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on Sungil Kang Oct 03. 2018

태국 빠이(Pai)를 빠이(Bye)하면서

대중관광지로 변해가는 빠이, 히피여행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첫사랑이 그러하듯이 무언가를 '처음'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것은 매력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는 끊임없이 '처음'인 여행지를 찾는 '처음' 성애자들이다. 이에 비해 관광객은 마치 순례라도 떠나는 순례자들처럼 휴가철이 되면 비슷한 복장과 캐리어를 끌고 여행자가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길을 나선다. 여행자가 차이와 조우하는 부류라면 관광객은 친숙함을 재생산하는 쪽이다. 이렇듯 지위를 둘러싼 '구별짓기'와 마찬가지로 여행문화 사이에서도 '구별짓기'는 존재한다.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는 이를 관광객의 시선(tourist gaze)이라고 언급한다. 어리의 논지에서 보면 여행자는 방문지와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위해 그곳에서의 사적인 접촉과 관계맺기를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는 낭만적 시선의 소유자인 반면, 관광객은 방문지와 관계맺기보다는 방문자들 간의 즐거움과 활동에 중심을 두는 집단적 시선의 소유자들이다. 하지만 여행자나 관광객의 구별을 통해 여행자들이 얻는 심리적 만족이란 사실 객관적 시각에서 보면 매우 모순적인데, 여행자와 관광객은 비록 그 방식은 다를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접하게 되는 관광지와 그곳에서의 경관, 그리고 사람들을 미학적 즐거움의 대상으로 환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ICT 기술의 발전으로 '배낭'과 '캐리어'로 상징되는 구별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분석된 사실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여전히 여행은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것이란 사실이다. 배낭여행자 그리고 히피의 안식처, '빠이'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배낭을 맺던, 캐리어를 끌던, 히피던 그렇지 않은 가는 방문자에게만 중요하지 방문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빠이는 빠이일 뿐이다.


빠이 가는 길


방콕 카오산은 여전히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인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때 히피적 감수성이 진했던 카오산은 이제 그 감수성을 상품화한 버전만 거리에 넘친다. 여행자들 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는 곳으로써의 기능은 여전하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흉내 낸 듯한 '가짜'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카오산의 분위기가 저렴해질수록 보다 진정한 곳을 찾는 여행자는 치앙마이로, 그리고 더 깊숙한 산속 빠이(pai)로 흘러들었다. 빠이의 명성은 그렇게 여행자들 간에 전승되었고, 이제 관광객들에게도 이어졌다.

빠이로 가는 길은 포장이 잘되어 있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험난하긴 지금도 매한가지이다. 해발고도 300~400m의 치앙마이에서 최고 약 1,300m 산을 넘어 해발 500m의 산속 분지 빠이로 가는 길에 놓인 760여 개의 S자 커브 길 때문이다. 멀미에 대한 부담을 안고 12인승 승합차에 몸을 실어 3~4시간 달려가는 이 길은 그래서 방문자에게는 거대한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행자들의 천국이자 안식처로 불리는 빠이는 이처럼 쉽게 방문자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길은 여행자에겐 통과의례이다. 익숙한 것과 이별을 감수해야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듯이 빠이로 가는 길은 그렇게 의례의 길이 된다. 여행에 대해 가졌던 기존의 관습적 인식과 습관을 게워내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빠이인 것이다.

이제 빠이에서 여행자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여행과 관련한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빠이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빠이는 그렇게 마법의 도시로 다가온다. 치앙마이 버스터미널에서 5시 40분경 떠나는 막차를 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앙마이 터미널에서 빠이가는 승합차와 빠이가는 고개길의 최고고도
빠이 워킹스트리트 야시장. 9월 여행비수기라 그나마 한가하다. 12-1월이면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빠이 즐기기


태국의 시골이 그러하듯 빠이는 작은 시골이다. 마치 대구처럼 빠이 주변은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분지이다. 빠이 여행의 중심지 워킹스트리트 옆으로는 빠이를 가로지르는 빠이강(강이라기 보다는 천이다)이 흐른다. 이를 이어주는 것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대나무 다리뿐이다. 대나무 다리를 건너면 강변에 자리 잡은 방갈로들이 연이어 들어서 있다. 태국 북부 산악지역의 고즈넉함과 흐르는 물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는 여행자는 이곳을 중심으로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고,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뭔가를 기대하는 여행자는 워킹 스트리트 쪽이 좋다.

빠이 즐기기는 사실 별게 있을 수가 없다. 사실 작은 산속 마을, 빠이를 빠이답게 하는 것이 낮엔 느긋하게 지내고 해 떨어질 때 즈음 가볍게 움직이며 빠이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증기는 정도일 테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면 일단 스쿠터 빌리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워킹스트리트를 비롯 곳곳에 100바트에서 200바트까지 스쿠터를 빌릴 수 있다. 바이크를 달려 10~20분이면 웬만한 랜드마크를 다닐 수 있는 곳이 빠이이다.

