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의 다짐으로 시작된 15년의 여정
2012년 11월의 어느 날, 나는 팀장에게 불려가 삼십분 가까이 혼이 났다.
속된 말로 ‘털렸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인격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벗어나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세 번쯤 울린 뒤, 통화는 끊겼다. 다급한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
“블로거님. 제품 수령하신 지 4주가 되어가는 데 약속하신 블로그 포스팅이 올라오지 않아서요. 답변 꼭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아무 답이 없었다.
팀장의 눈치를 보며 하루에도 다섯 번씩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블로거는 끝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포기하려던 어느 날 밤, 뜻밖에 문자가 도착했다.
“제품 준다고 해서 받긴 했는데, 솔직히 제 얼굴엔 안 맞는 색상이더라고요.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안 어울리는 립스틱을 소개드리긴 좀 그래서요!”
그 문자 이후에도 제품을 회수하려고 2주 넘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잠적했다. 결국 립스틱 값은 내 월급에서 빠지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내 직장 생활 중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2012년, 패션 잡지사의 마케팅팀에서 첫 직장을 시작한 나에게 그것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처음으로 ‘블로거’라는 존재가 가진 힘, 즉 지금의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로 불리기 시작한 권력의 초입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분해서 잠들지 못하던 어느 날, 나는 그 블로거의 페이지를 찾아 들어갔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브랜드의 화장품 리뷰를 잇달아 올리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억울하고 서러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이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뛰어들기로 말이다.
그날, 제대로 써보지 않았던 네이버 블로그 탭을 열고 조심스레 이름을 지었다.
‘Look Of The Day’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겠다.”
그 다짐은 잠시의 분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을 통째로 바꾼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 1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블로거에서 인스타그래머로, 그리고 유튜버로 변해가는 세상을 따라 나는 여전히 ‘인플루언서’이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한 인플루언서 실록> 은 대한민국에서 인플루언서 시장이 만들어지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를 가감 없이 기록하고자 한다. 2010년대부터 2025년까지 우리에게 일어난 수많은 변화와 현상들을 되짚어보며, 그 속에서 얻은 통찰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작은 조언을 담았다.
이 기록이 인플루언서라는 세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 그들과 협업해야 하는 마케터들, 그리고 이 비즈니스 안의 진실된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단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