
컬리가 2025년 연간 영업이익 131억 원을 기록했다. 창사 10년 만의 첫 흑자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성과처럼 읽힌다. 그런데 이 회사의 이력을 알고 나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누적 적자 2조 원. 총 투자 유치 규모도 2조 원이 넘는다. 새벽배송이라는 개념을 한국 시장에 처음 들고 나온 뒤 10년 가까이 적자를 쌓아온 회사가, 처음으로 흑자를 냈다. GMV 3.5조 원(+13.5%), 매출 2.4조 원(+7.8%), 4분기 연속 흑자. 컬리멤버스 가입자도 140만 명을 넘어섰다.
흑자 전환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GMV와 매출의 갭에 주목해야 한다. 두 지표 사이에 약 1.1조 원의 차이가 생겼다. 과거 컬리가 100% 직매입(1P) 구조였을 때는 두 수치가 거의 일치했다. 팔면 그게 전부 매출이었으니까. 변화는 2022년 3P 마켓플레이스 도입, 2023년 하반기 FBK(Fulfilment by Kurly) 확대부터 시작됐다.
3P와 FBK는 매출원가 없이 수수료만 인식하는 구조다. 판매자가 물건을 팔 때 컬리는 수수료만 가져간다. 재고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서 거래 규모는 그대로 GMV에 잡힌다. 판관비가 FBK 물량 증가로 소폭 늘었음에도 매출총이익률이 개선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볼륨은 여전히 직매입(1P)이 담당하고, 이익은 플랫폼(3P·FBK)이 만들어낸다. 아마존이 리테일 적자를 마켓플레이스와 AWS 수수료로 상쇄하는 구조와 방향성 면에서 닮아 있다.
비용을 줄여서 흑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이익이 나는 방식으로 구조 자체를 바꾼 것이다. 다만 이 전환을 순수한 전략의 결실로 보기에는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이 있다. 3P와 FBK가 본격 도입된 2022~2023년은, 컬리가 IPO를 철회하고 외부 투자 유치가 막히던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생존의 압박이 올바른 방향으로 조직을 밀어붙인 것인지, 처음부터 설계된 전략이 그 시점에 실행된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지만, 그 해석은 앞으로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2026년 전략도 이 연장선에 있다. 자정 샛별배송은 낮 시간대 유휴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추가 주문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주문의 70%가 저녁 8시에서 11시 사이에 집중되는 만큼, 낮 시간대 물류센터는 상당 부분 비어 있다. 추가 고정비 없이 볼륨을 늘릴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서비스 시작 직후 오후 3시 이전 주문이 마감되며 수요가 확인됐다. 퀵커머스 컬리나우도 2024년 12월 주문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43% 증가하며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네이버와의 협업(컬리N마트, NFA 물류 참여)은 신규 트래픽과 물류 수수료 수익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이다. 컬리N마트는 론칭 4개월 만에 거래액이 7배 성장했다. 다만 협업 규모가 커질수록 양사 간 수익 배분 구조와 협상 역학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중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플랫폼과의 협업이 깊어질수록 독립적인 성장 동력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결국 2026년이 진짜 증명의 해다. 흑자 기조가 이어진다면 이번 구조 전환이 일회성이 아니었다는 근거가 된다. 반대로 적자로 돌아선다면, 2025년은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예외적 한 해로 재평가될 수 있다. 10년 넘게 쌓아온 콜드체인 인프라와 프리미엄 브랜드 자산이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올해가 그 첫 번째 검증 시점이다.
이커머스에서 1P 리테일 모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컬리의 이번 전환은 그 한계를 넘어선 것일까, 아니면 아직 진행 중인 실험일까. 올해 연간 실적이 나올 때, 다시 이 질문을 꺼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