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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Sungil Kang Apr 05. 2016

관광지 제주에서 지역주민으로 살아가기

불안함의 근원

내가 삶의 꾸리고 있는 곳은 제주다. 철없었던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내가 선택한 삶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직 떠나고만 싶은 좁디 좁은 섬일 뿐이었다.

삶을 꾸려가야 할 곳이기 보다는 언제나 떠나서 떨쳐버려야 할 곳이 바로 고향 제주였었던 것 같다. 1997년 IMF는 서울에서의 삶이 겉으로만 화려했던 신기루같은 삶이며, 덧없고 더 가지려 아둥바둥해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철들어 다시 찾은 고향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고립이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은 나이가 들었을 때다.


비록 고향이라고 하더라도 도시생활에 적응된 삶의 방식을 떨구어버리기까지는 한 2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의 삶의 시간과 생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지방 제주의 삶의 시간과 속도의 차이는 세상에서의 뒤처짐에 대한 불안으로 이따금씩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의 속도가 느린 것에 대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 제주는 더이상 내가 익히 알고 발담고 학창시절을 보낸 제주가 아니었다. 익숙했던 오름을 품은 중산간, 바다, 한라산, 숲은 힐링과 지적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제주의 거친 자연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보였다. 제주의 자연과 그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망 속에 내재되어 있던 아픔과 즐거움이 같이 공감하는 '진짜' 제주사람이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거친 자연과 사람들간의 관계망이 '올드'하거나 '세련'되지 못하거나 '현대'적이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보다 더 '참'되고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비로소 남을 의식하기 것이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윌든'호숫가 숲에서의 성찰 가득한 소로우의 충만한 삶까지는 아니라도 옥황상제의 막내 딸인 여신 설문대할망이 생명을 불어넣은 땅의 의미를 깨닫고 사는 삶이었다. 하지만 다소 부족해도 만족스러운 제주에서의 삶에 균열이 찾아왔다. 그 균열의 근원은 '불안'이라는 감정이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다시 슬그머니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한 때는 '제주올레'가 떠오르고 내가 10여년 전에 느꼈던 현대적 삶의 각박함을 지각한 이들을 위한 힐링의 섬으로 제주가 떠오른 2010년정도가 아닌가 싶다.


인구 약 50만명, 연간 약 800만명 내외의 관광객이 찾아오던 제주가 이때쯤부터 관광객과 이주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구는 지난 5년간 10만명 이상이 증가했고, 관광객은 1,000만명을 넘어 1,500만명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고 했던 3다는 늘어나는 것은 게스트하우스, 카페, 중국인 뿐이란 의미로 변했다. 소박했지만 가장 제주다웠던 숲과 오름, 해변 등 추억의 장소는 이제 거의 모두 관광객과 공유하거나 복잡함이 싫어 회피 또는 그들과 경쟁해야하는 장소로 변했다. 소박함은 자본으로 무장한 화려함으로, 소통과 공감은 이기심으로, 시적인 고독은 시끌벅적함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에 비하면 개발로 인해 상승한 땅값으로 한몫잡은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한껏 치장한 관광객을 보며 얼핏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내 '불안'감정에 비하면 오히려 사치스런 것인지도 모른다.


관광지 제주에서의 삶은 관광객과 추억을 공유해야 하고 자본주의 체계에서의 삶을 위해 자연스러운 나의 삶을 상품화해야 하며, 내밀한 마음을 속이고 미소짓고 친절해야 한다는 암묵적으로 요구되어지는 삶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본의 강요에 의해 가진 것이라고는 청정한 '자연'뿐 없는 제주에서 먹고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는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각의 몫이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이해는 하지만 즐기거나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쉽지만은 않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오고 더 많은 관광객이 올 것이며, 이 흐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관광지 제주에 사는 나의 가장 큰 근본적인 불안의 씨앗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추억을 장소를 공유하고 회피하면서 새롭게 나만의 내밀한 장소를 찾고 추억을 쌓아간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더 이상은 나만의 내밀한 추억의 공간을 갖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말이다. 이것이 어쩌면 윌든 호숫가 숲속 생활의 충만한 삶을 기억했던 소로우가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을 통해 조용하지만 강건하게 그만의 고유의 방식으로 기존 프레임과 체제에 선전포고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한적하고 호젓했던 월정리 해변은 이제 관광객과 공유하고 경쟁해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고, 나이 들어 마지막으로 살자고 했던 대평리는 웬만해서는 들어가기 어려운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어릴때 사촌들과 뛰어놀던 구럼비는 군항개발로 시멘트로 뒤덮여 옛모습을 볼수 없고, 황량이 좋아 찾던 겨울 오름도 바로 옆에 차를 대면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배지근한 맛을 자랑했던 제주음식은 깔끔한 서울맛으로 변해갔고, 삶의 어려움을 달래주던 전설과 굿과 같은 문화는 관광 문화상품으로 둔갑해야만 명맥을 지탱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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