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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묻지 않은 질문

지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by 장재준


정치라는 것은 본래 복잡한 것이다. 국가의 운영은 다양한 이해 관계와 책임의 얽힘 속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 복잡함 속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수반과 시스템이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한다.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끊어지고, 그 자리에 분노와 슬픔이 차오른다. 사람들은 깨닫는다. 자신들이 기대고 있던 터전이 실은 허물어질 위태로운 구조물이었다는 것을.


박근혜 정부 시절의 세월호 참사와 윤석열 정부의 이태원 참사.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졌지만,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물 속으로 가라앉은 배와 사람들로 넘쳐흐른 골목. 두 참사의 중심에는 잔혹할 정도로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너희의 생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국민들은 그 메시지를 단번에 이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극 속에서 서서히 알게 된다. 지도자와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외면하며, 무언가를 덮으려 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눈을 뜬다. 그 결과, 마음은 돌아서고, 목소리는 커진다.


지금 우리나라의 거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버려진 자들의 절규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의 선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가라앉는 배에 남아 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된 트리거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한 참사가 아니라, 참사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세월호와 이태원. 이 두 사건은 우리가 무얼 잃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거울이다. 거울 속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결심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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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하늘은 푸르렀다. 아침마다 동트는 서울의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를 시작한다. 평범한 하루가 쌓여, 그것이 곧 삶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잊는다. 평범함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평범함이 무너진 뒤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려 했다. 그러나 그날 밤, 좁은 골목에서 156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공포에 질린 비명과 구조 요청이 서울의 밤거리를 채웠다. 이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적절한 대비와 관리가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행정부와 지자체 어디에도 대비 체계는 없었고, 현장 관리의 실패는 충격적인 비극을 초래했다.

대통령은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약속은 흐릿해졌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명확한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책임져야 할 심복들은 건재했고 단지 무책임한 약속과 책임 회피만이 남았다. 더 나아가 희생자들을 '놀다가 죽은 사람'으로, 마치 가치 없는 죽음처럼 폄훼하는 사람들마저 생겨났다.


지도자가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사실상 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죄를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공모다. 잘못을 묵인하고, 그 잘못의 일부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메시지다. 사람들은 기억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를 보며 신뢰는 무너지고, 결국 평범한 하루의 안전함조차 흔들린다.


e920b08c-f1b7-48e6-b95d-d11877a50cf3.jpg ©theguardian.com


그리고 또 하나의 비극이 있었다. 2023년 여름,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수해 복구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젊은 병사의 죽음 뒤에는 숨기려는 손길이 있었다. 해병대 수사단장이 진실을 밝히려 하자 대통령과 국방부는 외압을 가했고, 진실을 덮으려 했다. 책임자를 처벌하기는 커녕, 책임자를 비호하고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단장을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보직해임했다.

국가를 지키러 군대에 간 채상병을 국가도 마땅히 지켰어야 했다. 그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들이며, 친구이며, 동료였던 그 젊은이는 그렇게 잊혀지길 강요 받았다. 이 사건 역시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동일한 메시지가 읽힌다.


그들에게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무엇일까? 추종하는 심복들의 안녕일까? 만약 지도자가 국민의 생명보다 심복들의 안녕을 더 우선시한다면, 그것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심복들의 지지는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전임 대통령도, 현 야당 대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씨의 자녀 입시 비리가 드러났을 때를 떠올려 보자. 국민들의 상실감과 분노가 들끓었지만,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 있다"며 끝까지 그를 지키려 했다. 정의를 외치던 진보 좌파 진영의 지도자와 그의 심복이 보여준 이 모습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의는 허울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국민보다 심복을 더 중요시하는 태도는 정권의 기반을 조금씩 침식해 들어갔다.


야당 대표 이재명 씨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그의 연예인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 그의 측근들은 그 여성 연예인을 집단적으로 몰아세우며 짓밟았다. 이재명 씨 역시 "대마초나 하던 여자"라며 "그녀의 주장은 믿을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모습에서 느껴진 것은 지도자로서의 품격이 아니라 야비함이었다. 그와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인격은 죽어야 했다. 진보 좌파 역시 기득권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었고 정의를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진정한 정의와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들의 언행을 통해 스스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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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의 이태원 참사, 그리고 2023년 여름 채 상병의 죽음. 이 비극의 순간들에서 지도자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국민 앞에 서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어야 했다. 그리고 책임자를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했다. 그것이 지도자의 당연한 의무였고, 상식이었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힐 지극히 당연한 공감능력이 있었더라면, 만약 그들이 그렇게 했다면, 비극은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다. 오히려 그 책임감이 정권을 단단히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 불신이 스며들었다. 그 불신은 이제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들을 향해 몰아치고 있다. 그들에게 정의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국민을 위한다"는 그들의 말 뒤에는 어떤 진정한 목적이 숨어 있었을까? 답은 누구나 알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정의는 언제나 행동으로만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이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에서 비상계엄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통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혈흔이 딱지처럼 덮여있는 우리 한 시대의 과거와 얽혀 있는 트라우마다. 21세기 국민들의 눈에는 정당한 논리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지도자는 권력을 얻기 위해 그 자리에 올라서는 안된다.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들에게 정의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에 대한 신뢰는 완벽하게 침몰했다. 지도자가 국민과의 신뢰를 잃으면, 더 이상 지도자가 아니다. 지도자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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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일까?


정의란 것은 누군가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



지금 지도자들에게 사라진 정의를 국민들이 다시금 손에 쥐고 일어섰다. 그날 밤, 7년 전의 그 어둠 속에서 외치던 목소리처럼. 정의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올바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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