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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들파파 Mar 05. 2022

결혼 그리고 생활

무난할 때 결혼, 아내 편이 되고, 발전하는 모습 보여주기

  가을에 결혼을 했다. 여전히 그때 나와 결혼한 분과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을 처음 만난 건 2006년 여름 첫 회사 면접장이다. 당시에 회사별로 이색면접이 유행이었다. 합숙을 시켜서 조별로 과제를 하고 저녁에 술자리도 갖는 면접을 진행했었다. 그분이 술이 약한데 좀 마신 것 같았다. 은행을 가고 싶었는데 떨어졌다고 몇 번을 나에게 말했었다. 참고로 술자리에도 면접관이 있었다. 그분은 떨어졌다.


  우연히 연락처를 알고 연락을 했다. 무난한 연애를 2년 정도 이어나갔고 2008년 봄쯤 이 분이면 결혼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상의를 했고, 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집은 따로 구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2년 동안의 직장생활 동안 모은 돈은 2천만 원 남짓. 부모님 집 한쪽에 얹혀사는 것으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결혼을 고민하는 후배들을 만나서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해오는 질문이 있다.

"상대방에게 어떤 마음이 들 때 결혼하면 되나요?"


  내가 하는 대답은 이렇다.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무난하게 만나고 있고, 만났을 때 편안하고, 결혼해서 살아도 당신들의 분위기나 그 사람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결혼하면 된다."라고 말이다.


  2010년에 그분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난 외벌이가 되었다. 그때 4~5년 정도 매월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시기를 겪으면서 좀 힘들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1년에 첫째가 태어났다. 2년 뒤에 둘째가 태어났다. 분가를 했다. 2016년에 셋째가 태어났다. 맙소사...


  결혼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그분은 나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시부모님과의 동거로 시작.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야 분가. 분가도 멀리 가지도 못했다. 수시로 왔다 갔다 하시는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육아를 도와주지 못했다. 시부모님은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육아를 도와주지 못했다. 장사 스트레스로 가끔 꼬장도 부리셨다. 미안하게도 남편은 바빴다.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30대는 가장 바쁜 시기가 될 확률이 높다. 남편이(또는 아내가) 그때 너무 바쁘다고 해서 구박하면 안 된다. 직장에서든 직장 밖에서든 최대한 능력치를 끌어올려야 하고, 안팎으로 최대한 인맥을 쌓아가면서, 공부도 해가면서, 최고의 성과를 올릴 준비를 해야 되는 시기다. 바쁘게 살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구박해도 마땅하다.


  육아는 거의 그분의 몫이었다. 내가 하는 것은 많이 모자랐다. 이해심이 많은 분이다. 평일을 야근하고 주말도 하루씩 출근했었다. 경매 공부를 하겠다고 주말에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술자리를 하고 주말엔 낮에 애 하고 놀다가 잠들기도 했었다.


  코로나로 골프 영업도 너무 잦아지게 되어서 요즘도 주말마다 하루정도 새벽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곤 한다. 입장 바꿔서 내가 그분이었다면 바가지를 이 정도가 아니라 훨씬 심하게 긁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 그 분과 잘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분의 말이 길어지더라도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적절한 반응을 했다. 물론 살면서 그분한테 배운 가르침이다. 말을 오래 듣는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도 이 분 덕분에 알게 되기는 했지만, 경청이 이래서 중요하다.


  상대방이 누구든 그분의 편에 설려고 했다. 상대방이 나를 낳아주신 분일 때가 꽤 있었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보통 그분이 옳다) 그분의 편에 서서, 그분의 입장을 고려해서 행동하고 말했다. 나를 낳아주신 분과 의절할 뻔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실제로 발전했다. 보잘것없는 경제력일 때가 있었다. 그분에게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지는 방법을 제시했고, 실행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아졌다. 그분도 여유가 생겼다. 천만다행이다.


  자녀가 많았다. 그분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나를 신경 쓸 정신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정신을 차려서 내가 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여유가 좀 생겼으니 그분에게 더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지 100% 계획해서 끌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갖고 결혼 여부를 결정할 수는 있다. 의사결정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다음은 내 선택이 옳은 결과를 내도록 만들려는 나의 노력이 중요하다. 선택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이후 과정에 대한 의지와 실행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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