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싶지도, 완벽하고 싶지도 않아

젊은 날의 자화상이여, 이젠 안녕

by 담작가

내가 어린 학생일 적,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을 방문하는 학습지 선생님은 우리 엄마에게 날 두고 ‘욕심 없는 아이’라고 했다. 엄마도 그 말에 수긍했다. 지랄을 밥 먹듯 하는 지금과 달리 어릴 적 나는 상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나서서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말할 배짱도, 남이 부탁하는 걸 싫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기에, 어른들은 나더러 욕심 없고 배려 많은 아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난 욕심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저 말을 못 할 뿐, 욕심을 속으로 꽁꽁 감춰두는 타입의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주변 친구들이 꿈을 한 두 개 꿀 때, 한 번에 여러 개의 꿈을 꾸곤 했다. 원래 꼬맹이들의 장래희망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지만 난 좀 달랐다. 나의 꿈들은 어느 날은 피아니스트, 어느 날은 선생님, 하는 단편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가령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선생님을 하고 싶은, 그런 종류의 욕망을 가진 야심 찬 아이였다.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내재되어있던 사교성에 의해 나의 욕망은 바깥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거야’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거란 말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했던 나로서는 이미 뱉은 말을 철회할만한 뻔뻔함도 없었기에, 그 모든 것이 다 나의 꿈이라 치부하며 이상향의 산을 높이높이 쌓아갔다.

“이거 봐! 내 꿈은 이만큼이나 커! 자고로 꿈은 이 정도 되어야지, 암.”

점점 더 높고 험한 산이 되어갈수록, 나는 남들에게 허세를 부렸다. 일전에 말했듯 나는 괜찮다 싶은 등산 코스는 모조리 지도에 표시해두는 악습관이 있다. 직진으로 달려 올라가도 봉우리 하나를 넘을까 말까 하는 와중에도, 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산을 빙빙 둘러가겠다고 악착같이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초코바 질량 보존 불가의 법칙(타인의 완벽에서 나의 불완전만 골라내기​)’에 의거해 나의 의지는 몽땅 바닥을 드러냈다. 주저앉아 가려던 길을 우두커니 보고 있으면 스스로 게으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주의자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게으르게 여기는 사람이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게으른 완벽주의자니 뭐니 하지만, 사실 ‘게으른’이란 칭호는 완벽주의자에게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셈이다. 따지고 보면 게으른 게 아니라 욕심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인 것이지만.

그동안 ‘게으름만 뺀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해왔으나 그런다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건 아니었다.

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나의 게으름을 찾아냈다. 그리고 어떤 방향이든 나 자신을 게으르다고 해석해냈다. 대놓고 게을러서 진짜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할 때보다 스트레스가 몇 배는 심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할 땐 내가 게으른 걸 인정하면 그만인데, 바쁘면서도 자신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왜 그리도 완벽주의를 지향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날 빛나게 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우아하고 황홀하고 견고한 ‘완벽주의’라는 단어는 마술사의 모자 같았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토끼나 비둘기가 생기는 것처럼,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만이 최상의 결과물을 내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냥 포기할까’라는 막연한 자포자기적 심정에 접어들었다. 게으른 것만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완벽주의자도 그다지 내게 어울리는 옷은 아니라는 걸 나도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약속 전날 밤 외출 준비를 마쳐놓아도 막상 당일 아침이면 옷이 어울리지 않아 전혀 생각지 않은 옷을 주워 입거나 꼭 액세서리를 하나씩 깜빡했다. 일을 할 때도 정해진 할당량을 다 채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빠릿빠릿하게 처리했다 생각하면 뭔가 실수를 했고, 정확하게 검토를 하면 이미 예상한 제출시간을 지나 마감기한이 임박하는 식이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는 스스로 추구하는 바가 얼마나 무모한가를 조금씩 깨달아갔다.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주의자로 사는 것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영원히 짝사랑을 하는 것과 같았다.

몇 번의 짝사랑 경력이 있는 나는 암만 내가 들이대도 상대가 응답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끝난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퍼뜩 알아채버린 것이다.


게으름과 완벽함, 나는 생각을 전환해 이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해보는 사안에 대해 고려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지만, 꼭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건 게으르면서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삶과 바삐 움직이면서도 스스로를 게을리 여기는 삶, 둘 중 어느 것과 비교해도 훨씬 나은 삶이었다. 특히 후자에 비하면 더더욱 그랬다.

인정해야 했다. 실천하는 완벽주의자는 애초에 실현될 수 없음을. 한 가지 목표도 이루기 힘든 세상이다. 짤막한 삶은 내게 그리 많은 것을 허용하진 않는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항상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사실만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서야 나는 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실천하고 살아왔다는 걸 눈치챘다.

최고의 자리에 이루지 못해도,
실천했다면 실천한 것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건 아닐까.

이 질문에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찍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지독한 짝사랑을 끝낼 수 있었다. 마음이 아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허나 사랑을 끊어내는 순간은 아플지라도 지나고 나면 후련해진다는 걸, 많은 짝사랑의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최선을 다했음을, 상대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 마음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로 표현했음을 알아서 그렇다.


그럼 이제 ‘게으른 완벽주의자’와는 빠이빠이냐? 그건 아니다.

그 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덩치가 큰 키워드인 만큼,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빈틈을 찾아 파고들곤 한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나는 틈틈이 게으르고 번번이 완벽주의적이다. 암세포도 어쨌든 생명이랬던가. 그들을 온전히 죽여버리는 것 역시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기에, 두 세포를 떠나보내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목표를 바꿔 ‘성실한 적당 주의자’로 살아볼까 싶다.

나는 이 두 개의 세포를 내 안에서 없애버리는 쪽보단 다른 두 가지 요소를 키우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바로 성실함과 적당함이다. 적당함은 만족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도 있는데, 특히 이 세포가 내가 가진 세포 중에서 가장 빈약하니 앞으로는 잘 먹여서 살 좀 찌워보려고 한다.

그동안 게으름과 완벽함에게 치우쳤던 양분을 다른 세포에게도 나눠주다 보면 언젠가 균형 맞춘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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