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가게

by 도서출판 야자수

당시 나는 27세로 게으르지만 호기심이 많고 아이디어가 넘쳤다.

어느 날 저녁 예쁜 불빛에 이끌려 어떤 가게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곳은 결심을 새겨주는 문신 가게였다. 계획을 생각하면서 몸에 문신을 하면, 문신의 기운이 무의식을 직접 자극해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는 설명이었다.

단, 한 문신당 한 가지 자극만 매칭될 수 있기 때문에 문신 하나를 여러가지에 우려먹을 수는 없다. 애초 생각했던 계획을 실천하면 문신은 사라져버린다.


“소원을 빌 수는 없습니다. 막연한 계획 같은 것도 안되구요, 본인의 육신을 움직이는 것에 관 구체적 결심만 가능합니다.”


오! 나한테 딱 맞는 거네요. 난 진짜 작가가 될꺼거든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글로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된다 한들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주인장의 말을 그대로 믿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기분전환으로 문신을 새겨보기로 했다.

계획은 '내일 아침 6시 기상'으로, 문신은 '손가락에 반지 모양'으로 골랐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꿈을 꾸는데…


버스를 타고 사막을 가던 중 이제 준비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딱히 길이 없는데 버스들은 작은 초소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두두두두~ 그 초소에서는 통과의례로 버스가 지나갈 때 유리창에 총을 쏘았다. 기관총으로! 의자 밑에 엎드려서 총알을 피해도 부서지는 유리파편에 맞아 사방에서 피가 흘렀다. 잘못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 일주일 전에도 총알이 차체를 뚫는 바람에 한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우리 버스가 초소에 도착했다. 기사가 차를 세우고 그쪽 사람과 얘기한다. 이제 철문이 열리고 버스가 통과하면 총알이 날아올 것이다. 모두가 바닥에 꼼짝 없이 누워 있다. 끼이끼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가 움직이려는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몸이 굳은 채로 버스 바닥에 누워서 눈을 떴다.

어우~너무 불편했다.

결과적으로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반지 문신은 정말로 사라진다. 그날, 나는 출근 전에 모닝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야무지고 보람찬 아침 루틴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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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나는 문신 가게를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다. 이제 계획만 세우면 실천할 수 있다! 육각형 인간이라도 되겠다는 듯이 다방면으로 여러가지 계획들을 새겼다. 그런데 문신은 어차피 기분상의 도움일 뿐, 반드시 실천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내 생활은 금방 이전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이렇게 되니, 문신이 몸에 잔뜩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열 손가락에 원치않는 반지를 낀 상태가 되었다. 그 반지, 아니 문신들을 볼 때마다 '나는 원래 이런 인간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미루고, 안하게 되는 것이었다.



"새길 수는 있는데 왜 지울 수는 없다는 거예요!"


"뭔가를 하거나 안하는 선택에는 늘 결과가 생깁니다. 현실은 게임과 달리 리셋이 되지 않아요. 문신은 스스로 지은 인연의 결과라서 없앨 수가 없습니다."


"네?"


"업보를 지울 수 없다 해서 거기에 끌려다닐 필요도 없죠. 그냥 계속 선택하면서 살아가세요. 당신이 지금을 본다면, 당신에게는 항상 100%의 자유가 있답니다."


가게 주인은 더 이상 문신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사람을 구제불능으로 보는 듯한 그의 말이 나를 더 자극했다. 주인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누가 고객님 머리에 총을 대고 그 일을 시킨다면,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몸이 일어나있을 꺼예요. 거기에 비하면 문신은 자극이 약할 수 밖에요."


"....."


"망설이는 찰나, 하기 싫다~는 생각이 개입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는 이미 어려운 싸움이 되는 것이죠."


"제 생각이 구제불능이라는 거네요?"


"아이코, 생각이 꼭 나쁜 건 아니죠. 작가가 되겠다는 것도 생각이잖아요.

승률을 높이시려면 몸을 한 박자 빨리 움직이시면"


"그게 되면 내가 여기를 다니겠어요?"


주인장은 내 손을 보고 있었다.

"정 자극을 올리고 싶다면..."


“싶다면요?”


"문신이 진짜 반지처럼 예쁘죠?"


"?!"


그날 나는 손등에 담배빵 모양으로 문신을 새기고 가게를 나왔다.


담배빵 문신은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마감시한이 다가올 수록 진짜 따끔따끔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덕분에 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압박감은 몸을 한없이 무겁게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과연 나는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인지, 글을 쓰는 행위를 하는 것이 목적인지~

이런 생각은 진짜일까? 그냥 쓰기 싫어서 생각하는 척 하는 생각일까?'


에라 모르겠다~하고 자포자기로 이불을 다시 뒤집어 썼던 그날…손등에 첫 담배빵이 남았다.

성공한 날도 많이 있었다. 그러면 기분이 업돼서 더 쎈 계획을 가지고 문신을 했다. 실패하면 몇일을 괴로와하다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또 문신가게를 찾았다. 한동안 나는 담배빵과의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얼굴에 점이 찍힌 것을 마지막으로 가게에 가지 않았다.





이제 나는 40이고 가끔 메모는 하지만 아직 완성한 글은 없다.

지금 유튜브로 어떤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있다.

꽤 인기를 끌고 있는 그의 소설은 예전에 내가 말했던 컨셉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에 후배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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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인터뷰는 마무리에 이르고 있었다.


“작가님은 규칙적인 글쓰기 루틴으로 유명하신데요, 그렇게 한결 같이 천하시는 비결이 있을까요?"


고, 한결같다니요",


그는 손사를 쳤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하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그냥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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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작가가 인터뷰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앉는다.

그는 운전석에 앉아서 룸미러를 본다.





'그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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