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작가 이중섭편 1부
누구나 손 편지를 써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생일날이나 결혼기념일 또는 입학일 등 축하할 일이 생길 때, 글에 마음을 눌러 담아 우리는 손 편지를 써왔다. 나 또한 첫 책이 출판되었을 때 책의 첫 장에 짧은 글로 고마움을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하였다. 편지는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글이다. 나는 편지를 개인과 개인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의 근대미술 화가 중에서 편지를 작품으로 남긴 화가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듣고, 보고 아는 작가 이중섭작가이다. 이중섭 작가는 타향에 있는 아내와 두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편지에 담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가 가족들에게 남긴 글과 그림의 엽서화는 현재까지 총 88점이 남아져 있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시대인 1916년 가을(9월 16일)에 태어났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평양의 공립종로보통학교를 다니고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첫 스승인 서양화가 임용련을 만나 미술을 배웠다. 그 후 미술에 뜻을 가지고 1936년 일본 도쿄 교외의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유학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도쿄 문화학원으로 옮겨 1941년까지 수학했다. 문화학원에서 한해 후배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 연인이 되었다. 이중섭의 편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고리는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기도 한데, 아내의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를 닮아 붙어진 것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연인에게 애칭을 지어주는 마음은 같은 마음이 아닐까 한다. 애칭은 특별한 의미의 이름이니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1945년 이중섭과 아고리(야마모토 마사코)는 원산에서 결혼하여 두 아들과 1952년 봄까지 함께하였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을 피해 월남해 부산까지 오게 되었고, 1940년대에 제작했던 대다수의 작품을 원산에 두고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수용피란민 정책으로 1951년 제주도로 가게 되어, 이 시기에 남겨진 작품들에서 꽃게와 물고기가 등장하고 가족을 담은 주제가 등장한다. 작품 <춤추는 가족>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서로의 손을 잡아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통해 낙천적인 유대감이 느껴진다. 어려운 시대 상황과 생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로움과 율동적인 낙천성을 각족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제주도에서의 일상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은지화는 이중섭의 은지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림에서 나타나는 따뜻한 정서와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에 이끌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은지화의 습작들은 100호 그림 못지않게 크고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유연한 움직임은 관람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또한 그림 속에 표현된 표정은 보는 이에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중섭 그림에 담겨있는 감정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이중섭과 가족들은 1951년 말 전쟁이 끝이 날거란 소식에 기대를 안고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암흑 상황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1952년 6월 장인의 부고 소식을 접하면서 6월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에 보내게 된다. 혼자서 삶을 꾸려 나아가야 했던 이중섭의 마음은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뒤섞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내면은 그의 작품 <현해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너울 치는 파도에 아내와 두 아들을 상단에 그려낸 모습과 작은 배에 서서 두 팔을 벌려 손을 흔들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아내와 두 아들은 작가 자신보다 크게 그려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내와 두 아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그림에서 중심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표현된 여러개의 파도는 바다 저편의 나라에 떨어져 있는 가족과의 물리적 거리감을 표현하였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처지와 그리움을 파도의 너울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그림 외각에 파란색 원으로 테두리를 그려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물 표현에서도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정면을 보여주고 있는 아내와 두 안들의 얼굴 표정에서 미소를 찾을 수 있지만 작가 자신의 얼굴은 표정을 추측할 수 없는 선들이 교차한다. 아마도 당시 이중섭의 마음은 함께하고 싶지만 그러하지 못하는 착잡하고 공허한 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중섭 작가의 편지화 작품에서 그가 품었던 가족에 대한 추억과 감정을 찾아보고 느껴본다면, 그의 작품의 이야기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가의 삶이 작품이 되는 순간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