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반대말
“시리야. 완벽의 반대말은 뭐야?”
“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다른 부분이 있을까요?”
“… 됐다, 들어가.”
“이제 가면 언제 오시나요.”
남의 시리나 빅스비들은 알아서 잘만 검색해주던데, 왜 내 시리만 이 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21세기 인공지능 다 쓸모없다고 구시렁대며 직접 검색해보았다. 무엇이든 알려준다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완벽’이라고 검색해보니 반의어가 ‘미비’라고 한다. 과연?
일단 완벽주의자로 살면서
내가 느낀 완벽의 '동의어'는 ‘불가능’이다.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의 하찮은 먼지에 불과하다. 우린 완벽을 추구하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으리. 이는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 하는 자조적 어투가 아닌 확신이다. 인간은 불완전 그 자체다. 죽음을 담보로 빌린 찰나의 육신에 집착하는 미성숙한 영혼을 보라. 인간은 자신과 상반되는 완벽이라는 단어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렷다.
동시에 불완전하다는 것은 실패로부터 반대방향으로 달려 나가지만 결국 그 언저리에 머문다는 말과도 같아서, 우리는 늘 실패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기저에 깔려있는 ‘성공’의 기준은 모두 우리 인간들이 세운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해 무지한 우리가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알 리 없다.
나 역시 수많은 순간들을 ‘조지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건 아직 어렵다. 아마 사는 내내 어려울 것 같다. 그저 그 두려움의 농도가 짙냐, 옅냐의 차이에 불과할 테지. 태어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기에, 나는 죽은 후에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지 싶다.
이러나저러나 완벽할 수 없는 팔자라면,
불완전한 나를 써먹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난 솔직한 내 모습을 담아내는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완벽하고 싶지만 게으른 내 모습을 보여주면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상상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무모한 짓거리였다.
이전에 나는 ‘완벽 저항 일기’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나의 온갖 고뇌를 징징거리는 창구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한순간에 휘리릭 삭제해버리고 튄 전적이 있는 나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게 그토록 수치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기에 매거진은 고백 미수에 그쳤다. 그러니 적나라하게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내게 있어 줄 없는 번지점프보다도 머뭇거리게 되는 행동이었다.
다신 게을러지지 않을 것이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끝장을 보겠노라는. 아마도 나는 내가 이 긴 고백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나를 세상에 내놓는 걸 자신 없어하면서도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왔으니까. 양심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살아가며 어차피 한 번쯤은 제출해야 할 과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부어 이 책을 덜 조지려고 애썼지만 모를 일이다. 사람들에게 열렬한 공감과 사랑을 받을까? 출판사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까? 내가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나는 답변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모전 마감기한 전에 글을 가장 예뻐 보이게 퇴고해 업로드하는 것뿐이니까.
만약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런 방식, 이런 고백으로 성공하고 싶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초장부터 내가 찌그러진 원이라는 걸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유명해지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내내 이 갑갑함을 품은 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기꺼이 나를 봉인 해제하기로 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완벽이라는 불가능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그것에 공들인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그러한들, 글렀나 싶어도 원래 인생이 그르친 것 투성인데 뭐 어떤가. 첫 번째 박스는 꽝일지라도 그다음 박스에는 이렇게 괜찮은 역전이 포함된 랜덤박스 같은 게 인생의 묘미인 것을. 나 역시 매거진 하나를 패대기쳤지만 이렇게 길고 긴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잖은가. 실패작을 양분 삼아 새로운 싹을 틔웠듯, 난 다시 ‘완벽 저항 일기’를 쓰게 될 것이다. 그르쳤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그럼 그걸로 되었다.
완벽의 동의어가 ‘불가능’이라면,
그 반의어는 ‘가능성’이다.
영영 완벽할 순 없더라도 그만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쩌면 괜찮아질 가능성도 있다. 모든 실패가 온전한 실패가 아니듯 모든 성공이 완전하진 않다. 나는 이제 내게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나를 게으르되 꾸준히 사랑하며, 필연적인 실패를 거듭하여 불완전한 성공을 노려볼 작정이다.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불완전한 성공을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