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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Sep 25. 2023

좀 더 즐겁게 일하려면...

여러분은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일을 해야 하나? 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


프로그래밍이라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려면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2012년 당시 회사를 퇴사하면서 나눈 송재경 대표와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우리 삶에서 일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송재경 대표와의 에피소드

퇴사하기 이틀 전 마지막 환송 회식을 했다. 마지막 환송 회식이라 사장님, 부사장님까지 참석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이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 개발을 주도한, 게임 업계에서는 유명한 송재경 님이다. 오랜만에 같이하는 술자리라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프로그래밍 이야기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었다. 프로그래밍 관련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사장님이 바람의 나라를 Objective C로 구현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믿을 수 있겠는가? 90년대에 벌써 Objective C를 활용해 게임을 개발했단다. 그것도 멀티 스레드 환경을 지원하는 게임 서버를 말이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관련 이야기를 하다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송재경 대표는 아키에이지 게임에서 일부 기능을 직접 구현하셨단다. 클라이언트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 프러시저까지 전체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과 같이 전문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프로그래머가 진정 즐거움을 느끼고, 재미를 느끼려면 특정 기능에 대한 전체를 개발할 때 즐거움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점점 더 전문화됨으로 인해 프로그래머가 기계의 부속품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려 이전과 같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과거 테일러로부터 시작된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셨다. 대부분의 CEO라면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지금보다 더 전문화하고 분업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겠지만 역시 송재경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2년 이상을 같이 했지만 이런 모습에서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한 일

맞다. 지금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점점 더 세분화하고 전문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재미는 점점 더 사라지고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점점 더 발전해 가고 있는 현재에 우리 프로그래머들은 행복해하고 있을까? 앞의 송재경 대표가 이야기한 것처럼 커다란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와 관련한 내용은 소프트웨어 업계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곳에서 이야기한 주제이다. 이는 꼭 소프트웨어 업계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대규모화되고 있는 수많은 곳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 또한 현재와 같은 전문화와 분업화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E.F. 슈마허가 쓴 “내가 믿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다가 분업화와 관련한 내용이 있어 공유해보려 한다. 책의 전, 후 맥락 때문에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일부를 공유한다.


오늘날 현재 경제학자들은 노동이나 일을 필요악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풍토에서 성장했다. 고용주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은 아무래도 비용의 한 항목에 불과하며, 자동화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축소되어야 할 것이라 간주된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볼 때, 노동은 비효용이다. 일하는 것은 자신의 여가와 안식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은 그 희생에 대한 일종의 대가이다. 따라서 고용주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것은 고용자 없이 산출물을 내는 것이고, 고용된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것은 고용되지 않고 소득을 얻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 방식에 따라 고용주는 완전한 자동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분업을 통해 비용을 최소화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지금까지 제조업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결과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일의 기능

E.F. 슈마허는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아닌 불교적 관점에서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불교적 관점은 일의 기능을 최소한 셋으로 본다. 그것은 사람의 재능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주는 것, 다른 사람들과 공동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는 것, 생산 과정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빚어지는 결과는 매우 다양하다. 무의미하고, 지겹고, 사람을 멍청하게 만들거나, 근로자에게 신경의 피로를 주도록 일을 조직하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보다는 재물에 더 관심을 두는 것이고, 사악할 정도로 몰인정한 것이고, 이 세속적 존재의 가장 원초적 측면에 대해 영혼을 파괴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이다.

… 중간 생략 …

그러므로 불교적 관점에서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할 기계화의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사람의 기술과 능력을 향상하는 기계화이고 또 하나는 사람의 일을 기계라는 노예에게 맡기고 사람으로 하여금 노예를 섬기는 위치에 있도록 만드는 기계화이다.

현대 경제학자들이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노동은 필요악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거나 줄여야 할 존재로 간주한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비용을 줄이는 측면으로만 고려하다 보니 기계화를 통한 비용 절감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이 기계화가 사람이 주가 아닌 기계가 주인이 되고 사람이 이 기계를 섬기는 노예로 전락한 상태가 현재의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다 보니 우리 노동자들 또한 노동을 기피해야 될 대상으로 생각하고 여가만을 쫓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일에 의해 성격이 형성된다고 본다. 그리고 일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라는 조건 아래서 제대로 행해지며, 그럴 때만이 일을 행하는 사람과 그 산출물 모두에게 복을 준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려면...

위 글을 읽으면서 우리 프로그래머들(전체 노동자로 확대해도 된다.)이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지금 시점에 딱 이것이다라고 해답을 내릴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를 공유해 본다.


앞에 송재경 대표가 이야기했듯이 전문화된 특정 영역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소프트웨어 전체 영역에 관심을 가질 때 새로운 시야, 창의적인 접근 방식이 생기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문화를 거부하고 전체 영역을 같이 고민하려면 조직의 틀이 갖추어진 정형화된 기업(일반적으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이 같은 현상을 보인다.) 보다는 정형화되지 않고 개선의 여지가 많은 곳에 참여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돈을 좇기보다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엄성과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찾으려면 소비 습관을 개선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계화(자동화)와 관련해서는 첫 번째 불교적 관점에 해당하는 “사람의 기술과 능력을 향상하는 기계화”에 초점을 맞춘다. 프로그래밍 개발에서 빌드 도구나 지속적 통합 도구를 통한 자동화는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위와 같은 삶을 추구한다고 반드시 행복해질 수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대규모화하고, 기계화하고, 돈이면 다 되는 것으로 세상을 몰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 자본주의 물결에 아무 생각 없이 종속되어 버린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우리의 존엄성이나 자유는 포기한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자본주의를 더 가속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무작정 재미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보다는 사람을 지향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더 많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우리는 진정 프로그래머로서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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