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레벨이 다르잖아요?

2014년, '파워 블로거'의 갑질을 몸소 체험하다.

by 임대리님

[Check Points]

2014년부터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이 커지며, 이로 인한 사회적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영향력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업체와의 소송은 물론 협찬을 요구하는 '파워블로거지' 용어 역시 탄생합니다.

패션계 역시 파워 블로거 마케팅으로 인해 과열되면서, 이로 인해 홍보 효과 및 비용 대비 효율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됩니다.

미디어 역시 이들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사례가 생겨나면서 대중들에게 '파워 블로거'의 신뢰가 하락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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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업계에 쓴맛을 보기 시작한 건 패션 매거진에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때다. 당시 내 주 업무는 블로거 리스트 관리와 소통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매거진과 연관 있는 브랜드 이름이나 제품 카테고리를 검색해, 눈에 띄는 블로거 URL과 이메일을 저장해 두었다. 이렇게 모아둔 리스트는 팀장의 검토를 거쳐 매거진 행사 등 오프라인 행사 이벤트 리스트에 올라가곤 했다.


그 무렵, 광고주들의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졌다. 그동안은 매거진 앞쪽에 광고를 게재해 달라는 요청 정도였다면, 이 시기부터 웹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추가하거나 페이스북에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길 원했다. 한 걸음 나아간 브랜드들은 매거진의 서포터스를 활용한 오프라인 이벤트를 열고 싶어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전임자부터 모아놓은 블로거 리스트가 있었고, 행사 섭외 요청이 오면 리스트에 전체 메일을 보내 참석 요청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만 있을 리가 없었고, 나 역시 파워 블로거의 갑질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저도 같은 거 주시는 건 아니죠?"


첫 번째 갑질 사건은 A 브랜드의 백화점 매장 오픈 행사에서 일어났다. 브랜드에서는 열 명 정도의 패션 블로거를 섭외해 주길 바랐고, 그들의 참석 베네핏은 스카프 증정이었다. 이 부분은 개별 이메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마친 상태였다. 나는 일찌감치 매장에 도착해 방문 블로거 리스트를 브랜드 홍보 담당자와 체크했고, 다행히 시간에 맞추어 모든 블로거가 도착했다.


이미 익숙한 듯,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퇴근 생각만 하고 있던 내게 브랜드 담당자가 짜증난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려 하자 내 팔을 붙들고 창고로 끌고 갔다.


"스카프 주기로 다 이야기하신 거 아니에요? 갑자기 현장에서 진상 부리시면 어떻게 해요?"


알고 보니 한 블로거가 갑자기 다른 제품을 내놓으라고 브랜드에 생떼를 쓰고 있었다. 그 제품은 가방이었고, 제안했던 스카프보다 다섯 배는 비쌌다. 아까부터 과하던 그녀의 태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보며 예쁘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고, 거기에 가방을 들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저에게 어울리지 않냐는 오버스러운 액션까지 했다. 순진했던 나는 그녀가 이메일을 통해 스카프로 협의 완료했다고 답변했다고 말해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저렇게 안 가고 저희 팀장님한테 가서 가방 달라고 하고 있는데, 초청한 매체에서 해결하셔야죠!"


당황스러웠다. 가방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쫓아낼 수도 없다. 왜 저런 짓을 하지?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지만 우선 상황을 해결하는 게 중요했다. 가서 바로 따져 물으려는 내 표정을 빠르게 캐치한 선배는 잠시 나를 말리고 그 소란스러운 현장에 다가갔다. 그 자리에서 블로거와 몇 마디 나눈 뒤, 둘은 잠시 사라졌다. 그 사이 행사는 우선 조용히, 그리고 큰 문제없이 마무리되었다. 다른 아홉 명의 블로거는 진상을 부리지 않았음에 우선 안도했다.


그 상황을 해결한 선배에게 이후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는 진상을 부리던 블로거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패션 블로거 1세대로 불리던 그녀는 이미 조율한 조건을 행사장에서 엎어버리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멋대로 들고 가는 걸로 유명했다. 선배는 브랜드 팀장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고, 그녀가 리스트에 추가된 부분을 확인하고는 편집팀과 이미 이야기를 나눠놓았다. 진상을 부리던 그녀를 조용히 불러낸 선배는 준비된 카드를 내밀었다.


"이번 호 매거진에 오늘 행사한 거 한 페이지 나갈 건데 블로거님 사진을 제일 크게 실어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렇게 되면 브랜드에서 선물은 준비해 주실지 몰라도 페이지에는 안 나올 수 있어요. 괜찮아요?"


가방을 들고 갖은 진상을 부리던 그녀는 갑자기 선배 앞에 온순해지더니 가방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다. 너무 자기에게 잘 어울려서 그냥 해본 말이었다는 말과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행사 다음날, 나는 광고팀과 마케팅팀 모두에게 깨졌다. 브랜드에서 광고팀에게 전화해 컴플레인을 넣은 모양이었다. 한 시간 가까이 혼나고 자리에 오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현장에서 갑자기 진상짓을 부릴 블로거를 이미 알아낼 수도 없고 어쩌라는 걸까. 억울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 뒤, 약속한 대로 그녀의 사진은 매거진 광고 페이지 안에 가장 크게 실려있었다. 연예인처럼 한껏 화려한 포즈를 취한 그녀의 손에는 바로 그 가방이 들려있었다. 실제 가방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 진상짓으로 가방을 든 사진은 크게 실릴 수 있었다. 이게 이 업계의 현실인 걸까? 그 페이지를 보며 그날의 억울함이 다시 치밀어 올랐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때에도 난 여전히 일 방문자 200명 남짓의 평범한 블로거였을 뿐이니까.


[Between the Lines]

2014년, 파워 블로거의 갑질과 글로 인해 피해를 본 업체들의 고소 사건이 언론의 큰 주목을 받게 되며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인플루언서 시장 태동기에 벌어진 사건들로, 실제 이들의 활동이 오프라인과 브랜드 세일즈에 직접적인 연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긍정적인 태도로 콘텐츠를 소비하던 대중들에게 이러한 사건들은 네이버 블로그 콘텐츠의 진실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 새로운 SNS인 인스타그램이 서서히 파급력을 넓히게 됩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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