화이트 붓다. 빠이캐년은 석양 명소이니 이를 감안하고 방문 계획을 짜자. 중국인 마을 전망 포인트도 빠이란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포인트이다. 이외에도 밤부 브리지 마을과 팜복폭포 등이 중요 관광지이며, 빠이만의 감수성이 진한 카페 투어는 또 다른 빠이 여행의 매력일 수 있다. 빠이의 진정한 시간은 저녁 7시~11시까지 워킹스트리트에서의 시간이다. 각종 스트리트 푸드와 라이브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방문한 여행객들과 즐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타투 집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덤이다.

근데 중요한 것은 빠이에서는 이와 같은 빠이 여행의 정보가 그리 필요 없다. 그냥 며칠 머물면서 마음 가는 데로 몸가는데로 여행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냥 내려놓고 즐길 용기만 있으면 된다. 욕심은 빠이에서 사치다. 이것이 빠이 즐기기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석양을 바라보는 전망포인트 화이트붓다
팜복 폭포를 거쳐 밤부브릿지 마을까지


빠이에서 만난 영혼이 아름다운 가게, '소설'


이번 빠이 여행 기간인 추석 연휴 기간은 태국의 계절이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간절기였다. 뭔가 한낮 더위가 뜨거우면서도 다소 끈적끈적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을 갖는 그런 계절에 간 빠이는 우연을 가장한 한 사람과의 만남 덕북에 윤택한 시간이었지 않았나 싶다.

올 9월 초에 빠이에 정착했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났다. 서울에서 30여 년간  '소설'이란 가게를 운영하다 갑자기 떠나고 싶어서 치앙마이를 거쳐 빠이에 정착했다는 분이다. 목소리도 풍채도 시원시원한 분이다. 빠이에서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소설'이란 작은 가게를 열고 있다. 사실 말이 가게이지 어찌 보면 집 옆에 딸린 작은 자신만의 공간이다. 쥔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 나이로 보면 뭔가 새로운 도전이 쉽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가꾸었던 자신의 공간과 그 공간을 중심으로 만났던 많은 인연을 뒤로하고 혈혈단신,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선 태국 북부의 시골 빠이에 정착하러 왔다는 쥔장.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이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올 용기를 갖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비롯해 대다수의 여행자가 꿈은 꾸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그 꿈을 실행할 수 있다는 용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하지만 답을 굳이 찾아야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틀 정도 밤에 골목 옆 탁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나와 같이 빠이를 스쳐가는 한국 여행자와의 인연을 즐기는 장소 '소설'에서의 밤은 그렇게 빠이를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빠이 워킹스트리트 어느 골목길에서 자장면을 파는 '소설'을 우연히 보거든, 맥주 2-3 너 병 사들고 넉살 좋게 소설 앞 탁자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낯선 땅, 빠이에서 보물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한국과 다름없는 자장면은 덤이다.

빠이 나그네의 안식처 '소설'

빠이를 빠이(bye)하기


빠이를 빠이(bye)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음은 남아 있으라 하지만 여행자를 표방하는 관광객의 시간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치앙마이에서 하루정도 묵고 되돌아가도, 나처럼 4박이란 시간을 하면서 있어도, 빠이에 얼마간 머무를지는 모르지만 소설에서 우연히 만나 시간을 같이 한 '성미산'을 가꾼 한국 여행자 부부처럼 시간의 길고 짧음이 빠이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록 예전에 비해 히피적 해방구와 같은 느낌이 방콕의 카오산 어느 한 골목과 같은 분위기로 변했다고 할 지라도 아직 빠이는 상업화됨에 신물 난 태국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 760여 개의 S커브 고갯길을 지날 용기를 가져야 빠이와 만날 수 있듯이, 이곳과 안녕하는 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유유자적할 마음 가진 사람만이 빠이를 와서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빠이도 그렇게 떠나면 된다. 그가 다시 빠이를 찾을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숙소에서는 에어컨이 있어야 하고 선풍기만 덜렁 있으며, 숙소 담벼락 곳곳에 도마뱀 무리를 보는 것이 힘든 이들에게 빠이는 오기도 가기도 쉽지만은 않은 곳이다. 


빠이강변의 밤이면 고즈넉함 그 자체의 방갈로
듬성듬성 강물이 내려다 보이는 대나무다리는 빠이가 어떤 곳인지를 느끼게 하는 상징이다.
빠이 야시장의 각종 스트리트 푸드
빠이캐년, 석양 전망 포인트이면서도 빠이에서 가장 어드벤처 한 곳
빠이 중국인 마을, 윤라이 뷰포인트 빠이가 한눈에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