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고 앞에 선 적이 있다.
손이 자연스럽게 코카콜라 쪽으로 향했다. 1,800원. 별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 콜라 한 캔으로 얼마나 남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답이 뉴스로 나왔다.
2025년 11월, 롯데칠성음료가 75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몇 달 전에는 LG생활건강의 코카콜라음료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국 음료 시장을 양분하는 두 회사가, 같은 해에, 나란히 처음을 기록했다.
이상한 일이다.
국내 음료 시장은 2023년 기준 11조원 규모로 전년 대비 7.2% 성장했다. 제로 콜라, 제로 사이다 덕분에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 사람들이 음료를 덜 마시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음료를 만드는 회사가 무너지고 있다.
이 역설의 답은 '얼마나 파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파는가'에 있다.
음료 회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식당이었다.
점심시간마다 치킨집, 삼겹살집, 분식집 냉장고를 채우는 일. 영업사원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콜라 박스를 납품하던 그 구조.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이 음료 산업의 핵심 엔진이었다. 박스 단위 구매, 안정적 재구매, 한 명의 영업사원이 수십 개의 식당을 커버하는 효율. 수십 년 동안 이 구조 위에서 코카콜라와 칠성사이다가 한국을 장악했다.
그 엔진이 꺼지고 있다.
2024년 자영업 폐업 신고 100만 건. 199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100만을 넘었다. 음식점업 폐업률 15.82%. 100개가 열 때 127개가 닫히는 나라가 됐다. 롯데칠성은 2025년 실적 악화의 이유로 공식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외식업 폐업 증가로 인한 주요 판매 채널 위축." 화려한 분석 없이도 현실이 담겨 있었다.
편의점은 36년 만에 처음으로 점포 수가 줄었다. 대형마트 3사는 5년 새 32개 매장이 사라졌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음료 회사가 수십 년 공들여 쌓아온 오프라인 유통망. 그 망이 기대고 있던 채널들이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소비자들은 여전히 음료를 산다. 그 중 일부는 이제 쿠팡에서 24캔짜리 박스로 산다. 온라인 음식료품 구매는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14.7% 늘었다. 채널이 이동한 것이다.
문제는 그 채널에서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난 쿠팡의 실질 수수료율은 27.5%. 대형마트 평균인 17.7%보다 훨씬 높다. 영업사원 없이 팔 수 있다는 온라인의 장점은, 쿠팡이 그 절감분을 수수료로 가져가면서 사라진다. 더 많이 팔아도 더 많이 남지 않는 구조다.
탈출구를 찾기도 어렵다. 삼양식품과 오리온은 같은 오프라인 채널 붕괴를 맞으면서도 버텼다. 해외라는 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양의 불닭볶음면이 미국 편의점 선반에 올라가고, 오리온의 초코파이가 러시아에서 팔린다. 해외 매출 비중이 각각 80%, 65%에 달한다.
음료는 다르다. 무겁고 부피가 크고 탄산은 흔들리면 터진다. 수출 구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설령 배에 실을 수 있다 해도, 가는 곳마다 코카콜라와 펩시가 먼저 와 있다. 100년짜리 브랜드, 전 세계 유통망, 천문학적 마케팅 예산. 한국 음료사가 비집고 들어갈 빈 공간이 없다.
LG생활건강이 코카콜라 보틀링을 인수한 건 2007년이었다.
당시 프리미엄의 근거는 명확했다. "전국 어디에나 닿는 오프라인 유통망." 냉장 물류 시스템, 전국 영업사원 네트워크, 식당부터 편의점까지 촘촘하게 연결된 B2B 채널. 그것은 진짜 자산이었다.
2024년, 그 자산의 이름이 바뀌었다. 고정비.
이번 희망퇴직의 대상이 "영업·물류 직군"이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비용 절감이 아니다. 오프라인 시대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전략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경쟁우위가 사라지는 때가 아니다. 경쟁우위가 부채로 전환되는 그 순간이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손이 자연스럽게 코카콜라 쪽으로 향하는 동안, 그 회사의 영업사원은 짐을 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